"러시아" 주제의 글
  • 2014년 2월 24일. 푸틴의 불지옥 우크라이나, 서구가 강경 대응해야

    대중의 봉기에는 대강의 공식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갈등으로 격화되면서, 목표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고 나쁜 감정이 쌓이면서 타협의 희망은 사라져가죠. 우크라이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1월에 평화적인 시위였던 것이 이제는 수많은 사상자를 낸 폭력 사태가 되었고 전면적인 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이 나라의 깡패 같은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에 있으나, 이 사태의 뿌리에는 크레믈린 궁의 주인, 푸틴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태생부터 동서 갈등을 더 보기

  • 2014년 2월 24일. 피겨 스케이팅 심판들, 정말로 소트니코바에게 점수 몰아줬나

    * 김연아 선수가 현역 선수로서 치른 마지막 대회인 동계올림픽 무대의 판정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과 비난이 주말 내내 봇물 터지듯 쏟아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김연아의 연기가 훨씬 더 우아하고 흠잡을 데 없었는데,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즈는 겉보기에는 김연아의 연기가 더 예술성이 뛰어났을지 몰라도 금메달을 딴 소트니코바의 연기 구성이 더 높은 난이도로 이뤄져있어 객관적인 채점표대로 점수를 매긴다면 소트니코바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맞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더 보기

  • 2014년 2월 17일. 국적을 바꾼 쇼트트랙 스케이터: 올림픽의 의미는 무엇인가?

    빅토르 안이 남자 쇼트트랙 1,000미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 러시아 응원단의 환호성이 울려퍼졌습니다. 동시에 한국 응원단의 야유도 들려왔습니다. 한국 출신의 쇼트트랙 스케이터 빅토르 안은 모국에서 오랫동안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왔지만, 2011년 국적을 바꾸고 러시아 국가대표팀을 선택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안이 모국을 떠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국 빙상연맹과 갈등을 겪으면서, 무릎 부상 이후 재활 치료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가대표팀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는 안의 아버지와 연맹 더 보기

  • 2014년 2월 17일. 당신은 러시아의 동성애 혐오를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습니까?

    러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소치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주된 이야깃거리 가운데 하나는 성소수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하는 러시아 정부였습니다. 외신들은 앞다퉈 러시아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도했고, 소치의 유명한 게이바 마야크(Mayak)에는 취재를 위해 동성애자들을 찾는 기자들로 붐볐습니다. 외국어를 다 알아듣진 못하지만, 하루에 족히 열 명은 넘는 기자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아마도 뻔한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몰려드는 취재진에 마야크의 단골 손님들은 마치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었을 겁니다. 러시아 더 보기

  • 2014년 1월 2일. 대형 스포츠 행사,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다음달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올여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굴 브라질 월드컵, 여기에 가을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스포츠뉴스를 보면 올해는 볼거리가 풍성한 해입니다.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기억에 기대어 삼수 끝에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기어코 유치했을 때 정부는 수십조 원의 경제효과와 국가 브랜드 향상과 같은 혜택을 기대한다고 발표했고, 많은 이들이 갸우뚱하는 사이에 주류 언론들은 이를 받아쓰기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Economist지의 마이클 리드(Michael Reid)는 스포츠가 상업화되고 갈수록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기 어려워지면서 이런 대형 스포츠 더 보기

  • 2013년 12월 18일. 우크라이나는 항상 혁명 중?

    무심히 국제면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우크라이나는 혁명이 끊이질 않는 나라입니다. 2004-5년 오렌지혁명으로 인해 부정선거가 밝혀지고 정권이 바뀐지 10년도 되지 않아, 수 십 만명의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고 하니까요. 오렌지혁명 전후로도 크고 작은 거리 시위가 종종 있었죠. 우선 외부, 특히 러시아의 시각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는 태생부터 문제를 떠 안고 있는 나라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분리독립된 것도 고작 20여 년 전의 일인데다, 자연스럽게 결집된 공동체라기보다는 민족적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을 인공적으로 한데 묶어놓은 모습에 더 보기

  • 2013년 12월 13일. 엘튼 존 칼럼: 나는 왜 러시아 공연을 강행했나

    -엘튼 존 경이 Guardian에 기고한 글입니다. 올해 러시아에서 반동성애적인 입법이 있었던지라, 저의 러시아 공연에 대해 여러 추측과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러시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엘튼존 에이즈 재단(Elton John AIDS Foundation)을 통해 들은 러시아 사람들의 의견은 제가 꼭 러시아에 와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러시아 공연을 취소한다면 러시아에 계신 분들은 더욱 고립감을 느낄 것이고, 제가 러시아에 관심이 없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죠. 제가 러시아에서 만난 더 보기

  • 2013년 11월 29일. 푸틴과 죽은 시인의 사회

    -내년 3월 저서 <말이 시멘트를 부술 것이다: 푸시라이엇의 열정>을 펴낼 예정인 모스크바 주재 저널리스트 마샤 게센(Masha Gessen)의 NYT 기고문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자, 톨스토이가 마이크를 이어 받았습니다. 그는 자리에 함께 한 도스토예프스키, 레르몬토프, 숄로호프, 파스테르나크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푸시킨은 몸이 아파 참석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함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주, 모스크바 한 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구요? 마이크를 잡은 톨스토이는 문호 톨스토이의 4대손, 몸이 아파 불참한 푸시킨은 시인 푸시킨의 더 보기

  • 2013년 11월 26일. 동성애자임이 망명의 근거가 되는 경우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신장되고 있지만, 박해도 여전합니다. 오늘날 75개국 이상에서 동성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처벌 수위도 높게는 사형에 이릅니다. 사실 동성애 처벌은 대영제국의 잔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533년 영국 의회가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통과시킨 후, 이 법은 1967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8세기 말부터 동성애가 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도 과거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에 비해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동성애 처벌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이구요. 물론 영국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더 보기

  • 2013년 8월 13일. 동성애 관련 신문기사에 19금 딱지?

    이 기사가 러시아 신문에 실렸다면 미성년자 구독 불가 딱지가 붙었을 것입니다. “비전통적인 성적 관계 조장”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동성애나 동성애자 권리 문제를 다룬 글에는 무조건 경고문을 붙여야 한다는 법 조항 때문입니다. 지난 6월, 이와 같은 내용의 법안에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국제 사회는 비난 여론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러시아산 보드카에서부터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보이콧하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태도는 당당합니다. 푸틴 더 보기

  • 2013년 6월 20일. 푸틴 정권의 사법 기관을 통한 정치 탄압

    러시아 우랄지역의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인터넷 언론사를 운영하던 여성이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했습니다. 악사나 파노바(Aksana Panova)가 운영하던 ura.ru는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지역 언론으로서, 지역의 주지사와 시장이 정치적인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던 시절에는 활발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파손된 도로를 보수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정치인들이 들어주지 않자, ura.ru와 거리의 예술가들이 합작으로 도로 표면에 난 틈과 구멍을 활용해 정치인들의 얼굴을 그려넣는 캠페인을 펼쳤던 일은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새로 지명된 주지사가 정적인 시장에게 더 보기

  • 2013년 4월 25일. 러시아, 군 개혁은 300년 된 발싸개 교체로부터

    1945년 4월, 베를린으로의 마지막 진격을 앞두고 독일 엘베강 유역에서 러시아의 붉은 군대와 처음 조우한 미군 병사들이 가장 놀란 건 군인들이 발에 양말 대신 두르고 있던 발싸개였습니다. 근대 러시아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추앙 받고 있는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러시아 군인들은 양말 대신 사각형 천(여름에는 면, 겨울에는 모가 섞인 좀 더 따뜻한 천)으로 된 발싸개를 둘렀습니다. 포트양키(Portyanki)라 불리는 이 발싸개는 소비에트 시절에도 공장들이 양말보다 훨씬 싼 값에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어 명맥을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