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뻔한 정답 놓고 고집 부린 결과”… 선거 진 민주당 앞의 갈림길
2025년 1월 9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1월 12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 선거가 끝난 지 닷새가 지났습니다. 아직 하원 선거구 가운데 여전히 개표가 진행 중인 곳이 있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공식적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공화당이 다음 회기에도 아슬아슬한 하원 과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입니다. (하원 전체 435석으로 218석이 최소 과반. 현재 확정된 의석은 공화 214석, 민주 203석.)

4년 전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인단 싸움에선 이겼지만 전체 득표에선 졌던 8년 전보다도 더 확실한 승리를 거둔 트럼프 당선자와 공화당은 사기가 한껏 오른 상황에서 두 번째 임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선거를 총괄했던 수지 와일스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여성 최초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했습니다. 인수위원회도 바이든 행정부와 필요한 조율을 진행하며 정무직 인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여전히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패배를 시인한 뒤 당 안팎에서 패배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는데, 좀처럼 의견이 모이지 않는 듯합니다. 실제로 한 가지 원인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니,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을 살펴보는 건 필요한 과정이고 바람직합니다. 다만 지목되는 요인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둘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앞으로의 전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선거 패배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갈림길에 선 민주당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먼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둘 중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하나는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두 가지 요인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분명 둘 다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선거를 앞두고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글만 보더라도 경제적 요인을 강조한 글(“나 땐 좋았어” 반복하는 트럼프, ‘경제’에 발목 잡히는 해리스)도 있었고, 문화적 요인과 정체성 정치가 끼칠 영향을 진단한 글(“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 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둘 다 맞다고 하고 넘어가는 것보다 좀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므로, 오늘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선거 결과를 분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분석은 경제 문제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이 승패를 갈랐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문화적인 요인과 정체성 정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합니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줄여서 ‘경제’와 ‘문화’로 부르겠습니다.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경제 문제에서 해리스 후보와 민주당은 계속해서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경제 문제에 관해 공약도 내고 유권자를 설득하고자 애썼지만, 끝내 트럼프의 공세를 막지 못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내동댕이친 보수 세력과 선거 결과에 불복했던 트럼프의 비민주적인 면모를 부각해 부동층 유권자를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가장 최근 치러진 202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할 수 있던 요인도 저 두 가지로 꼽혔기에 민주당의 전략이 터무니없는 기대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를 보면 이번 선거는 ‘문화’보다 ‘경제’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동한 선거였습니다. 민주당이 경제에 관해 쌓인 유권자들의 불만을 너무 간과했다는 지적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습니다. 단지 치솟은 집값과 생활비 때문에 여당을 표로 심판한 것을 넘어 민주당의 경제 정책 때문에 노동 계급, 서민 유권자들이 대거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글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문 번역: “트럼프 당선 뒤에야 깨달은 것들… 엘리트들, 이제 내가 좀 보이나요?”

 

 

제목부터 직역하면, “유권자가 엘리트에게: 이제야 내가 좀 보이나요?”입니다. 여기서 엘리트는 민주당 주류와 핵심 지지층을 아우르는, 주로 양쪽 해안가 대도시에 사는 고학력자들입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듯이 민주당은 리즈 체니와 같은 공화당 정치인을 포섭해 겉만 번지르르한 “빅텐트”를 꾸리는 사이 유권자 집단의 외연을 넓히는 데는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와 사회경제적 처지가 다른 동료 시민들이 어떤 점을 문제로 여기고, 어떤 태도에 분노하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은 대가로 다수결 원칙을 따르는 결정적인 순간에 명백한 소수로 전락한 겁니다.

실제로 선거 전 여론조사를 보면 후보의 지지율, 선호도는 계속해서 조금씩 바뀌었지만, 어떤 분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투표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만큼은 부동의 1위가 있었습니다. 바로 경제였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치솟은 생활비, 집값, 교육비 등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는 유권자들은 당연하게도 부자보다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많았고, 지금의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이들 대부분이 학력 수준이 낮은, 도시보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정답이 뻔한 질문지를 받아 들고서도 고집스럽게 다른 답을 적어낸 셈입니다.

브룩스의 칼럼 마지막에도 잠깐 언급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 주말 민주당의 선거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목소리 가운데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주장을 폈습니다.

민주당의 선거 참패는 놀라울 게 전혀 없다. 민주당은 투표장에서 자신이 먼저 저버린 노동 계급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지난 선거에서는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잃더니, 이번에는 라티노, 흑인 노동자들의 표까지 잃었다. 미국인들은 지금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변화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현상 유지를 우악스럽게 고집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옳았다. – 버니 샌더스

첫 문단부터 강력한 비판을 쏟아낸 샌더스가 성명을 통해서 하려는 말은 그가 늘 해오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극심한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절대로 다시 집권할 수 없다는 겁니다. 샌더스 의원은 일요일 NBC 시사 프로그램 밋 더 프레스에 출연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노동자의 편에 서겠다는 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나도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냐고 묻는다면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문제나 의료보험 부담을 줄여주는 문제는 계속해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기대하게 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샌더스가 유권자들에게 해온 말과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지적이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더욱 시의적절해 보입니다. 그런데 민주당 일각에선 샌더스를 강력히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별 영향력 없는 인물이 아니라, 명예 하원의장이자 당내 원로원의 의장 격인 낸시 펠로시가 그랬습니다. 펠로시 의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과만 놓고 그런 지적을 하는 건 민주당의 분열만 일으키는 꼴이다. 그러는 샌더스 의원은 버몬트주 상원 선거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버몬트주 대선에서 받은 표보다도 덜 받지 않았나”라고 비판했습니다. 중도 노선을 이끌어 온 펠로시 의원의 이력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경제라는 명백한 요인을 눈앞에 두고도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론 아체몰루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사실 스브스프리미엄에 처음 쓴 해설에도 아체몰루 교수의 인터뷰가 등장합니다. 거기서도 아체몰루 교수는 자동화와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기는커녕 그로 인해 소외되고 도태된 노동자들이 트럼프처럼 포퓰리즘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을 향한 지지가 계속 강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아체몰루 교수가 선거 이후에 쓴 트윗도 화제가 됐습니다. 철저히 고학력자 중심의 엘리트 정당이 되어버린 민주당이 아직도 스스로 노동자의 정당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아체몰루 교수도 샌더스 의원처럼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점을 인정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도 올랐고, 이민 문제와 산업 정책,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 정부 정책에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체몰루 교수가 보기에 민주당의 주류가 된 엘리트들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간단한 사고 실험을 이야기합니다.

만약 (일반적으로 석사 이상의 학위가 있는 양쪽 해안가 도시 사는 전문직 또는 관료인) 민주당 엘리트가 미국 중서부의 한 작은 마을에 발이 묶였다고 치자. 민주당 엘리트는 다음 두 명 가운데 한 명과 4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누구를 고를까? 첫째, 중서부에서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미국인 노동자. 둘째, 멕시코, 중국 또는 다른 나라 출신의 대학원 교육을 받은 전문가. 나도 그랬지만, 내가 물어본 모든 민주당 지지자는 후자를 택했다. 민주당 엘리트와 미국 노동자들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는 이미 너무 멀어졌다.

아체몰루 교수는 민주당이 이번 패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특히 제조업 노동자와 소도시, 시골에 사는 노동자와 거리를 좁히지 못해 이들을 계속 트럼프와 마가(MAGA) 운동의 지지자로 남겨둔다면 미국 민주주의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포용적인 경제 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고, 좀 더 평등한 경제 제도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선순환을 회복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아체몰루 교수는 우려했습니다. 또 다른 석학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선거 이후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지금 민주당 앞에 놓인 갈림길을 ‘C’로 시작하는 두 단어로 축약했습니다. 먼저 ‘Contempt’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경멸, 멸시, 무시’ 정도가 되죠. “트럼프 같은 범죄자,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 여성혐오주의자를 두 번이나 뽑다니, 미국은 정말 한심한 나라였구나!”와 같은 반응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수의 유권자가 표시한 뜻을 부정하고 무시하며, ‘선거에서 졌어도 내가 전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태도입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충격을 잠시 잊거나 달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끝내 외면하는 자세이므로, 중요한 교훈을 얻기는 힘들 겁니다.

‘Curiosity’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4년 전에 700만 표나 더 받은 민주당이 아무리 후보가 바뀌었다고 해도 어떻게 이번 선거에선 400만 표를 덜 받게 됐을지, 붉은 파도의 근본적인 원인을 겸허한 자세로 알아보는 겁니다. 에즈라 클라인은 아예 “연 소득이 5만 달러가 되지 않는 이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해 보려 노력하지 않는 한 트럼프에게 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릴 만한 전략을 생각해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불평등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선택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도 유권자들에게 실망만 안겨줄 수 있고, 그 경우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누려 당장 2년 뒤 중간선거에서 의회 다수당을 탈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제대로 된 대안을 내지 못할 겁니다. 여당도 야당도 다 싫은 유권자들에겐 정치 혐오만 남습니다. 민주당이 트럼프의 지지자 연합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따라 앞으로 미국 정치의 향방이 결정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