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부자들에게 더욱 더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괜찮을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2월 12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대개 뭐든지 살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 더 귀해진 세상이죠. 부자들이 부를 가지고 뭐를 사는지, 뭐를 원하는지, 즉 많은 돈을 어디에 기꺼이 쓰고 싶어 하는지 알면 그 사회의 많은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부자들, 특히 부자 중의 부자라 할 수 있는 갑부들은 웬만한 돈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에 돈을 쓰거나 예전에는 돈으로 살 수 없던 것을 사려고 합니다. 부의 새로운 쓰임새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가 돈으로 영향력을 사는 겁니다.
과거에는 돈으로 영향력을 산다고 하면 정치인이나 사정기관에 있는 사람 등 권력자를 매수하는 행위를 먼저 떠올렸을 겁니다. 이른바 강성 권력(hard power)을 직접 돈 주고 사는 행위는 권력과 척을 졌을 때 방패막이가 돼 줄 보험을 드는 행위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권력과 결탁하면 이권을 나눠 받을 수 있어 때로는 수지가 남는 투자였을 겁니다.
오늘날 미국의 부자들이 돈을 주고 영향력을 사는 행위를 분석해 보면 과거에 권력에 돈을 대던 것과 좀 다릅니다. 물론 여전히 선거자금이나 정치 후원금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부자들도 많지만, 강성 권력보다는 연성 권력(soft power)을 위해 돈을 쓰는 경향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관심 경제가 트렌드가 된 지도 시간이 꽤 흘렀고,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언서’가 더는 낯설지 않은 말이 됐습니다. 돈으로 영향력을 살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을 이용해 다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확산으로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에 돈을 쓰는 트렌드가 생겨났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인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권력의 최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소셜미디어로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트럼프는 2016년 선거에서 전통적인 정치인들보다 정치 자금을 훨씬 못 모았고, 자연히 TV 광고도 훨씬 덜 살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확실한 홍보 효과를 누렸습니다. 여기에는 트위터상에서 보여준 트럼프의 남다른 존재감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짜 홍보 효과의 가치가 2조 원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뉴스 매체 퍽(Puck)을 세워 운영하는 저자 윌리엄 코헨이 돈으로 영향력을 사는 미국 부자들의 새로운 소비 행태를 분석한 칼럼을 썼습니다.
코헨은 월스트리트의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애크먼을 예로 들었습니다. 애크먼은 헤지펀드 퍼싱 스퀘어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창업해 현재 CEO를 맡고 있으며,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자산은 42억 달러, 우리 돈 5조 6천억 원 규모입니다.
애크먼은 특히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부자 중 한 명입니다. 유대인인 애크먼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뒤 하마스의 테러와 범죄를 충분히 규탄하지 않는 모든 곳과 부단히 싸웠습니다. 그 대상 중에는 자신이 졸업한 하버드대학교를 포함한 엘리트 대학들도 포함됐습니다.
그는 “끔찍한 공격을 감행한 하마스를 규탄하기는커녕 이튿날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버젓이 발표하는 학생들과 이들을 제대로 말리지 않는 대학 당국에 경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시위에 참여하거나 성명에 이름을 올린 학생 명단을 공개하라. 우리 회사는 절대 테러리스트에 동조하는 이들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며, 월스트리트 전체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겠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대학들은 애크먼이 만족할 만큼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애크먼은 반유대주의를 방치, 조장하는 대학들에 앞으로는 한 푼도 돈을 기부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이미 기부하기로 한 돈도 거두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대학들과 설전도 벌이고, 대학들을 비난하는 인터뷰를 이어가던 애크먼은 하버드와 MIT,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총장들을 증인으로 세워 꾸짖은 의회 청문회를 극찬하며, 모든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엘리자베스 맥길, 하버드의 클라우딘 게이 총장이 사퇴했고, MIT의 샐리 콘블러스 총장은 사퇴하지 않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오해
X(구 트위터)는 빌 애크먼이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활동 무대입니다. 애크먼의 영향력은 팔로워 숫자가 보증하는데, X 팔로워만 120만 명입니다. 이 중에는 애크먼의 생각에 동조하고 애크먼의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크먼이 쌓아 올린 어마어마한 부를 그저 동경해서 팔로우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돈은 숭배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런 세상일수록 부자들은 그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신처럼 행세하고 군림할 수 있습니다. 돈이 영향력을 사고, 그 영향력이 다시 돈을 벌어주는 선순환 구조가 처음부터 부자인 사람들에겐 너무 쉽습니다. (코헨은 칼럼에서 이를 환율에 빗대 부자들이 유례없이 싼 환율을 적용받았다고 썼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자들은 애크먼뿐만이 아닙니다. 애크먼의 활동 무대인 X를 아예 사들인 일론 머스크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고, X가 트위터였던 시절 역사상 트위터를 가장 잘 활용한 정치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도널드 트럼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소셜미디어와 표현의 자유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공통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이들이 보지 못하고 간과하는 지점이 겹친다는 말인데, 이전에 스브스프리미엄에 실린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에 관한 글에도 이 점이 잘 정리돼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크게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로 나눌 수 있습니다. 권력에 의해 처벌받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소극적인 자유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에 필요한 초석을 다지는 일입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에 가깝습니다. 미국에서는 소수자나 약자들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가 권력에 의해 투옥될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수자나 약자들의 목소리가 아예 처음부터 묻히고 지워질 수 있는 환경, 즉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환경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는 계층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보장되는 정도가 다른데, 미국에서 사실상 가장 분명한 기준선으로 작용하는 게 바로 돈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영향력을 쉽게 확보하거나 직접 사들인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을 얼마든지 합니다.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피해를 볼 걱정은 물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부자들이 체감할 만한 피해를 줄 만한 사람이 많지 않기도 합니다. 반대로 돈이 없는 사람들에겐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가 그림의 떡입니다. 다만 부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죠.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없는 것
애크먼이 하마스를 지지한 학생들의 명단 공개를 요구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고 한 건 소극적인 표현의 자유에 따라 보호받아야 하는 표현입니다. 다만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보자면, 애크먼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 건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침해할 소지가 있기에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그저 돈이 아주 많은 미래의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내놓는 협박에 불과한 표현일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런 발언까지 비판하지 못하게 보장해 줘야 하는지, 아니면 이 발언을 듣고 위축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까지 고려해야 하는지는 그 사회가 토론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이야기는 오늘 다루는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깊이 다루지 않겠습니다. 다만 애크먼이 맹렬히 비난한 학생 중에 “하마스의 10월 7일 테러 공격을 찬양”한 이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하마스와 함께 비판하거나 이스라엘군이 보복 공격 과정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를 문제 삼으며 불법 점령을 끝내고 즉각 휴전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비판마저 유대인 혐오로 몰아세우는 것이 과연 대화를 통해 공통분모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태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크먼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관한 여론조사만 봐도 젊은 세대는 대체로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당했던 끔찍한 피해의 역사와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인 가해의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위협하는 건 표현의 자유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부자들의 행동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결국, 부자들의 행동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부자들이 끝없이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느냐, 아니면 적당히 선을 지키며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느냐는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큰 차이를 만듭니다.
세상이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보이지만, 사실 아무리 돈이 영향력까지 살 수 있는 세상에서도 돈으로 제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돈으로 남의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일입니다. 분명 돈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영향력을 끼치겠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도 그 사람의 생각까지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애크먼의 발언에 위축된 학생들은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주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저지른 잘못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는 학생도 많지 않을 겁니다. 남의 자유를 위협하든 말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걸 표현의 자유로 여기는 부자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장점보다 단점이 도드라질 수 있는 사회이므로 우려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