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인간은 합리적이지만 또 비합리적인데요…
2024년 2월 4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2월 1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인지에 대한 논쟁의 역사는 무척 깁니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인간의 무지, 곧 비합리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반면 플라톤은 인간의 이성, 곧 합리성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 말했습니다.

물론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인지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준을 정해야 하겠지요. 대부분 인간이 대부분 동물보다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는 데는 대부분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수많은 오류를 끊임없이 범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합리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잠깐 생각해 봅시다. 바로 떠오르는 정의는 자신의 의도나 목적과 일치하는 선택 혹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인 인간도 이와 비슷하게 정의됩니다. 곧, 인간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인간의 합리성을 가정한 경제학은 현실과 유리된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위의 정의를 바탕으로 보면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비합리성 또는 편향을 발견하고, 그 목록을 추가하는 것은 20세기 심리학의 주된 조류 중 하나였습니다. 확증 편향은 자신이 애초에 가진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호하는 편향으로 인간 사회의 많은 현상을 매우 잘 설명했습니다. 미래보다 현재를 선호하는 ‘미래 할인(temporal discounting)’ 편향도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편향입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네만은 인간이 가진 편향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이는 앞서 경제학이 가졌던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을 반성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낳았습니다.

물론 인간이 이유 없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위의 미래 할인은 미래가 오늘날처럼 확실하지 않고 당장 내일의 삶이 불확실했던 과거 조상들의 환경에서는 더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곧, 편향 중에는 이렇게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판단 기제가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또 다른 편향은 인간이 가진 어림짐작(heuristic)들입니다. 이는 당장 자신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오류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려하면 이런 어림짐작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판단 기제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만약 인간의 이런 비합리적 행동에 나름의 규칙이 있다면 우리는 환경, 곧 인간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외부 정보를 조종함으로써 해당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넛지는 바로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대표적인 넛지인 패스트푸드 메뉴의 칼로리 표시는 건강을 원하는 이가 메뉴를 선택할 때 이를 참고함으로써 자신의 평소 생각에 더 가까운 메뉴를 고를 수 있게 유도합니다.

하지만 넛지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말로 그 넛지들이 효과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10여 년 전 미국의 심리학계에서 출발해 이제 모든 학문 영역으로 번지고 있는, 과거의 실험 결과 중 의심스러운 것들을 모두 한 번은 의심하게 만드는 재현성 위기가 있습니다. 이는 이미 이루어진 실험에 대해 유의미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가설을 변경하는 행위나 원하는 결론을 얻고자 새로운 통계 기법을 적용하는 행위 등을 함으로써 해당 연구가 재현할 수 없게 된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그 자체로 과학 전반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증명하고자 하는 가설과 사용할 통계 기법 등을 실험 전에 미리 등록하는 방법이 권장되고 있으며, 현실에서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이 넛지들이 개인의 판단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사고로 사망할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에 관해 기본값을 ‘기증함’으로 두고 이를 거부하는 이들만 장기를 기증하지 않게 했을 때 사람들의 장기 기증 비율은 크게 올라간 사례는 넛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세상에는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가 있고, 장기 기증자가 늘어나는 것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넛지는 개인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고민도 없이 결정하게 떠미는 효과도 있습니다.

전문 번역: 대세가 된 ‘넛지’,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지난 11월 30일, 뉴욕대학교의 디지털연구소장 레이프 웨더비는 뉴욕타임스 칼럼난에 넛지에 대한 이런 비판들과 함께 행동경제학 전체를 두루 비판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넛지의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과 앞서 설명한 재현성 위기를 거론합니다. 또, 파워포즈의 에이미 커디, 정직 연구의 댄 에리얼리 등 행동경제학의 스타가 모두 데이터 조작의 의심을 받고 있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매우 큰 경제적 보상을 가져다주는 오늘날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그의 주장은 행동경제학 분야를 전체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웨더비가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예를 들어 그는 경기장 입장이나 신용 등급을 결정하는 알고리듬이 학계와 같은 엄정한 동료 평가를 통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곧, 그 알고리듬이 과학의 옷을 입고 너무 큰 신뢰를 받고 있어서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 그런 사적 영역의 시스템에 대해 그다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곧, 경기장 입장을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어림짐작에 의거해 여러 방법들을 시도해 왔고, 그중 현실에서 더 효과가 컸던 방법이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이제 새로 제시되는 방법들 중에 행동경제학을 기반으로 한 방법이 있을 뿐, 이들 역시 현실에서 살아남거나 아니면 퇴출되겠죠. 따라서 그 방법들이 과학의 탈을 쓴 사이비라 깎아내리는 건 지나쳐 보입니다.

웨더비가 칼럼의 뒷부분에서 주장한,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 철학적인 주장이라는 말에는 더 동감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더 많은 새로운 정의와 더 나은 검증 방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기장 입장에 더 효율적인 방법과 신용 등급을 결정하는 더 합리적인 방법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철학적 결론과는 무관하게 오직 과학적 방법으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