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은혜를 모르는 호모 사피엔스로 남을 것인가
*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2월 2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 45억 년 동안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다양한 차원에서 상호작용하며 커다란 시스템을 유지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를 생태계라 부릅니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원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가 말해주는 것처럼 인간은 생태계의 파괴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때문에 지금까지 있었던 다섯 번의 대멸종에 맞먹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복잡한 생태계: 항상성과 나비효과
생태계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며, 이는 두 가지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생태계가 일종의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외부 충격이 주어졌을 때 생태계가 스스로 이에 대응하며 안정된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예들은 무수히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에 생긴 어떤 문제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걷잡을 수 없이 큰 결과를 낳는 경우입니다. 여러 유명인의 말로 전해지는, 꿀벌이 사라질 때 일어날 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인간과 생태계의 복잡한 관계는 위의 두 가지 관점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생태계의 일원으로 본다면,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지구 온난화를 다시 기술의 힘으로 되돌리려는 인류의 노력이 결국 하나의 커다란 생태계가 보여주는 자정작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인간을 생태계의 파괴자로 본다면, 지금 이 순간 인간의 오만과 탐욕 때문에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전문 번역: 투구게가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 “있을 때 잘해”
지난 16일, 뉴욕타임스에는 인간과 생태계의 이런 복잡한 관계를 알려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바로 지난 4억 5천만 년 동안 큰 진화 없이 형태를 유지해온 투구게에 인간이 커다란 빚을 지고 있으며, 동시에 앞서 다섯 번의 대멸종을 이겨낸 투구게가 인간 때문에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멸종을 막을 힘 또한 인간에게 있습니다.
투구게는 다른 절지류처럼 푸른색 피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절지류에서는 볼 수 없는 놀라운 특성이 하나 있습니다. 외부의 균에 대응하는 백혈구가 없는 대신 LAL(리물루스 아메보사이트 라이세이트)이라는 단백질이 피를 응고시키는 방식을 택하는 겁니다. 이 LAL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내독소(endotoxin)에 반응하는 자연계의 유일한 물질이기 때문에, 투구게의 피는 주사 용액이나 의료용품의 안전성 검사에 쓰였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안전성 검사에 쓸 피를 얻고자 투구게를 과도하게 사냥하면서 이들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투구게가 멸종된다면, 인간은 저렴하고 안전한 내독소 검사 도구를 잃게 됩니다. 여기에 지난 5억 년을 멀쩡히 살아온 투구게를 인간이 멸종시켰다는 오명이 더 큰 문제일 겁니다.
칼럼을 쓴 데보라 크라머는 투구게를 이용하지 않고, 화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바로 재조합 C인자(rFC)라는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물질로 내독소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 물질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표준이 마련되지 않아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크라머는 지적합니다. 그러나 전문가와 제약회사가 모두 이 물질로 투구게(의 피)를 대체하기를 바란다면, 왜 20년 동안 재조합 C인자를 이용한 검사가 진척을 이루지 못했는지 좀 더 자세히 조명해줬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재조합 C인자가 정말로 투구게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다면, 진작에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표준이 마련되고 있다고 하니, 곧 투구게를 남획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생태계의 균형을 위협하는 인간의 필요
다시 생태계 문제로 되돌아와 봅시다. 인간은 투구게 덕분에 더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고, 투구게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무척 많을 겁니다. 아마도 투구게를 대신할 재조합 C인자를 만들어낸 이들도 투구게 덕을 봤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과거 안전성 검사를 위한 동물실험에 이용되던 토끼나 설치류 역시 투구게 덕분에 수십만 마리가 희생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생태계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동물실험이라는 주제가 나왔습니다. 오늘날 동물의 권리는 분명 신장되었고, 이는 보다 보편적인 생명의 가치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하나의 진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을 비교해야 하는 상황이 존재합니다. 동물실험이 대표적인 예죠.
물론 인간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동물의 생명도 소중히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겁니다. 몇 가지 시도되고 시행 중인 기술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 장기를 이용한 실험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방법이 그렇습니다. 정말로 언젠가는 불쾌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고,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