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살, 다이어트에 얽매이지 않고 명절 나기
2017년 11월 21일  |  By:   |  건강  |  2 Comments

* 미국 추수감사절 주간을 맞아 소아과 의사 애런 캐롤이 뉴욕타임스 업샷에 쓴 칼럼입니다.

—–

우리집에는 여느 집처럼 이 집에 사는 저와 아내의 사진을 담은 액자가 있습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사진들이 하나같이 비교적 최근 저희 부부의 모습을 찍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오래된, 빛바랜 사진 속 지금보다 훨씬 젊은 우리 모습은 적어도 밖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벌써 20년이나 가까이 되어가는 저의 레지던트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 저는 정말로 제 몸을 거의 돌보지 않았습니다. 소아과 의사로 환자를 진료하고 보호자들에게는 좋은 음식 먹고 운동 꾸준히 하라는 말을 매일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정작 저 자신에게 몸에 좋은 걸 챙겨줬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살이 꽤 많이 쪘습니다. 아내 에이미도 저와 함께 살이 쪘죠.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아내는 이대로 있을 수 없다며 변화를 선언했습니다. 웨이트워처스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다이어트에 돌입하겠다고 했죠. 한 명만 식단을 조절하고 신경을 쓰면 가족의 한 끼 식사를 위해 번거롭게 요리를 두 번 해야 하는 셈이니, 저도 아내와 함께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습니다. 당시 웨이트워처스는 체지방을 줄이고, 섭취하고 소비하는 열량을 관리하며 몸속 섬유질을 늘리는 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었죠. 아내와 저는 둘 다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목표치에는 모자랐지만, 분명 살이 빠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웨이트워처스가 하라는 대로 살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배고파서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인 날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방을 줄여야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장을 보거나 음식을 먹을 때 항상 “저지방” 식품에 집착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웨이트워처스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칼로리, 설탕, 지방, 단백질을 종합적으로 잘 관리해야 합니다.)

몇 년 뒤 저는 다시 한번 다이어트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식단보다 운동에 중점을 뒀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극도로 힘을 쏟아붓는 운동법을 택했습니다. P90X, P90X3, 인새니티 등을 두루 해봤는데, 각각 운동할 때 권장 식단을 알려줍니다. 여기에는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나와 있는 정도입니다. 4~5개월 동안 권장 식단표에서 먹지 말라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살이 빠지는 듯하다가 이제 몸무게는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해봤습니다. 여러 책과 연구논문을 읽고 난 뒤 진짜 몸에 나쁜 악당 같은 것은 지방이 아니라 탄수화물이라는 확신이 든 뒤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제가 먹는 모든 음식 가운데 설탕을 아예 거의 제거해버렸습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몸무게가 주는 듯하더니 이내 정체됐습니다.

짧게 소개한 제 경험에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이니까요. 다이어트에 도전한 사람들은 처음에 반짝 성공했다가 시간이 흐르며 몸무게가 원래대로 돌아오거나 오히려 더 늘어나기도 합니다. 특별히 효과가 뛰어난 다이어트 비법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통계를 보면 어떤 한 가지 다이어트 방식이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아직 이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데, 의사, 다이어트 전문가, 운동 트레이너, 유명 블로거들은 저마다 우리가 무얼 먹고 어떤 건 먹으면 안 되는지에 관해 완전히 다른 말을 합니다.

동굴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식습관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글루텐을 식탁에서 몰아내야 한다.

유기농 식품만 먹어야 한다.

유제품 먹지 말아라.

지방을 끊어라.

육식은 안 된다.

하나같이 한차례 열풍이 지나가면 이내 잠잠해지는, 바람처럼 왔다 가는 다이어트 유행입니다. 그런데 돈 주고 다이어트 했던 사람들 가운데 지갑은 얇아지고 허리둘레는 오히려 두꺼워지는 씁쓸한 결말을 피해 간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내과의사이자 의학 연구자로서 식단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주제는 정말 전문가인 저로서도 헷갈릴 때가 많을 정도로 워낙 수많은 의견이 쏟아져 나오는 주제입니다. ‘현미가 좋다.’거나 ‘고기를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저만의 기준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환자들에게 어떻게 먹어야 좋은지 얘기해줄 수 있고, 저부터 건강한 식단을 짤 수 있을 테니까요.

먼저 영양소와 음식, 식단에 관한 수많은 의견에서 공통으로 찾을 수 있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어떤 음식은 잘못 먹었다가는 궁극적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꽤 섬뜩한 가정이죠.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지금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살을 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음식, 이 성분에 있다.’는 식의 논리는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는 인간이 음식과 먹을거리, 혹은 무언가를 먹는 행위에 관해 생각하던 것과는 어떤 의미에서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선원들이 괴혈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감귤이나 오렌지를 먹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음식에 관한 전문가들이 내놓은 조언은 대개 “무엇을 먹으면 아프지 않고, 어떤 병에 걸리는 걸 예방할 수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미국인이 지금보다 훨씬 영양 상태가 좋지 않던 옛날에는 음식에 들어있는 비타민B나 비타민C 성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므로 이를 섭취하는 법을 따로 강조하고 알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인 가운데 영양실조에 걸렸거나 특정 비타민이 너무 부족해 문제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음식에 관한 조언도 ‘무엇을 줄이고, 피하고, 덜 먹거나 끊으라.’는 쪽이 많지 ‘무엇은 반드시 챙겨 먹으라.’는 쪽은 잘 없습니다.

하도 조언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음식에 관한 충고는 대개 훈계조를 띱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가 지금 하는 대부분의 행위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가정하고 시작하는 조언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먹거나 요리하는 즐거움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합니다. 저는 2년 전 건강한 식단을 짜는 데 필요한 간단한 기본 원칙을 소개하는 글을 쓸 때 무엇보다 부정적인 톤으로 훈계하듯 말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가공식품 자체를 당장 끊는 건 불가능한 미션일 겁니다. 하지만 전체 식단에서 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보는 건 어떨까요?

글을 쓸 때는 개인적으로 7번 원칙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매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세요. 그 사람이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 혹은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면 더 좋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2번 원칙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대한 집에서 요리해서 드세요. 집밥이 최고입니다.

최근 들어 요리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배우고 있는데, 레시피 자체를 익혀서 제 요리 실력을 높이는 것보다 왜 어떤 레시피가 좋고, 좋은 레시피의 비법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사민 노스랏이 쓴 “소금, 지방, 산(酸), 열(熱)”을 특히 흥미롭게 읽었고, 그 책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제목에 등장한 (좋은 요리에 필요한) 네 가지 요소 가운데 두 가지는 이미 수많은 전문가의 블랙리스트에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이름을 올린 것들입니다. 전문가들의 블랙리스트에 있다고 해도 요리가 제맛을 내려면 이 모든 것이 빠지면 안 됩니다.

아내와 저는 최근 어느 정도 다시 몸무게를 줄였는데, 이번 다이어트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원칙은 바로 최대한 집에서 음식을 요리해 먹기로 한 원칙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해졌습니다. 최근 들어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 속 우리 부부는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즐기는 데 오롯이 시간을 쓰는 추수감사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의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음식과 요리에 관한 새로운 원칙을 세우고 그에 따라 더 행복하고 건강한 식단과 식생활을 정착시켰다지만, 그러다가도 가끔 예전 습관이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저는 또 살을 뺄 궁리를 하곤 했습니다. 저는 비만도 아니고 건강합니다. 하지만 키와 몸무게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저는 여전히 과체중으로 분류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늘 지금보다 날씬한 제 모습을 ‘정상’으로 그리곤 합니다. 그래서 전에 했던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또 해봤죠. 처음에는 살이 빠졌다가 다시 정체됐습니다. 이번에는 짜증이 났습니다.

지난주 큰아들인 제이콥이 제게 왜 다이어트를 하는지 물었을 때 저는 아내에게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아들은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고, 저도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살을 뺀다고 제가 더 건강해지거나 더 오래 살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삶의 질이 뚜렷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제 몸이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어차피 제 옷맵시도 그대로일 겁니다. 아마도 제가 다이어트하는 걸 알아봐 주는 이도 거의 없을 겁니다.

결국, 아직도 저는 날씬한 것이 곧 건강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셈입니다. 건강한 식습관이란 결국 살을 빼는 데 집중하는 식단을 짜는 일이라는 생각도 전혀 버리지 못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다 거기에 몰입해 착각하고 있는 거죠. 제 다른 아들 노아는 저와 체격이 비슷합니다. 체질도 비슷하다면 노아는 언젠가 쉽게 살이 찔 겁니다. 지금처럼 몸무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면 아들에게 그때 가서 해줄 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제이콥은 저보다 현명합니다. 저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요. 이곳 업샷에 글을 쓸 때마다 제가 항상 강조하고 싶은 기본적인 원리가 있다면 건강에 관해 내리는 모든 결정은 이로운 혜택이 있는가 하면 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음식과 먹을거리에 관한 한 우리는 지나치게 무엇이 해로운지에만 집중합니다. 제 딸 시드니가 어젯밤 컵케이크를 구웠습니다. 저도 하나 먹어보라고 주길래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는 저도 행복했고, 제가 잘 먹는 모습을 본 딸도 행복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