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에 빠진 탄산음료의 끝없는 추락
2015년 10월 8일  |  By:   |  건강, 경제  |  2 Comments

오늘 이야기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됩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여러 차례 필라델피아의 사례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필라델피아가 탄산음료의 몰락을 주도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시민들, 특히 지역 어린이,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서 탄산음료를 멀리하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는 시 정부와 시민단체의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필라델피아는 미국 시장에서 특히 큰 위기에 봉착한 탄산음료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마이클 너터(Michael A. Nutter) 필라델피아 시장은 탄산음료(soda)에 특별소비세를 매기려다가 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탄산음료 업계는 시의회 의원들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 규제 당국에 전방위 로비를 벌이고 유통업체, 캔, 병 등 용기 제조업체들과 힘을 모아 대대적인 거리시위를 조직했으며, 탄산음료가 비만을 비롯해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인식을 타파하고자 지역 어린이병원에 1천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노력은 결실을 보았습니다. 결국, 특별소비세 법안은 의회 법안 심사 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으니까요. 뉴욕주,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몸에 안 좋은 탄산음료를 소비자들에게서 떼어놓고자 하는 시 정부, 보건 당국은 세금을 추가로 매기거나 탄산음료 판매에 엄격한 제한을 두려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세금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업계가 벌인 로비의 힘이 더 막강했습니다. 대단히 진보적인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Berkeley, CA) 정도를 제외하면 탄산음료에 대한 특별소비세 법안은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탄산음료 업계는 그러나 결코 웃을 수 없습니다. 탄산음료 소비가 전반적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을 둘러싼 개별 전투에서는 이겼는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계속 밀리는 형국입니다. 탄산음료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닙니다. 보건 당국 등 정부뿐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과 관련된 수많은 시민 단체들이 이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 뉴스는 상식이 됐습니다. 소비자들은 음료 한 잔을 마실 때도 더 건강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탄산음료를 점점 멀리하고 있습니다.

탄산음료 업계로서는 특별소비세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한 음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소비자들이 하나둘 탄산음료를 저버리는 추세까지는 어쩌지 못한 셈입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끝을 모르고 치솟던 (저칼로리,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제외한) 전통적인 탄산음료 매출은 지난 20년간 무려 25%나 줄어들었습니다. 탄산음료는 단기적인 매출 부진이 아니라 아예 미국인들의 식습관, 음식 문화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발 빠르게 채운 건 생수로, 생수가 탄산음료를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 제품군이 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게 업계의 분석입니다.

지난 10년간 미국인들의 식습관에 나타난 변화를 이야기할 때 너도나도 탄산음료 소비를 줄인 사실은 빼놓지 않고 등장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탄산음료 소비가 줄어들면서 일일 칼로리 섭취량도 줄었습니다. 정부가 실시한 대규모 조사 결과, 2004년에서 2012년 사이 미국 어린이들이 설탕 첨가물이 든 음료수에서 섭취하는 칼로리는 하루 평균 79cal나 줄어들었습니다. 음료수를 바꿨을 뿐인데, 79cal는 8년 사이 줄어든 칼로리 섭취량의 4%나 차지합니다. 아동-청소년 비만율이 줄어들거나 적어도 늘어나지 않은 데 큰 영향을 미친 셈입니다.

필라델피아는 전국 평균보다 탄산음료 소비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아동-청소년 비만율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교 매점에서는 탄산음료 판매가 금지돼 있고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건강한 식습관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공공장소에 있는 음료수 자판기에서도 탄산음료 판매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동네 구멍가게들은 탄산음료뿐 아니라 불량식품 판매를 전반적으로 줄이고 대신 건강한 식료품을 알리고 팔 경우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습니다. 시 정부와 시 보건 당국은 아예 TV와 라디오에 공익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아이들에게 탄산음료를 먹이는 부모를 향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니 정말 끈기를 갖고 매일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마음으로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 어린이의 건강이 달린 문제인 만큼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기도 했죠.”

내년 1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너터 시장의 말입니다.

지난여름 뉴욕시 하버드 클럽에서 탄산음료업계 소식지인 <비버리지 다이제스트(Beverage Digest)>가 주최한 연례 모임이 열렸습니다. 코카콜라(Coca-Cola), 펩시콜라(PepsiCo), 닥터페퍼 스내플(Dr Pepper Snapple Group) 등 잘 알려진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규모 업체, 관계사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제품을 알리고 시장의 동향을 확인하는 자리였는데, 예상대로 희망과 낙관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비버리지 다이제스트>의 편집장 존 시처(John Sicher)는 개회사에서 다음과 같이 상황을 요약했습니다.

“다들 지난 10년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생수 회사 또는 생수 브랜드 말고는 음료 업계가 전반적으로 대단히 고전했던 시간이었어요.”

각 회사는 아이스티부터 스포츠음료, 과일 맛 물 등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탄산음료 매출이 정체되거나 줄어들자 어쩔 수 없이 짜낸 고육지책으로 코카콜라의 경우 지난 2004년 전체 제품 가짓수가 400개였는데 지금은 700개나 됩니다. 들이를 대폭 줄인 작은 콜라캔, 옥수수 시럽 과당 대신 진짜 설탕을 넣어 상대적으로 더 건강한 음료 등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제품은 끝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경영진도 소비자들의 입맛과 건강에 대한 고려가 회사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비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우리 회사 제품 가운데 일부 품목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코카콜라의 연례 사업보고서 가운데 위험 요인(risk factor)을 언급한 부분의 첫 문장입니다. 펩시콜라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탄산음료가 비만 등 성인병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학교 매점에서, 음료수 자판기에서, 많은 직장과 공공기관 사무실에서 탄산음료가 퇴출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음료 제조업체들은 이런 변화를 피부로 느낍니다. “매년 많게는 2% 정도씩 매출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탄산음료) 유통업체인 호닉만 그룹의 회장인 해롤드 호닉만(Harold Honickman)의 말입니다.

호닉만은 탄산음료에만 붙는 특별소비세는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대신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등 단맛이 나는 다른 군것질거리에도 포괄적으로 세금을 매기는 설탕세(sugar tax) 정책을 지지합니다. 이미 보건 당국은 탄산음료를 거의 담배처럼 공중 보건의 적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다른 불량식품, 몸에 안 좋은 군것질거리와 비교해서 탄산음료가 특히 얼마나 나쁜지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지만, 아무튼 탄산음료는 벌써 “(많이) 마시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뉴욕대학 영양학과 교수 마리온 네슬레(Marion Nestle)는 곧 출판될 저서에서 탄산음료의 시대가 갔다고 분석하며, 예전에 흡연율이 떨어질 때 그랬던 것처럼 중산층 이상, 백인들에게서 먼저 탄산음료 소비가 줄어들었는데 곧 저소득층, 유색인종들도 이 흐름에 동참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경우 2006년에서 2013년 사이 전체 남자아이의 비만율이 8.1% 감소하는 동안 흑인 남자아이의 비만율은 11.3%나 줄었습니다. 시 정부는 보건 당국과 일선 학교의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고 자평했습니다.

필라델피아 북쪽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자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학군에 있는 존위스터(John Wister) 초등학교의 교장 도나 스미스(Donna Smith)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학생의 96%가 급식비를 지원받는데, 스미스 교장이 처음 부임했을 때 아이들은 점심 혹은 간식으로 학교에 오는 길에 있는 가게에서 과자와 탄산음료 등을 사서 싸 왔습니다. 스미스 교장은 불량식품 없는 학교를 선언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같이 아침을 먹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리고는 학교 주변 가게를 일일이 방문하며 아이들에게 아침에만큼은 먹을거리를 팔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정통신문에 몸에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하는 이유를 꼬박꼬박 써서 보냈고, 선생님들도 아이들 앞에서는 간식으로 불량 식품을 먹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학교들이 교내 자판기에서 탄산음료를 빼고 있을 때 존위스터 초등학교에는 아예 자판기도 없었습니다. 스미스 교장은 자판기를 들이는 대신 식수대만 만들어놓고 학생들에게 물을 많이 마시도록 했습니다.

탄산음료 회사들의 고민은 몇 년 반짝 성공을 거두는 듯했던 다이어트 소다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자 더욱 깊어졌습니다. 탄산음료에 들어가는 첨가물에 몸에 직접 안 좋거나 위험하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래도 소비자들은 갈수록 인공 첨가물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건강한 마실 거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딱 맞는 제품이 바로 생수입니다.

펩시의 아쿠아피나(Aquafina), 코카콜라의 다사니(Dasani)를 비롯해 기존 탄산음료 회사들은 생수 브랜드도 갖고 있지만, 기존의 탄산음료에 비교하면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좀처럼 알아주지 않습니다. 또한, 생수 매출의 증가는 회사로서 더 중요한 탄산음료 매출이 줄어든 결과이기도 한 데다가 생수만 전문적으로 제조해 판매하는 업체와 얕은 마진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탄산음료 업체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도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마실 거는 무조건 코카콜라만 마시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탄산음료 브랜드는 한 사람의 평생 입맛을 대개 결정하는 10대 소비자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하는데, 10대들 사이에서의 실적을 보면 처참한 수준입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어려서부터 몸에 안 좋은 음료수 말고 가능한 한 물이나 주스를 먹이려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탄산음료의 달콤한 맛에 전혀 현혹되지 않고 건강하지 않은 불량식품으로 인식해 이를 계속 멀리합니다. 어려서부터 어떤 맛에 길들지 않은 소비자가 30대 중반에 갑자기 기호를 바꾸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너터 시장이 한창 특별소비세 도입을 주장하고 시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닐 때 그는 집무실 한가운데 마운틴듀 한 병과 찻숟갈로 17숟가락 분량의 설탕을 담은 용기를 놓고 다녔습니다. 시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그 자신도 매일같이 다짐을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많은 설탕을 마시는 거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도 탄산음료를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특별소비세 도입은 결국 물거품이 됐지만, 필라델피아는 분명 바뀌었습니다. 필라델피아 북쪽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한 곳을 방문해봤더니, 여전히 불량식품, 군것질거리도 많이 팔지만, 그 가운데 신선한 채소, 과일, 건강음료도 같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음료수가 든 냉장고마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메시지가 적혀있습니다. “탄산음료 한 병 마신 걸 만회하려면 한 시간 넘도록 열심히 춤을 춰야 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런 식입니다.

“그냥 물 사세요!(Choose water!)”

지역의 비영리단체인 푸드 트러스트(Food Trust)에서 붙여놓은 메시지도 보입니다. 푸드 트러스트는 건강한 먹을거리는 판매하고 소비자에게 관련 정보를 열심히 알리는 가게에 자체적으로 제작한 인증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직접 탄산음료나 다른 불량식품 판매를 억제하는 건 아닙니다.

“더 건강한 식품,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찾고 그 효과를 직접 확인하도록 소비자들의 의식을 바꾸는 게 결국 가장 확실한 해결책입니다. 이 동네 가게들은 대부분 마진이 크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팔 수 있는 건 다 팔고 싶어 해요. 그런 가게를 보고 이건 몸에 안 좋으니 팔지 말아라, 물건 빼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대신에 건강 제품을 팔면 결국 소비자들이 그 물건을 더 찾게 될 거고 매출도 늘어날 거라는 식으로 가게들을 설득합니다.”

그 결과 실제로 가게들이 조금씩 전에는 없던 물건을 들여오기 시작한 겁니다. 생수, 건강음료들이 다 그런 식으로 소비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가게에서 큰 들이 탄산음료 한 병을 사 가는 17살 하니프 터커(Hanif Tucker) 군을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요즘에 보기 어려운 탄산음료 마니아 청소년이 아닐까 해서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전에는 하루에도 몇 캔을 마셨어요. 정말 크림 소다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학교 풋볼 코치 선생님이 탄산음료는 몸에 너무 안 좋다고 운동 잘 하고 싶으면 당장 끊어라, 끊지 못하겠으면 줄이라고 말씀하셔서 2년 전부터 많이 줄였습니다. 이제는 많아야 일주일에 두 병 정도 마시는 것 같아요. 대신 뭐 마시냐고요? 그냥 물 마시고, 주스 마시고 그러죠. 주위에서 코치 선생님 말고도 다들 그러니까요. 탄산음료는 몸에 정말 안 좋다고.”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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