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랙 스타에서 성소수자 운동의 대변인으로

배우 조지 타케이(George Takei) 1960년대 TV 시리즈 스타트랙의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역할이 아닌 조지 타케이라는 인간 자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간 성소수자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케이의 삶을 통해 우리는 미국 정치사와 문화사의 주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의 진주만 습격 후 미국 내 일본인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배우로 자라났으며, 2005년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의 결혼평등법안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고 2008년에는 오랜 애인과 결혼했습니다. 그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투 비 타케이(To Be Takei)>의 개봉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아래에 타케이와 함께한 인터뷰의 주요 장면들을 소개합니다.

삶의 대부분을 벽장 속에서 살아왔는데?

무명 배우였던 시절, 멋진 외모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스타 탭 헌터(Tab Hunter)가 동성애자라는 스캔들 하나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나는 커리어에 대한 야망이 컸기 때문에 철저한 이중 생활을 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일본인 수용소에서의 어린시절은?

우리는 진주만을 습격한 일본인들과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수용소에 감금된 채 수 년을 살았습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우리 가족을 끌어냈을 때 저는 갓 다섯 살이었죠.

수용소 이후의 삶은?

제가 9살 때 우리 가족은 수용소에서 풀려났지만, 수용소 안의 삶에 익숙해진 저와 어린 동생들에게 바깥 세상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수용소에서 나왔을 때 우리 가족에게는 한 푼도 없었고, 사람들의 증오심은 여전했습니다.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만이 우리를 받아줘서, 아버지는 LA의 중국 식당에 접시닦이로 취직할 수 있었죠.

1960년대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삶은?

당시 아시아계 배우들에게는 고정관념, 그것도 매력적이지 못한 고정관념에 가까운 역할 밖에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부끄럽게 할 역할은 맡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들은 피했습니다.

스타트랙의 성공에 대하여

1965년에 파일럿 에피소드를 촬영하면서 저는 이 작품이 수작이라는 느낌을 바로 받았습니다. 대본도 좋았고, 배우들도 훌륭했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TV 시리즈는 늘 한 시즌만에 종영되곤 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타트랙은 3시즌이나 이어졌고, 재방송이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큰 사랑을 받게 되었죠.

성소수자 운동에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데?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저는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끝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여러 TV쇼에 게이 조지 타케이로 까메오 출연을 요청받게 되었죠. 그러나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이미 “개종”한, 즉 성소수자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에게만 다가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잖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사느라고 바빠서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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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8)

옮긴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서는 민간인 사상자가 끝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보고자 Vox가 색인 형식으로 정리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팔레스타인과 연관된 여러 조직과 역사적 사실들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마스를 가리켜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단순히 칭해버리고 마는 게 얼마나 사실을 외면한 편향된 정의인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9.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ian Liberation Organization, PLO)와 파타(Fatah),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사실상의 자치권을 인정 받고 있는 준국가 정부로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실질적인 통치력을 갖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협상에 임하는 단체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의회에 해당하는 인민들의 대표기관이고, 파타는 자치정부와 해방기구를 수십 년 동안 이끌어온 세속적 민족주의 정당입니다. 그런데 요르단강 서안에서는 파타가 영향력을 인정 받지만,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정당한 통치세력으로 인정받는 건 하마스입니다. 하마스와 파타의 껄끄러운 관계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늘 걸림돌이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4월 23일, 양측은 하나의 팔레스타인 정부를 세우기로 합의했습니다.

1964년 처음 창설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파타를 세운 아라파트(Yasser Arafat)는 이를 위해 이스라엘 민간인들에 대한 테러 공격도 서슴치 않았죠. 하지만 지난 1993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대표로 인정하면서 양측의 평화협정이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뗍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이끄는 인물은 온건파 아바스(Mahmoud Abbas)로 그는 2차 무장봉기(Second Intifada)를 수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직접적인 평화협정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아바스는 우회적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UN의 비회원국 자격을 공인받는 데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미국은 줄곧 이에 반대해 왔습니다.

10. 하마스

1987년 창설된 하마스는 이슬람 정치 조직이자 무장 단체입니다. 하마스의 헌장에는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을 목표로 한 자살 폭탄테러와 로켓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하마스가 강경한 자세로 종종 이스라엘군의 피의 보복을 부르는데도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부패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복지 안전망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2006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회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자치정부가 앞서 이스라엘과 합의한 협상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사실상 자치정부에서 떨어져나와 가자를 독립적으로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하마스와 파타는 잇따라 통합 협상에 실패하다가 지난 4월 23일,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11. 인티파다(Intifadas)

이스라엘을 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장봉기를 일컫는 인티파다는 198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두 차례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시위는 무장봉기라 이름이 붙긴 했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광범위한 총파업과 비폭력 시위에 가까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공격도 기껏해야 돌멩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게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이스라엘은 총칼로 시위대를 제압해 팔레스타인 측에서 훨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2000년 양측의 평화협정이 결렬된 직후 발생한 두 번째 인티파다는 훨씬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었던 아라파트가 계획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조직적 폭력을 조장했다고 비난합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측은 당시 이스라엘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샤론(Ariel Sharon)이 성산(Temple Mount)를 방문해 불필요하게 팔레스타인을 자극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비난합니다. 직접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든 평화협정 결렬로 양측의 불신은 일촉즉발 상태였습니다. 샤론은 얼마 후 이스라엘 총리가 됩니다.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의 반 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이스라엘의 과도한 진압으로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발생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무장세력들이 자살폭탄 테러와 로켓포 공격을 벌여 이스라엘 희생자가 발생하고 또 다시 보복공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2차 인티파다로 이스라엘인 1,000여 명, 팔레스타인인 3,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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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웨덴 아빠들은 육아 휴가를 많이 쓸까?

스웨덴은 양성평등 지수 대부분에서 최상위를 차지합니다. 세계경제포럼은 스웨덴을 전 세계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국가로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은 여성들에게만 좋은 국가가 아닙니다. 젊은 아빠들에게도 스웨덴은 좋은 국가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90%가 출산 휴가를 씁니다. 지난해 34만 명의 아빠들이 총 1,200만 일에 달하는 출산 휴가를 썼는데 일 인당 7주를 출산 휴가로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엄마들은 아빠들보다 더 긴 출산 휴가를 쓰지만, 그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 스웨덴 아빠들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육아 휴가를 많이 쓸까요?

40년 전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남녀 구분 없이 육아 휴직 비용(parental-leave allowance)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육아 휴직을 쓰면 아이 한 명당 180일까지는 임금의 90%를 지급하는 정책입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육아 휴직 날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이 정책을 실행했을 때 육아 휴직을 쓰는 남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책이 시행된 첫해에는 전체 육아 휴직 중 0.5%만 아빠들이 신청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비율은 25%로 올랐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책이 더 관대해졌기 때문입니다. 첫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최대 180일까지 허용되던 육아 휴직이 480일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정책 자체가 더 많은 남성이 육아 휴직을 선택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1995년에 “아빠의 달(daddy month)”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이 정책은 양쪽 부모 모두가 적어도 한 달씩 육아 휴직을 쓰면 부부가 쓸 수 있는 총 육아 휴직 기간이 한 달 늘어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2002년에 확장되었는데 엄마와 아빠가 두 달 이상 육아 휴직을 쓰면 이들이 쓸 수 있는 총 육아 휴직 기간이 두 달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몇몇 정치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고 싶어합니다. 이들은 전체 육아 휴직의 절반은 엄마들이, 절반은 아빠들이 써야 한다는 정책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스웨덴이 시행하고 있는 “아빠의 달”과 비슷한 정책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도입되었습니다. 독일은 기존 육아 휴직 정책을 스웨덴과 유사하게 2007년에 개정했는데 정책이 시행된 지 두 달 만에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아빠의 비율이 3%에서 20%로 상승했습니다. 육아 휴직 기간을 엄마와 아빠가 동등하게 나눠서 써야 한다고 지지하는 입장에서 내세우는 강력한 주장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웨덴 남성들이 육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면서 스웨덴 여성들의 임금과 자기 행복 지수 역시 상승했습니다. 즉, 아빠들이 기저귀를 갈고 놀이터에서 함께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전체 가족에 혜택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Economist)

OECD 국가 별 유리천장 지수.

OECD 국가 별 유리천장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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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람들은 식욕을 잘 참을까?

온종일 일에 지쳐 퇴근한 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먹고 싶다는 유혹을 참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런 유혹을 간단히 무시합니다. 이 차이는 바로 사람마다 뇌 활성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왜 인간의 의지는 쉽게 무너지는지는 이미 연구가 많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왜 남보다 자기절제를 잘하는지에 대해선 연구가 적은 편입니다. 미 다트머스 대 연구팀은 사람들이 기름지고 입맛 당기는 음식 사진을 볼 때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하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제 단지 특정인의 뇌 활성도 수준을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식욕의 정도, 그 식욕에 반응할 확률, 식욕에 굴복해 섭취하는 음식량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다트머스대 뇌과학 인식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리치 로페즈는 “미래에는 습식 장애를 앓는 환자나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에게 의사가 (뇌 활성도 측정 자료를 보고) 처방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페즈와 연구팀은 기능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해 뇌 특정 부위의 활성화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특히 중격핵(측좌핵, Nucleus Accumbens)과 하전두회(inferior frontal gyrus) 부위의 활성화 정도를 살펴봤습니다.

참가자 31명에게 몇 가지 그림을 보여주는 동시에 기능자기공명영상장치로 뇌를 스캔해 활성화 부위를 찾았습니다. 실험에 쓰인 그림 절반은 치즈버거, 프렌치프라이, 디저트와 같은 고열량, 고지방 음식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사람들과 자연 풍경 같은 일상적인 그림이었습니다.

그 뒤 한 주 동안, 참가자들은 전화로 하루에 이따금 자기 상태를 보고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식욕이 생겼는지, 식욕 강도가 어떠한지, 그래서 음식을 먹었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뇌의 중격핵 부분이 잘 활성화한 사람은 더 강한 식욕에 시달렸고, 더 높은 확률로 식욕에 굴복했습니다. 한편 하전두회 영역이 활성화가 잘 되었던 사람은 이 유혹에 더 성공적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하전두회 부위가 낮게 활성화된 사람은 높은 활성도를 가진 사람보다 8.2배 더 식욕을 참지 못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로페즈는 장래 이 분야 연구는 자기통제력을 높이는 기술 개발 중심으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다른 연구진은 이른바 ‘의식적 명상’이라든지 식욕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장차 식욕 외에도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 섹스 중독 등의 분야에도 비슷한 연구가 이어질 것입니다. (Live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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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Ebola) 바이러스 백신은 언제쯤 출시될까?

기니(Guinea)에서 시작된 에볼라(Ebola) 바이러스가 최근 서부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각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바이러스의 치료와 확산 방지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국경없는 의사(Doctors Without Borders)팀은 ‘지금 이곳에서는 전혀 상황이 통제되고 있지 않다.’며 현 상황의 심각함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어떠한 백신이나 치료법조차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바이러스의 추가 확산에 대한 공포감만 커지고 있습니다.

텍사스 대학에서 미생물학과 면역학을 연구하는 바이러스학자 토마스 가이즈버트(Thomas Geisbert)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개발이 완료되기까지는 적어도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가이즈버트 박사는 동물실험 단계까지 성공한 몇몇 프로젝트가 현재 3~5곳의 중소규모 제약회사들에서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임상실험을 통과한 프로젝트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임상실험 통과를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각국 정부의 부족한 연구비 지원과 까다로운 규제 체계를 꼽았습니다.

가이즈버트 박사는 제한된 지역에서만 창궐했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례를 생각할 때,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습니다. 시장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신속하게 백신 개발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가 이미 동물실험 단계까지 완료한 중소형 제약회사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재정 지원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Scientific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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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게임을 끝낸 후 그 사운드가 귀에 계속 맴도나요?

우리가 어떤 게임에 정말 몰두할 경우 우리는 그 게임을 끄고 나온 뒤에도 계속 그 영향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을 느낍니다. “가상 행동, 심리학, 학습(Journal of Cyber Behaviour, Psychology and Learning)”지에는 최근 실제로 게이머가 게임을 끝낸 지 한 참 뒤에도 폭발 소리나 비명 소리와 같은 게임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현상은 “게임 전이 현상(Game Transfer Phenomena, GTP)”이라 불립니다. GTP에는 테트리스를 계속 했을 때, 그 잔상이 게임을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것과 같은 시각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의 인지작용중 일부가 아직 게임 속 상황에 빠져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노팅햄 트렌트 대학은 게임 동호회 게시판에서 1244건의 GTP를 수집했고, 이 중 12 퍼센트가 게임 사운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리들에는 칼을 휘두르는 소리와 전자음 삐, 그리고 슈퍼마리오에서 동전을 먹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게임 음악이 계속 머리에서 울리는 여러 게이머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음악을 듣다 멈추었을 때 그 음악이 머릿속에 계속 연주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게이머는 목소리를 들었고, 어떤 게이머는 사운드를 들었습니다. 이 현상은 때로 이들이 잠들려 할 때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가 게임을 껐는지 보기 위해 다시 컴퓨터나 게임기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예는 게임과 관련된 현실의 어떤 상황이 이들에게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한 게이머는 특정 건물에 들어갈 때 “포탈(Portal)”의 게임 사운드를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한 게이머는 주변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사일런트 힐(Silent Hill)’에서 괴물이 다가올 때 울리는 경고음인 깨진 라디오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믿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직 이 현상에 대한 연구는 게임동호회 게시판을 뒤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게이머들이 동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과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아직 이 현상을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90년대 초부터 이 현상이 보고된 것도 사실입니다. 와이어드(Wired)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 결과인 “테트리스를 할 때 당신의 뇌”라는 제목의 기사를 1994년에 실은 바 있습니다.

노팅햄 트렌트 대학은 이 현상이 뇌가 의미와 감각정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사운드는 그 게임 속 세상에서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 그 의미는 게이머의 현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뇌가 어떻게 의미와 감각경험을 연결시키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견고하지 못한지를 알려줍니다. 또 우리가 청각 경험을 관리하는 능력이 충분치 못함도 보여줍니다.”

연구팀의 목적 중 하나는 이 현상을 파악해 이로 인해 고통받았던 게이머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그 목적보다 더 큰 결과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GTP를 파악하고, 분류하고, 설명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한편으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마음이 감각과 의미를 연결하며, 이 연결을 학습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학습에 대한 유용한 지식을 얻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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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알마지리 학교”, 전통인가 문제인가?

나이지리아 북부의 한 도시, 누더기 옷을 걸쳐입은 남자아이들이 거리에서 그릇을 들고 돈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종교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학교에서 단체 생활을 하고 있는 “알마지리(Almajiri, 이주민, 떠돌이를 뜻함) 아이들”입니다. 12살 난 압둘도 2년 전 집을 떠나 동북부 아다마와 주의 주도 욜라로 올라왔습니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 같은 처지의 또래 100여 명과 헛간에 모여 코란 구절을 외우고, 나머지 시간엔 거리를 떠돌며 구걸을 합니다. 하루 종일 얻은 것을 “말람(mallam)”이라 불리는 학교 선생님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서 입니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압둘과 같은 아이들은 전국에 900만 명 정도고, 갓 4살에 집을 떠나 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북부와 니제르, 차드 등에서 종교 교육은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때는 집을 떠나 “알마지리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엘리트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지나면서, 이와 같은 교육 시스템은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제대로 된 규제를 받지 않는 알마지리 학교엔 아주 가난한 계층의 아이들만이 들어옵니다. 종교 교육은커녕, 일반 교육을 담당할 능력도 갖추지 못한 말람들이 아이들을 착취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글도 모르는 이 소년들은 보코 하람과 같은 극단주의 단체의 손쉬운 목표물이 됩니다. 이들은 종교 교리와 돈을 미끼로 소년들을 끌어들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온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정부는 수백 만 달러를 들여 북부에 정식 알마지리 학교들을 세웠습니다. 전통적인 코란 교육과 함께 서구식 읽기, 수학, 과학,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입니다.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코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교육 당국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무슬림 빈민층에서 아이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일 자체가 난관입니다. 서구식 커리큘럼과 코란을 모두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귀한 것도 문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서구식 교육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모들이 스스로 자녀를 극단주의라는 “나쁜” 현대식 사상에 빠질 수도 교육 환경으로 보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들 사이에서는 기존 알마지리 학교의 말람들에 대한 존경심도 여전합니다. 압둘의 꿈도 말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옆에서 함께 구걸을 하고 있는 압둘 친구의 꿈은 좀 더 큽니다. 그의 꿈은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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