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주제의 글
  • 2021년 1월 25일. [칼럼]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언어, 나치의 언어를 닮았습니다

    Martin Puchner (하버드대 영문학/비교문학 교수), Los Angeles Times 원문보기   문헌학자인 빅토르 클렘페러(Victor Klemperer)는 나치 시대의 시작을 아주 미묘한 지점, 곧 언어의 변화에서 찾았습니다. 언어학적 뉘앙스를 살피는 것이 업이었던 그는 주변 독일인들이 쓰는 언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죠. 새로운 단어와 슬로건, 표현들이 반드시 정치적인 것들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이 새로운 언어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기 훨씬 전부터 민주주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고 클렘페러는 회상했습니다. 미국 의사당이 공격을 받은 뒤, 트럼프가 사태 직전 어떤 더 보기

  • 2018년 1월 15일. 온라인의 혐오발언, 현실의 폭력으로

    2015년 8월, 독일 법무장관은 페이스북에 공개 서한을 보냈습니다. 자국의 명예훼손과 혐오발언에 대한 법을 잘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장관은 편지에서 “인터넷은 인종차별적 폭력과 불법적인 게시물이 활개치도록 허용되는 무법 천지가 아니”라고 적었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일 소셜 미디어는 여전히 혐오발언의 온상입니다. 그 대부분은 독일 내 120만 명에 달하는 중동,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슬림 이민자들을 향하고 있죠. 최근 바르비크대학에서 나온 한 논문은 인터넷 상의 혐오가 현실의 폭력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독일 더 보기

  • 2017년 9월 4일. [칼럼] 네오나치와 백인우월주의에 유머와 비폭력으로 맞서기

    체코 접경지역에 위치한 독일 마을 분시델은 수십 년간 원치 않는 방문객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분시델에 히틀러의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루돌프 헤스의 무덤이 있다는 이유로 매년 네오나치들이 이 곳을 찾아 행진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맞불 집회를 열었고, 2011년에는 루돌프 헤스의 사체를 파낸 후 비석을 없애기에 이르렀지만, 네오나치들은 굴하지 않고 성지 순례라며 마을을 찾았습니다. 2014년, 마을 주민들은 전술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유머와 전복을 무기로 삼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파에 맞서는 옳은 방법(Rechts Gegen 더 보기

  • 2017년 1월 25일. 독일 대법원, “네오나치당이라도 금지시킬 수는 없다”

    독일 대법원은 지난 17일 네오나치 당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판결했습니다. 대법관들은 국가민주당(National Democratic Party, NPD)이 국가사회주의와 연관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독일 헌법에 위배되는 순수 게르만 민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로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 네오나치당의 합법성 논란이 일단락된 셈입니다. 네오나치당을 금지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으나, 가장 최근의 시도는 2013년 연방 상원이 제기한 헌법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인권재판소가 요구하는 정당 금지 더 보기

  • 2016년 6월 2일. 표현의 자유와 히틀러를 위해 컵케이크를 만드는 나치 ‘유튜버’

    지난달 31일, 캐나다에 거주하는 에바는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해 받은 팬들의 질문에 실시간 답변을 동영상으로 올리고 있었습니다. 구독자 중 한 명은 그녀가 토끼 의상을 어디에서 구매하였는지 물었습니다. “토끼 의상은 지금 세탁기에 있는데요, 전 그 의상이랑 어울리는 북극곰 의상도 있어요. 어반 플래닛(Urban Planet)이라고 제가 진짜 좋아하는 가게에서 산 건데 유니콘 의상도 있어요.” 에바는 답했습니다. “에바라이언(Eva Lion 혹은 Evalion)”은 여느 18세의 유튜버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에바는 주로 자신의 방이나 근처 공원에서 더 보기

  • 2015년 10월 28일. 총기 규제와 나치 독일을 연결지은 미국 대선 주자의 몰역사적인 발언

    독일 국민들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었다면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이라는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벤 카슨의 발언은 전형적인 몰역사적 시각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안을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역사적 맥락 속에 함부로 갖다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부적절하며 모욕적인 역사적 비유를 가져오는 것,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의 중대한 문제를 이용하는 것은 미국의 총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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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6월 16일. 나치의 생체실험 데이터가 과학적으로 쓸모가 있다면 써도 될까?

    호주 멜버른 대학교의 린 질럼(Lynn Gillam) 교수는 사회 전체가 범죄집단이 저지른 끔찍한 일을 잊지 않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처벌을 가하는 것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질럼 교수는 그 다음에야 완전히 공개적으로 해당 실험 결과를 써도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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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월 29일. 아우슈비츠에 대한 오해와 진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말살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된지도 이번 주로 70년이 됩니다. 하지만 언급만으로도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 수용소는 바로 그 유명세와 존재감 때문에 홀로코스트와 나치에 대한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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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월 28일. 히틀러, 다윈, 그리고 홀로코스트: 나치는 진화론을 어떻게 왜곡했나 (2)

    히틀러의 유대인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적대감의 배경에는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던 사회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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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월 28일. 히틀러, 다윈, 그리고 홀로코스트: 나치는 진화론을 어떻게 왜곡했나 (1)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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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5월 7일. 獨, “나치 부역자에 대한 심판은 늦더라도 꼭 이뤄져야 한다”

    옮긴이: 내년은 광복 70주년입니다. 세계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기도 하죠.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와 만행에 대해 밖으로는 진심 어린 사죄를, 안으로는 법에 따른 심판을 계속해왔습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나치에 부역했던 20살 남짓한 청년이 살아있다면 이제 아흔줄에 접어든 노인입니다. 하지만 독일 검찰은 거동조차 불편한 이라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법정에 세우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범죄의 주동자가 아니더라도, 티끌 만큼이라도 가해자의 편에 섰다면 절대로 편히 눈감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죠. 지난 70년 동안 진심 어린 더 보기

  • 2014년 3월 7일. [책] 홀로코스트 2세대의 회고

    1950년 전후로 프리모 레비나 엘리 비젤 등을 필두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회고록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나치 유대인 학살의 생존자들을 부모로 둔 이른바 “홀로코스트 2세대”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드러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부모의 트라우마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너무나도 거대한 비극의 무게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을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습니다. 리타 골드버그(Rita Goldberg)의 새 책 <모국: 홀로코스트와 함께 성장하기(Motherland: Growing up with the Holocaust)>의 저자 사인회에는 비슷한 사연을 품은 2세대들이 여럿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무거운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