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전력상 압도적인 우위인데…’ 1년째 전쟁 중인 이스라엘의 속사정
2024년 12월 2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1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 7일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테러 공격을 벌인 지 1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전쟁은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는 중이고, 좀처럼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제 사회의 휴전 요구가 무색하게 네타냐후 총리는 전선을 헤즈볼라와 시아파 이슬람 국가의 우두머리 격인 이란까지 확장했습니다. 늘어나는 희생자 중에는 민간인이 많고, 희생자 대부분이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하마스에 납치됐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인질들의 무사 귀환은 이미 요원해졌습니다.

지난 1년 사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군사 작전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사람만 4만 명이 넘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하마스 대원이 많다고 주장해 왔고,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희생도 많았다고 하지만, 그 말이 다 사실이라고 해도 4만 명 넘는 희생자 숫자는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전투나 군사 작전 중에 죽은 사람도 많지만, 이스라엘이 식료품과 약품 등 물자 공급을 막아 기아와 질병으로 숨진 어린이, 노약자도 매우 많습니다.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하거나 혹은 최소 방치한 이스라엘의 결정을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각은 하마스가 벌인 테러를 향한 시선만큼이나 나빠졌습니다.

양측 사이에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이 글의 목적도 아닙니다. 대신 오늘은 전력상 분명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이스라엘의 내부 사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 인터뷰에도 소개됐지만, 이스라엘 내부에는 전쟁을 멈추고 팔레스타인과 공존하는 길을 찾자는 목소리는 없는지, 있다면 왜 묻히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마침, 이스라엘 내부에서 반전 운동과 네타냐후 총리를 위시한 극우 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세속주의 진보 진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마이라브 존제인 국제위기그룹의 이스라엘 선임연구원이 전쟁 발발 1년을 맞아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습니다. 우선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전문 번역: “내 아들딸이 언제든 소모품이 될 수 있다… 갈림길에 선 이 나라”

 

시계를 하마스가 테러 공격을 감행하기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2009년부터 이스라엘 총리로 재임한 베냐민 네타냐후는 2019년 11월, 이스라엘 현직 총리로는 사상 최초로 부패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재판은 2020년 5월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연기됐습니다. (올해 말 속개 예정) 주요 혐의로는 네타냐후 총리와 부인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사업상 편의를 봐준 정경유착, 언론에 우호적인 보도를 약속받는 대신 편의를 봐준 권언유착, 통신사 베제크에 뇌물을 받고 편의를 봐준 혐의를 꼽을 수 있는데, 네타냐후 총리는 기소 자체를 자신을 향한 정치적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거칠게 나누면 네타냐후 총리는 우파 성향이고, 이스라엘 법원을 포함한 사법부 엘리트는 대체로 세속주의, 범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1년 3월 총선에서 패했는데, 12년째 총리직을 유지한 장수 총리에다가 코로나19 대응도 미흡했고, 무엇보다 부패 스캔들 때문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야당은 반(反) 네타냐후 전선을 꾸리기 위해 이념을 가로질러 연합해야 했고, 간신히 연정을 꾸려 정권 교체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연정은 명확한 정책 목표 없이 불안정하게 표류했고, 네타냐후 이후에 부임한 나프탈리 베네트, 야이르 라피드는 결국 합쳐서 1년 반밖에 총리직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네타냐후는 2022년 11월 조기 총선에서 네타냐후는 리쿠드당을 이끌고 32석을 얻었고, 극우 정당, 초정통파 유대교당과 연정을 꾸려 과반인 64석을 확보, 다시 총리직에 복귀합니다.

다시 총리직에 복귀한 네타냐후는 사법 개혁을 의제로 들고 나옵니다. 네타냐후의 우파 연정은 이스라엘 대법원의 결정을 의회가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조항, 현직 총리가 재임 중에는 기소되지 않는다는 면책특권 조항, 검찰총장 인사권을 행정부가 나눠 갖는 방안 등을 추진했습니다.

사법부는 네타냐후에게는 ‘날조한 부패 혐의’를 씌워 정치적인 공격을 벌이는 눈엣가시였고, 극우 정당 눈에는 유대인 정착촌에서 이스라엘 국민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벌인 폭력을 수사하고 기소하려는 ‘반국가적인 기관’이었으며, 초정통파 유대교도들이 전통적으로 면제받던 병역 의무를 부과하려는 ‘극단주의 세력’이었습니다. 연정에 참여한 주요 정당이 모두 사법부의 권한을 약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기 때문에 2023년 내내 이스라엘은 사법 개혁을 강행하려는 네타냐후 내각과 거기에 맞서는 사법부, 그리고 사법부를 지지하는 세속주의 진보 진영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서 벌인 ‘사법부 수호, 네타냐후 퇴진 시위’로 시끄러웠습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공격은 이런 와중에 갑자기 일어난 겁니다. 처음엔 하마스의 공격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군과 정보기관, 네타냐후 내각을 향해 비난이 빗발쳤지만, 이내 하마스를 향한 복수와 전쟁에 모든 관심이 쏠리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 스캔들 문제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혹 연정이 깨져 조기 총선을 치렀다가 선거에서 지기라도 하면 재판이 재개돼 최대 징역 10년 형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네타냐후에겐 연정을 반드시 유지하고 권좌에서 내려와선 안 되는 유인이 생겼습니다.

초정통파 유대교도를 포함한 네타냐후의 극우 연정 상대들은 하마스를 뿌리 뽑고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하며, 헤즈볼라를 비롯한 시아파 민병대 등 이스라엘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타격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순전히 이 이유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네타냐후는 인질을 구출해 오는 것보다 전쟁을 계속 끄는 편을 더 낫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평화와 외교 카드 못 쓰는 이유

칼럼을 쓴 존제인 연구원의 주장을 요약하면 결국, 전쟁보다 외교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력이 압도적이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지만, 더 오래 안정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건 전쟁보다도 외교입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하마스를 지구상에서 없애버리자는 목소리 말고 팔레스타인과 서로 무기를 내려놓고 공존하는 길을 찾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1990년대 오슬로 협정을 통해 두 국가 해법을 천명했던 당시 이츠하크 라빈 총리 같은 노동당의 생각이 그랬을 겁니다.

네타냐후는 부패 스캔들로 인기가 바닥에 떨어졌다가도 금세 다시 총리직에 복귀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유권자, 국민의 비교적 급격한 보수화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스라엘 국민의 보수화에는 독특한 배경이 있습니다. 같은 유대인 안에서도 종교적 성향에 따라 문화가 다르고, 결정적으로 출산율이 달라서 인구 구성이 바뀐 겁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초정통파 유대교(하레디)도 인구는 매우 빠르게 증가합니다. 초정통파 유대교도에게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지며, 이들은 자녀를 낳아 번성하라는 성경의 계명을 종교적 의무로 여깁니다. 반대로 세속주의 유대인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서구 개인주의 사회와 더 비슷한 생활양식을 따릅니다. 그 결과 초정통파 유대교도 여성의 출산율은 여성 한 명당 6~7명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세속주의 유대인 여성의 출산율(2명)보다 훨씬 높습니다. 하레디 정당의 의석은 늘어난 인구에 비례해 늘어났고, 자연히 정치적인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극우 세력, 보수적인 유대교도라고 무조건 전쟁을 지지하고, 이슬람교를 적으로 여기는 건 아닐 겁니다. 전통적으로 초정통파 유대교도들은 남자도 종교학교인 예시바에 등록해 유대교 교리를 공부하고 전하는 일을 하면 병역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됐습니다. 그런데 세속주의 유대인들이 이를 불공평하다고 말하며 병역 의무를 지우려 하고, 정부에서 초정통파 유대교도에게만 주던 지원금도 줄이려 하자, 여기에 반발해 서로 사사건건 다투게 된 겁니다.

결국, 미국 대선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이스라엘 밖의 상황 말고 이스라엘 내부 사정만 보더라도 외교적 해법을 통해 평화를 모색하자는 목소리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날 가능성이 큽니다. 전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사상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더라도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이 끝나는 순간 자신의 정치적 생명도 위기라고 여기는 한 휴전은 요원해 보입니다. 조기 총선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2026년에 다음 총선을 치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