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대통령 건강 문제’ 외면하는 민주당은 금기를 깰 수 있을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2월 1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백악관 기밀문서를 불법으로 유출해 가지고 있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뿐이 아닙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부통령 시절 접근할 수 있던 문서 가운데 들고 나오지 말았어야 할 문서들을 자택과 개인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가 검찰의 수사를 받았습니다.
검찰총장이자 법무부 장관의 임명권자인 전·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일인 만큼 각각 특별검사(special counsel)가 임명돼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은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5일 이 문제를 수사한 로버트 허 특검의 최종 수사 보고서는 뜻밖의 지점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수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특검은 바이든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바이든이 백악관 밖으로 가지고 나와선 안 되는 기밀문서인 줄 알고도 일부 문서를 유출한 정황이 있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자 곧바로 해당 문서를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에 자진 반납했고, 특검의 수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한 점을 참작했다고 허 특검은 밝혔습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기로 밝히면서 사건은 이대로 종결됐습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유출된 기밀문서를 폐기하라고 지시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하거나 압수수색에 나선 FBI 요원들을 공격하라고 부추기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까지 혐의가 추가돼 기소됐으며, 오는 5월에 재판 일정이 잡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선거에서 맞붙을 트럼프와 달리 혐의를 벗은 만큼 반가운 소식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수사 보고서가 공개된 날 밤 이례적으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격앙된 어조로 허 특검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내용을 보고서에 담느냐”며 선을 넘은 허 특검을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기억력은 좀 오락가락해도 사람 좋은 할아버지”
허 특검이 바이든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바이든이 잘못을 인정하고 수사팀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 말고 또 있었습니다. 기소란 잘잘못을 재판에서 가리겠다는 건데, 바이든이 기소돼 법정에서 배심원단 앞에 서면 기억력이 오락가락해서 제대로 된 증언을 하기 어려울 거라고 허 특검은 우려했습니다. 정확히 수사 보고서에 쓴 단어를 그대로 옮기면, 동정을 부르는 또는 호감 가는(sympathetic), 호의적인(well-meaning), 나이 많은 할아버지(elderly man), 기억력은 나쁜(with a poor memory) 사람으로 바이든을 묘사했습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바이든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특히 여러 차례 아주 자세히 묘사했는데, 예를 들어 자신이 부통령으로 일했던 시기, 연도를 헷갈려서 말이 오락가락했고, 심지어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큰아들 보 바이든이 언제 사망했는지도 연도를 정확히 대지 못했다고 썼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아들의 기일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고 다분히 조롱 투로 굳이 보고서에 언급한 데 대해 격노했습니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매년 아들이 떠난 기일마다 아들을 기억하고 기리며, 사는 순간 한시도 아들을 잊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감히 나더러 아들의 기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보고서에 담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에는 노여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허 특검의 보고서는 분명 선을 넘은 지점이 있어 보입니다. 바이든의 기억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자세히 설명해 놓은 부분들을 실제로 읽다 보면 비아냥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수사 대상을 향한 도의적 존중이 부족해 보이는 지점이죠. 다만 미국의 검사들은 훨씬 더 정치적인 색깔이 분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정치 검찰인 측면이 있고, 정치 검찰인 게 딱히 흠도 아닙니다. 인사권자가 행정부의 수장이거나 행정부 수장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인 경우가 많은데, 정권이 바뀌면 검찰 주요 보직도 여당의 코드에 맞는 검사로 바뀌곤 합니다. 지방검찰 검사장은 선거를 통해 직접 뽑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아예 어떤 문제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겠다고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보수 성향인 윌리엄 랭퀴스트 대법관 아래서 로클럭을 했던 로버트 허 변호사를 2017년 11월 메릴랜드주 연방지방검찰청장으로 지명한 것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습니다. 2021년 지검장 자리에서 물러났던 허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한 건 바이든 행정부의 법무부 장관 메릭 갈랜드였습니다. 갈랜드로서는 공화당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검사를 특검으로 임명해 수사를 맡기면 수사 결과에 공화당 지지자들도 수긍할 거로 생각했을 텐데, 수사 결과의 핵심보다 곁가지에 그쳐야 할 사안이 대대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난처해졌습니다.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 측은 예상대로 바이든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보고서의 핵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바이든의 기억력과 정신 건강을 문제 삼으며 공세에 나섰습니다. 폭스뉴스 등 보수 언론도 여기에 가담해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의 기억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1942년생 바이든은 올해 11월에 82살이 되며, 이미 현직 대통령으로는 역대 최고령입니다. 누군가의 이름 등 고유명사나 날짜, 시기 등 세부 사항을 잘못 말하거나 기억이 뒤엉켜 혼동하는 모습을 이미 자주 보여줬죠. 그런 실수가 워낙 많아서 숨길 수도 없는 수준입니다. 당장 허 특검을 강하게 비판하는 기자회견 말미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문제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집트를 멕시코로 잘못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기억력 문제를 어느 정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에 관해 신경과학자인 차란 랑가나스 박사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고령의 대통령에 대한 불안과 걱정, 지금의 접근법은 완전히 틀렸다”
랑가나스 박사는 건망증에 가까운 “꺼내기 실패(retrieval failure)”와 기억력 자체가 저하되고 손상된, 치매에 가까운 진짜 망각(Forgetting)을 구분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실수는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즉, 기억력 자체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하자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거죠.
지난 2022년 G-20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 있던 바이든 대통령은 한밤중에 나토(NATO) 회원국인 폴란드가 러시아에서 쏜 것으로 보이는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는 관계국 정상들과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을 조율했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폴란드를 공격한 거라면 상호 방위조약에 따라 원칙적으로 미국이 러시아에 자동으로 선전포고하게 되는 셈이고, 이론적으로는 핵전쟁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을 침착하게 모면한 겁니다. 나라 이름이나 숫자 등 디테일을 순간 헷갈리고 잘못 말하는 것과 정말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질, 판단력은 별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예로 들 만한 사례였습니다.
민주당, 바이든 나이 문제 계속 외면하는 게 정답일까?
다만 허 특검의 보고서를 비롯해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문제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비열한 정치 공세’로 매도하며 금기시하는 게 과연 민주당에 좋은 전략인지는 민주당 스스로도 한번 진지하게 되돌아볼 때입니다. 아무리 건망증과 치매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해도 갈수록 나이 든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는 바이든의 건강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현직 대통령으로 최고령인 바이든이 만약 재선돼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퇴임할 때는 무려 86세인 대통령이 됩니다.
게다가 지난 2020년 대선에 출마할 때만 해도 바이든은 민주당 안에서 차세대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존 정치권과 젊은 세대를 잇는 가교가 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물론 당선되어도 임기를 한 번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정식으로 한 적은 없지만, 특히 젊은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바이든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이든이 8년이나 집권하려 하진 않으리라 기대했던 이들이 느낀 실망감도 영향이 있습니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이번 대선은 투표율이 특히 중요한데, 젊은 지지층의 이탈은 민주당으로서는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여전히 오는 11월 대선은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이 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이미 공화당도, 민주당도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고, 3월 5일 슈퍼 화요일이 지나고 나면 당장 산술적으로 후보를 교체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집니다.
폴리티코의 최근 기사를 보면, 특히 민주당의 경우 후보를 바꿀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러려면 바이든이 스스로 재선에 도전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즉, 바이든이 예정된 경선을 쭉 치러 후보로 지명된 뒤에 그 지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진해서 사퇴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 대신 누구를 지지해 달라고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이 당규에 따르면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당장 자연스러운 후계자로 떠올릴 수 있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다면, 해리스의 러닝메이트를 떠나는 바이든이 추천할 수도 있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지만, 이론적으로는 민주당이 대대적인 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바이든을 대체할 후보를 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는 규정상 가능하다는 말일뿐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스스로 재선 도전을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바이든의 고령과 건강을 둘러싼 논란과 공방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칼럼을 쓴 랑가나스 박사는 논쟁을 벌이되 근거는 정치적인 계산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지만, 안타깝게도 올해 미국 대선에서 그런 합리적인 논쟁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