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매번 헌법을 고쳐나가는 그곳, 올해 주요 판결은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7월 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 지난 회기 대법원 판결 가운데 소수자 우대 정책 위헌 판결에 관해서는 아메리카노에서도 다뤘습니다.
6월은 미국 대법원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바쁜 달입니다. 미국 대법원 회기는 10월 첫 번째 월요일에 시작하는데, 보통 대법관들은 6월 말 또는 7월 초부터 여름 휴지기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미국 대법원은 그 해 심리한 주요 사건에 대한 판결을 (미리 내릴 때도 있지만) 휴지기 직전인 6월 말에 잇달아 발표하곤 합니다. 그래서 대법관은 물론 대법관의 심복인 로클럭들, 재판에 참여한 변호사, 로펌, 담당 기자들에게도 6월은 가장 바쁜 달입니다.
뉴욕타임스도 아예 6월 초부터 올해 대법원 주요 판결을 한데 모아볼 수 있는 기사를 올려놓았습니다.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쟁점이 무엇인지, 양측 변호인이 대법관 앞에서 변론을 펼치는 구두변론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대법관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어떤 판결이 예상되는지 정리해 뒀다가 판결이 나오면 기사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번 회기 미국 대법원이 내린, 또는 조만간 내릴 판결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전문번역: 극단적인 주장을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미국 헌법 해석하는 궁극적인 권한 지닌 대법원
대법원은 미국에서 독특한 위상을 지닌 조직입니다. 모든 민주주의 제도는 여러 기관 사이에 권력을 나누고, 이를 서로 적절히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도록 짜여 있습니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처한 환경과 상황, 그리고 제도가 형성된 역사가 다르므로 ‘견제와 균형’의 모습도, 작동 방식도 각기 다릅니다.
미국 대법원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 정치제도, 기관 가운데 가장 독특한 기관일 수 있습니다. 흔히 미국 대법원을 “미국 헌법을 해석하는 궁극적인 권한을 지닌 기관”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헌법’이라고 하면 두꺼운 법전에 쓰인 긴 조문을 떠올리죠. 우리나라 법이 ‘대륙법(Civil Law)’ 체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륙법 국가들은 입법부인 의회가 정한 법을 가장 중요한 법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성문법주의를 취합니다. 반대로 미국은 ‘보통법(Common Law)’ 체계를 따르는 국가입니다. 보통법 국가들은 관습이나 판례를 가장 중요한 법의 원천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헌법 법전도 훨씬 얇습니다. 대신 헌법에 대한 해석이 시대에 따라 바뀝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회기에 대법원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에 관해 반세기 동안 헌법의 지위를 누리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는 “돕스(Dobbs v. Jackson) 판결”을 내렸죠. 임신 중절에 관해 헌법이 바뀐 셈입니다. 미국 법원은 이제 임신 중절을 훨씬 어렵고 까다롭게 규정한 돕스 판결을 준거로 삼아 판결을 내립니다. 이렇게 판결을 통해 판례를 만들어 사실상 헌법을 고쳐나가는 업무를 하는 곳이 바로 미국 대법원입니다.
2023년 주요 판결 살펴보기
미국 동부 시각으로 목요일 밤 현재 대법원이 올해 심리한 사건 중에 아직 판결을 내지 않은 사건이 두 건 있습니다. 모두 늦어도 다음 주 초에는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뉴욕타임스가 정리한 사건 목록에 따라 올해의 판결을 살펴보겠습니다.
-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감면은 위헌인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총 4천억 달러 규모의 학자금 대출을 탕감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행정부에 수천만 명이 영향을 받을 규모의 대출을 탕감할 권한이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이 문제는 대법원까지 왔습니다. 지난 2월 열린 구두변론을 토대로 유추해 보면,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은 바이든 행정부가 월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해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을 무효로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에 관해선 지난해 스프에 글을 썼습니다. 콜로라도주의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신념을 지키지 못하게 억압함으로써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느냐가 쟁점입니다. ‘보수 6:3 진보’ 구도가 이번 판결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사건에 관해서도 얼마 전에 매사추세츠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칼럼과 함께 스프에 소개했죠. 대법원이 어제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대학교 입시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으로 인종을 지금과 같이 사용하는 건 불공정한 차별 소지가 있다고 본 겁니다. 마찬가지로 ‘보수 6:3 진보’ 구도를 따라 의견이 갈렸습니다.
- 연방 선거 관리 권한은 궁극적으로 주의회에 있다?
오늘 번역한 칼럼이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대법원은 큰 틀에서 “독립적인 주의회 이론”을 거절했습니다. 대법원은 선거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과정까지 궁극적으로 관장하는 권한이 주의회에 있지 않으며, 선거 관리 업무에 관해서도 주의회가 주 법원과 주 헌법, 연방법을 따라야 할 통상적인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로버츠 대법원장과 브렛 캐버너,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함께 다수를 이뤘습니다.
주의회에 궁극적인 권한을 인정하면, 특정 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주의회가 선거구를 자기 정당에 극도로 유리하게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을 강행해도, 투표 일정, 부재자투표 규정 등 선거 관리에 관한 법률, 규칙을 바꿔도 이를 견제할 장치가 사라져서 문제입니다.
대법원이 심리한 사건이 노스캐롤라이나주 의회가 획정한 게리맨더링 문제였는데,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주의회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심리한 사안이 뭐가 어떻게 문제였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필데스 교수가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마 “독립적인 주의회 이론”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을 보수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자 아예 그 내용을 판결문에서 빼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앨라배마주의 선거구 획정이 특정 인종(여기서는 흑인)의 투표권을 제약하는 게리맨더링이었다는 판결이 이달 초에 나왔는데, 이번에도 존 로버츠 대법원장, 브렛 캐버너 대법관이 세간의 예측을 뒤집고 진보 대법관 3명과 뜻을 같이했습니다.
앨라배마주도 주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2020년 센서스 이후 새로 선거구를 획정하는데,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흑인 유권자들을 한 선거구에 몰아넣었습니다. 대법원은 앨라배마주 의회가 정한 선거구는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제약하므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보장하지 않는 일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참고: 게리맨더링을 간단하게 게임처럼 직접 해볼 수 있는 뉴욕타임스 인터랙티브 기사
미국에서 보수와 진보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부딪히는 분야 중 하나가 환경입니다. 환경보호청(EPA)의 역할, 권한을 둘러싼 논쟁은 종종 정치적인 긴장을 고스란히 드러내곤 합니다.
미국의 환경보호 관련법 가운데 청정수질법(Clean Water Act)이란 법이 있습니다. 강이나 하천에 오염 물질을 방류해선 안 된다는 게 핵심 규정인데,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습지(wetland)는 수질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습지에 오염 물질을 버리는 행위는 청정수질법의 적용받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브렛 캐버너를 제외한 보수 대법관 5명이 다수 의견을 이뤘습니다. 대법원은 지난해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을 근거로 환경보호청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규제를 집행하는 건 월권이라고 판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판결도 환경보호청의 권한을 다시 한번 제약한 판결로 기록될 예정입니다.
예술과 창작, 표절의 경계에 관한 이 판결에 관해선 얼마 전에 스프에 글을 썼죠. 저작권과 공정이용(Fair Use) 개념도 등장하는데, 이 판결은 이념적 성향이 영향을 덜 미친 판결이란 점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소냐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엘레나 케이건, 존 로버츠 두 명을 제외한 7명 대법관을 대표해 다수의견을 썼는데,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인 가수 프린스의 초상화가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프에서 다룬 적 있는 사건, “곤잘레스 대 구글” 판결에서 대법원은 인터넷 플랫폼에 올라온 콘텐츠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의 책임을 플랫폼에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례적으로 대법관 9명의 의견이 일치했는데, 유튜브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온라인 플랫폼에 올라온 콘텐츠 가운데 설사 테러를 부추긴 끔찍한 콘텐츠가 있더라도 콘텐츠를 제때 삭제하거나 검열하지 못한 플랫폼을 테러리스트에 동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결이었습니다.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츠가 극단주의를 부추기든 혐오발언이 담겼든 그건 콘텐츠를 올린 사람의 잘못이지 그 콘텐츠 때문에 플랫폼이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의 내용이 그동안 인터넷 플랫폼에도 적용돼 왔는데, 이번 판결로 테크 기업들은 또 한 번 자신들에 유리한 판례를 쌓았습니다. 테크 기업들은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는 곧 미국 사회가 가장 신성시하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거나 다름없다고 경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