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나 땐 좋았어” 반복하는 트럼프, ‘경제’에 발목 잡히는 해리스
2024년 12월 23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2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 대선이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선거인단 과반인 270명 이상을 어느 후보가 확보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트럼프와 해리스 두 후보는 7개 경합주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미 우편투표를 비롯해 사전 투표, 부재자 투표를 시작한 주가 많습니다. 정치적 양극화가 뚜렷한 상황에서 치르는 선거인만큼 지금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를 바꿀 가능성은 매우 작습니다. 특히 투표할 마음을 먹은 유권자라면 이미 자신의 한 표를 어디에 던질지 마음을 정했을 겁니다. 아직 누구를 찍을지 정말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민주당과 공화당도 상대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는 것보다 우리 정당과 후보에 표를 던질 만한 사람들이 꼭 투표하게 설득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합주에서 평소 정치에 참여도가 낮고, 투표도 반드시 하지는 않던 유권자들(low-propensity voters)이 얼마나 투표하러 오느냐가 대선 결과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합주에 사는 투표 성향이 높지 않은 유권자 가운데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미국인 등 유색인종이 있습니다. 유권자 지형도 주마다 다른 만큼 모든 유색인종을 하나로 뭉뚱그려 어떻다고 단정하긴 쉽지 않지만, 대체로 유색인종 유권자들 사이에선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는데, 이번 선거를 앞두고 해리스는 이전 후보만큼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인종이라고 반드시 지지하라는 법은 없지만, 흑인이자 아시아계 미국인인 해리스가 4년 전 조 바이든보다도 유색인종 사이에서 지지율이 낮은 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물론 트럼프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젊은 남성 사이에서 지지율이 높은 건 후보의 성별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젊은 남성이 해리스를 외면하는 이유를 그저 “여자라서”라고 설명하는 건 충분하지 않습니다. 보충 설명의 근거로 꼭 알맞은 주제가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이 늘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는 ‘경제’입니다.

전문 번역: 맥도널드서 감자 튀기고 “알바 했었다”는 대선 후보들, 그 의미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관한 연구를 해온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마샤 체이틀린 교수가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창으로 맥도널드를 고른 건 당연해 보입니다. 체이틀린 교수는 저서 “프랜차이즈: 흑인의 미국을 수놓은 황금 아치”로 이미 맥도널드의 역사를 통해 미국 사회를 조망했고, 이 책으로 퓰리처상과 제임스 비어드상(저술 부문)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 그 안에서도 경합 카운티로 꼽히는 벅스 카운티의 맥도널드 매장을 찾았습니다. 일일 알바로 나선 트럼프는 감자튀김도 직접 튀기고 드라이브스루 주문도 받고 처리하며 유권자를 만났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재래시장을 찾는 모습이 떠올랐는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트럼프 같은 부자도 맥도널드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기에 적합했습니다. 다만 해리스가 젊었을 때 맥도널드에서 일했다는 경험을 내세운 걸 자꾸 의식한 듯 계속 “해리스는 사실 맥도널드에서 일한 적 없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억지로 되풀이하는 모습은 트럼프다우면서도 보기 불편한 장면이었습니다.

해리스는 학생 때 맥도널드 매장에서 일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어 해리스의 남편 더그 엠호프는 젊었을 때 맥도널드에서 일한 적이 있다며, 이달의 직원으로 뽑힌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 젊은이들이 맥도널드에서 시간제 혹은 계약직으로 일하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맥도널드는 이미 성공한 프랜차이즈로 한창 성장하고 있었고, 맥도널드에서 일해 번 돈을 용돈이나 학비에 보태는 건 중산층 젊은이들에게도 특이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해리스 부통령 부부가 유권자들에게 넌지시 알리고자 했던 것도 자신들은 트럼프 같은 갑부와 달리 유권자들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은 없고, 그저 젊어서부터 맥도널드 단골이었다는 점밖에 내세울 수 없던 트럼프가 유독 예민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고요.

 

경제 문제에 계속 발목 잡히는 해리스

맥도널드에서 과연 알바를 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헛된 진실 공방을 벌이려는 트럼프의 모습은 애석하지만, 사실 경제 전반에 관해서라면 이번 선거 내내 수세에 몰리고 초조한 건 분명 해리스입니다. 경제 공약의 타당성을 검토, 비교하기도 전에 이미 바이든 행정부 때 치솟은 물가 때문에 사람들은 경제 문제에 관한 한 해리스 후보와 민주당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 짠 공약을 내놓아도 “장 보기 두렵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을 때마다 걱정이다”, “다음 달 월세, 공과금 낼 걱정에 잠이 안 온다”는 유권자들에겐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경제 정책과 제도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반대로 트럼프는 쉬운 공략법을 따르면 됩니다. “내가 집권했을 땐 경제가 좋았다, 바이든이 다 망쳐놨다, 해리스도 똑같이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면 되죠. 물론, 이건 사실을 두고 다툴 여지가 적지 않은 주장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경제가 크게 위축됐고, 그로 인해 트럼프가 집권한 내내 경제가 좋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트럼프는 여전히 “팬데믹 전까지는 좋았잖아?”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풀어야 했고,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정치와 선거에서 운이라는 요소를 따지기 시작하면, 트럼프는 ‘코로나19만 없었어도 내가 어렵잖게 재선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바이든과 거리를 두는 데 한계가 있는 해리스 캠프는 경제 문제에서 더 적극적으로 유권자들의 불만에 대책을 내놓았어야 합니다.

물론 해리스 캠프는 최선을 다해 경제 공약을 만들고 이를 알리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트럼프가 먼저 제안한 공약이지만) 식당 서버들이 받는 팁에 붙는 세금을 면제하겠다는 약속부터 연방 최저임금을 올리는 문제를 논의하겠다, 노동조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 집을 처음 사는 사람과 건축업자들에게 지원금을 줘서 집값을 잡겠다, 가격을 올려 부당 이득을 챙기는 기업을 제재해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약속까지, 분명 기대할 만한 요소가 없지 않은 공약들입니다. 그러나 결국, 유권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용없죠. 경제 문제가 의제로 떠오를 때마다 트럼프와 밴스가 “해리스는 부통령으로 바이든 행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인플레이션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무슨 공약을 그렇게 요란하게 내놓습니까?”라고 일축하면 거기서 토론이 끝나버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플레이션은 모든 국민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피부에 와닿는 현실입니다. 주유소 간판의 기름값, 어젯밤 슈퍼에서 계란, 우유 사고 낸 장바구니 비용, 떨어지면 큰일 나는 아이 기저귓값까지 생필품 가격은 품목을 가리지 않고 다 올랐습니다. 집값이 불과 5년 전인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두 배, 심지어 세 배나 더 올라 저축은커녕 가족에게 돈을 빌리든 대출을 받든 급히 월세를 마련하지 못하면 거리에 나앉게 생긴 경합주 유권자들에게 경제보다 시급한 문제는 없습니다. 이들이 이 사태를 막지 못한 바이든 행정부에 실망해 ‘트럼프는 다르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거기에 대고 “인플레이션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평균 임금이 올랐다”는 경제 지표를 보여주면 역효과만 날 뿐입니다. 그렇다고 경제 문제를 애써 외면한 채 다른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선거가 열흘 남짓 남은 시점에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은 나를 찍어줄 가능성이 큰 유권자가 어떻게든 잊지 않고 투표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트럼프 캠프가 쉼 없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얼마나 삶이 팍팍해지셨습니까?”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건 당연한 전략입니다. 반대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비서실장을 오랫동안 지낸 사람이 직접 “트럼프는 파시스트”라고 말한 데 잠깐 기대를 걸었을지 모르지만, 역시나 별다른 파장이 없습니다. 경제 문제는 경제로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쉽지 않은 과제를 끝내 제대로 풀지 못한 해리스 캠프가 선거 막바지 수세에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이번 선거는 여전히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1월 5일 대선에서 해리스가 패배한다면, 경제 문제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민주당 후보를 찍었을 텐데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표를 끝내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아마도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힐 겁니다. 경제 문제가 가장 클지, 아니면 해리스 캠프가 내심 경제 문제를 덮어주기를 기대할 임신중절권이나 민주주의(지난 선거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문제가 얼마나 영향을 발휘할지에 선거의 향방이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