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진짜 노동자’의 절망,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미국 대선의 진짜 승부처는 여기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9월 1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어쩌면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나흘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트럼프보다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리틀 트럼프’ J.D. 밴스였습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트럼프는 절대 안 찍을 사람(Never Trumper)”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던 밴스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가 결과에 불복하며 공화당을 장악하자, 성공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세탁”했고, 트럼프의 간택을 받아 마가(MAGA) 운동을 계승할 후계자가 됐습니다. 이후 8월은 갑자기 대선 후보를 교체한 민주당을 향해 아무래도 대중의 관심이 쏠렸지만, 이제 투표일까지 두 달 남짓한 시간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여론조사로는) 엇비슷한 출발선 위에 다시 서서 “마지막 스퍼트”를 할 채비를 마쳤습니다.
미국 시각으로 10일(화) 밤 서로 처음 맞붙는 TV 토론에서 트럼프와 해리스는 미국 유권자를 향해 왜 자신이 상대방보다 나은지 구애를 펼 예정입니다. 둘 다 욕심 같아서는 TV를 지켜보는 모든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을 테고, 누구나 만족할 만한 답변만 내놓고 싶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푯값이 높은 유권자를 우선 공략해야겠죠.
주별로 표를 집계해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은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독특한 집계 방식 때문에 경합주 유권자의 푯값을 높게 칠 수밖에 없는데, 그 경합주가 유독 여러 개 몰려 있는 곳이 중서부의 러스트벨트 지역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10일 TV 토론이 열리는 필라델피아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가 대표적인 러스트벨트 경합주입니다. (경합주로 꼽히는 7개 주 가운데 선거인단이 19명으로 가장 많은 주가 펜실베이니아입니다.)
러스트벨트는 과거 제조업이 융성했던 곳이자, 미국 경제가 첨단 기술,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제조업이 불황을 맞아 녹이 슨(rusted out) 지대(belt)를 뜻합니다. 러스트벨트에 사는 노동자 중에는 예전에 소위 “잘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2016년에 트럼프가 전체 투표에서 300만 표 가까이 덜 받고도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해 승리할 수 있던 발판을 제공한 게 바로 러스트벨트 유권자였다는 분석은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2016년과 2020년 각각 한 차례씩 승리하고 결승전처럼 치르는 이번 선거에서 예상대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상당 부분을 러스트벨트 경합주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부통령 후보로 낙점된 J.D. 밴스와 팀 월즈 모두 경합주 출신은 아니지만, 바로 인접한 러스트벨트 출신으로 유권자들에게 “당신이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다가갈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밴스는 오하이오주 출신이고, 월즈는 네브래스카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미네소타주 남부에서 공립학교 교사로 일했습니다.
J.D. 밴스 “노동자를 위한 정당은 공화당”
다시 공화당 전당대회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밴스의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중에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색채와 사뭇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전통적인 공화당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 트럼프와도 또 다른 점이 눈에 띄었죠.
대표적인 부분이 월스트리트를 포함한 경제 엘리트를 향해 드러낸 노골적인 반감입니다. 밴스는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이 미국인들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간 주범이라고 맹공격했습니다. 또한, 이윤을 좇아 생산 기지를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을 향해서도 지금 누리는 걸 누릴 자격이 없다고 가차 없이 비판했습니다. 노동자의 어려움을 정확히 알고,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은 공화당이며, 미국인이 다시 존중받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적임자는 오직 트럼프뿐이라고 밴스는 거듭 추켜세웠습니다.
사실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루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이기는 합니다. 다만 노동자도 어느 직군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다를 테니, 두루뭉술하게 노동자라고 부르면 명확한 기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보다 성별이나 연령, 학력 수준에 따라서 지지 성향을 나누는 게 유권자를 더 정확히 분류하는 방법일 겁니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백인 남성 노동자가 많고, 해리스(민주당)는 노동자 중에도 사무직, 전문직 노동자, 또는 여성과 유색인종, 젊은 층에서 인기가 더 많습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이후 노동조합은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했고, 전통적인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의 표심도 대체로 민주당 편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경제 발전과 함께 노동자들의 중산층 진입이 가속하자, 민주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죠.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은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먹해졌고, 이후 오랫동안 불만이 쌓인 양측의 관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사건입니다. 노동자들은 민주당과 민주당이 대변하는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들이 우리 삶에 도움을 준 게 대체 뭐가 있냐는 트럼프의 ‘속 시원한 외침’에 호응했고, 이후 트럼프에게 단단한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 기조는 사실 공화당의 전통적인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부문의 세금을 깎고, 정부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부족한 세수를 어떻게 메울 계획이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부 규모를 줄이면 돈이 지금처럼 필요하지 않고, 또 시장이 알아서 잘 굴러가면 경제가 성장하고 모두가 혜택을 본다는 “낙수 효과”를 말합니다.
밴스는 그런 공화당이 다시 집권했을 때 필요하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보호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을 대상으로 오랜 시간 잊혀지고, 종종 무시당하기 일쑤인 노동자 계층을 꼽습니다. 트럼프의 비전과 얼핏 결이 다른 듯하면서도 실은 이를 잘 뒷받침하는 전략인데, 공화당 후보답지 않게 자본과 대기업을 대놓고 욕하면서도 결국, 노동자들을 향해 “우리는 당신의 아픔을 알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파스에서 경제 정책을 자문하는 오렌 카스가 바로 이러한 밴스와 공화당 정치인들의 비전과 전략을 뒷받침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진보 노조 vs 더 나은 일자리… 노동자가 정말 원하는 것
민주당과 공화당이 지목하는 “원흉”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긍정적인 보상을 약속하는 것보다도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을 들춰내는 편이 표를 얻는 데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트럼프와 해리스가, 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내세우는 경제 정책도 비슷합니다. 공약집을 보면 유권자들의 삶을 어떻게 낫게 할지 다소 복잡한 공약을 열심히 설명해 놓긴 했는데, 유세 현장에서는, 그리고 아마도 10일 TV 토론에서도 상대방의 과거 발언이나 약점을 부각하는 데 양쪽 다 힘을 쏟을 겁니다. 이때 양측이 미국인들을 향해 “당신들의 삶을 이토록 팍팍하게 만든 원흉”으로 지목하는 대상이 비슷한 듯 다르고, 겹치는 듯해도 엄연히 방점이 다른 데 찍힙니다.
민주당이 가리키는 비난의 화살은 주로 불공정 경쟁을 서슴지 않고 폭리를 취하는 기업, 제 몫의 세금을 내지 않고 불평등을 키워가는 부자(와 이를 정책적으로 더 가속하는 트럼프)를 향합니다.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이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게 경제를 운영하겠다며 노동자가 단결권을 포함해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노조 편에 서겠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을 보면, 묘하게 1960, 70년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말만 안 할 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풀어 써보자면, ‘민주당을 지지해 주는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선거 때마다 조직적인 표를 쉽게 확보할 수 있을 테니…’에 가깝겠죠.
공화당은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기득권, 엘리트를 한데 묶어 비판합니다. 심각한 수준의 빈부 격차를 불러온 건 금융 엘리트고, 인건비를 절감한다는 미명하에 미국의 좋은 일자리를 다른 나라로 빼돌려 미국 노동자들의 삶을 악순환의 고리로 떠민 데 일조한 세계화 찬성론자들은 다 나쁩니다. 민주당이 대부분 여기 속하고, 트럼프와 대립하는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막막한지 관심도 없으면서 민주당과 결탁해 자기 자리보전하는 데만 급급한 노동조합도 불신의 대상입니다.
밴스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에 잘 묘사돼 있지만, 러스트벨트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실제로 심각합니다. 경제 지표는 늘 전국 평균을 밑돌며, 공동체가 무너진 곳투성이며, 마약 중독을 포함해 절망의 죽음이 너무 많아 평균 수명이 미국 평균보다 몇 살 작은 정도입니다. 노동조합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비판은 지나치지만, 노동조합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민주당이 대부분 노조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공화당이 노조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진짜 노동자’를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도 일리 있는 접근입니다.
유권자들이 느끼는 주머니 사정이 반영된다면, 누가 웃을까?
정치학 용어 중에 “Economic Vot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경제적 투표”로 옮길 수도 있고, 좀 더 풀어 쓰자면, “유권자들이 각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하는 투표”를 뜻하는 말입니다. 수많은 변수와 요인 가운데 대선 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물가와 실업률, 경제 성장, 소비자 신뢰지수 등을 망라한 경제 지표, 그것도 선거를 앞두고 가장 피부에 와닿는 시기여야 하므로 2분기 경제 지표를 꼽는 정치학자도 많습니다.
물론 이번 선거는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 이례적인 선거인데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공(功)에는 자기가 이바지한 점을 강조하면서도 과(過)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도 유권자가 경제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불만이 있다면 그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는지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클 겁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주장 중에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정답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선거에서 이긴 쪽만 약속한 대로 정책을 펼 수 있고, 다른 쪽이 냈던 정책은 영영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힐 수 있죠. 특히 거시경제는 제아무리 미국이란 초강대국 대통령도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적인 영역입니다.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더 어렵고요.
결국,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내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해줄 것처럼 보이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10일 TV 토론에서 두 후보가 내놓는 경제 정책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차분히 따져보는 일도 물론 해야겠지만, 누가 더 유권자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게 문제와 해결책을 잘 설명하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동시에 중요한 관전 요소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