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영어 아닌 외국어 사용이 문제라고? ‘효율적 소통’ 이면에도 문제가 있다
2024년 5월 11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3월 2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무엇일까요?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은 제3조 1항에서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2016년 8월 한국수화언어법 시행과 함께 한국수화어가 공용어로 지정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공용어는 총 2개입니다. 관련 법률을 모르더라도 한국에서 압도적으로 널리 통용되며, 공식 문서에 쓰이는 언어가 한국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안내 방송에 두세 개 외국어가 추가된 지 오래고, 식당 메뉴판이나 관광지 안내문에서도 외국어 병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요.

미국은 어떨까요? 통상 ‘미국의 언어’라고 하면 영어가 떠오르지만, 연방정부가 지정한 공용어는 없습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건 영어지만, ‘이민자의 나라’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양한 언어가 존재합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자료에 따르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미국인이 전체 인구의 20%에 달합니다. 실제로 하와이, 알래스카, 뉴멕시코, 루이지애나 등 특수한 배경을 지닌 주에서는 영어 외에 원주민 언어나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함께 지정하거나 그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존하고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멸종위기 언어 연합’ 소속 활동가 로스 펄린은 3월 10일 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언어적 다양성이야말로 미국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전문 번역: 공용어 없는 미국, 수백 개의 언어가 공존하고 있다

 

한편, 영어를 연방정부 차원에서 공용어로 지정하고 영어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민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민자들의 융합과 국가적 단합, 효율적인 교육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다른 언어들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U.S. English’‘ProEnglish’ 등 관련 입법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도 존재하죠.

다만 펄린과 같은 언어 다양성 활동가들이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영어만 사용하자’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사회에서 언어의 문제 역시 다른 모든 사안과 마찬가지로 인종 문제, 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어만을 공식 언어로 지정하자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세력 가운데는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 단체인 ‘시민자유연맹(ACLU)’이 있습니다. ACLU는 영어만을 공식 언어로 인정하는 정책이 정부에 대한 청원권, 언론과 표현의 자유 등을 보장한 미국 헌법에 어긋나며, 차별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최근에는 이 사안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견을 추측해 볼 만한 발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가 이민자들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아주 끔찍한 일”이라는 발언이었죠. 처음 대권에 도전할 때부터 이민자에 대한 거칠고 차별적인 언사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제는 언어를 문제 삼기 시작했으니, ‘언어에 대한 공격은 곧 그 언어를 쓰는 사람에 대한 공격’이라는 해석도 지나친 우려는 아닐 것입니다. 언어의 다양성이 존중됐느냐 훼손 또는 박해됐느냐가 차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펄린은 언어적 다양성이 미국의 경제, 문화, 예술, 교육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요소이며, 이를 보존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민자에 대한 영어 교육 지원을 확대하여 소통과 교육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소수 및 희귀 언어 보호와 연구에 지원을 늘리는 것도 불가능한 과제는 아닐 것입니다.

영어 아닌 ‘외국어’를 문제 삼기 시작한 트럼프 전 대통령, 그가 다시 백악관을 차지한다면 미국의 공용어 정책도 달라질까요? 언어 정책은 미국 사회의 이민 정책, 다문화주의, 인종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전후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키워드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