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장바구니 물가 상승’이나 ‘손실 회피 성향’이라고만 넘길 수 없는 것들
2024년 3월 19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월 2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아직 280일도 더 남은 미국 대선 열기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따로 없는 미국에선 대선이 있는 해는 일 년 내내 선거 뉴스가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 23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니키 헤일리 전 UN 대사를 꺾으면서 올해 대선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로 사실상 굳어진 모습입니다. 양측은 본선에서 각자 자기한테 유리한 이슈를 내세우고 부각하려 애쓸 겁니다. 양측이 들고 나올 카드는 무엇일까요?

우선 트럼프 전 대통령은 8년 전 야당 후보로서 먹혔던 전략을 다시 들고 나올 겁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과 약점들을 당연히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겁니다.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혼란을 초래한 점은 이미 틈만 나면 비판의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세에 나설 때마다 어김없이 언급하는 게 바이든 집권 기간 기록된 엄청난 인플레이션입니다. 사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건 코로나19 팬데믹 지원금을 풀기 시작한 트럼프 행정부 말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바이든=인플레이션”이란 공식이 성립할 만큼 지난 3년간 소비자 물가는 기록적인 속도로 오른 게 사실입니다.

반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부각하고자 하는 건 우선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해치고 미국 헌법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트럼프를 기소한 검찰의 수사를 직접 언급하는 건 ‘정치검찰’ 혹은 ‘수사 개입’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만큼 삼가고 있지만, 여전히 2020년 선거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방조, 사주한 데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를 공격하고 있죠.

지난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지지를 등에 업고 후보가 된 이들 대부분은 2020년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원래부터 공화당이 유리한 선거구에선 승리했지만, 민주당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던 곳에선 대부분 졌습니다.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드러난 중도층 유권자의 우려, 즉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규칙조차 따르지 않으려 한다는 우려를 공략할 겁니다.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구호 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바이든 캠프가 꺼내 들 또 다른 카드는 다름 아닌 경제입니다. 물론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경제는 전임 트럼프 시절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정부와 비교해도 못지않게 잘 굴러갔다는 주장을 전방위적으로 펼 겁니다. 같은 사실, 한 가지 현상을 두고 전혀 다른 데 방점을 찍음으로써 벌어지는 두 캠프의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겁니다. 아무리 다양한 이슈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해도 결국, 유권자들의 주머니 사정, 경제에 대한 인식만큼 표심과 직결되는 주제는 흔치 않습니다. 좋든 싫든 경제를 두고 양측은 크게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지난달 거시경제 지표와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의 간극에 관해 쓴 에서 경제학자들이 예로 드는 각종 지표가 물론 경제 전반을 충실히 그려내고 담아낸 숫자지만, 사람들이 현실을 팍팍하다고 느끼는 데도 여전히 일리가 있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주제를 좀 더 좁혀 치솟는 물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이면에 어떤 기제가 작동하는지 살펴본 글이 뉴욕타임스에 실렸습니다.

전문 번역: 그들이 왜 화났냐고요? 스니커즈 바를 예로 들어 봅시다.

 

폴 도노번은 스니커즈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우리 사정에 맞춰 품목을 바꿔보자면 라면이나 김장철 배추나 고춧가루를 대입해도 좋겠습니다. 이를 아우르는 “장바구니 물가”란 표현도 있죠. 어쨌든 도노번은 원래 비싼 품목보다도 매일 같이 자주 사는 물건값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지적합니다.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략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진화론의 전제에서 “손실 회피 성향”을 빌려와 물건값이 올라 구매력이 떨어지는 걸 손실로 받아들인다는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어쨌든 자주 사는 물건값이 오르면, 그 사실이 피부에 와닿을 수밖에 없는 건 자명하니, 바이든 행정부 경제 관료나 친 민주당 성향의 경제학자가 지적하는 “실제 지표는 좋으니, 문제를 부풀리지 말라”는 꾸짖음이 잘 먹히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유권자(소비자)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그림자 인플레이션”이라고도 불리는 “슈링크플레이션”입니다. 물건값을 올리는 데 대한 반발이 워낙 크다 보니, 기업들이 가격표는 그대로 두되 포장지 안에 든 물건의 크기를 줄이는(shrink) 겁니다. 이는 꼭 상품에만 해당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임금이 올랐는데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인력 부족 현상이 만연한 서비스 부문에서도 그림자 인플레이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장 미국에서 식당에 가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더 많은 손님을 치르느라 지친 서버들의 서비스 품질은 낮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음식값은 물론 서버들에게 주는 팁의 권장 요율도 오히려 높아졌죠. 실제 인플레이션과 그림자 인플레이션이 섞여 있는 셈입니다. 같은 값을 치러도 받는 서비스는 작아진 스니커즈처럼 줄어들었으니까요.

 

경제 둘러싼 바이든-트럼프 공방 관전 포인트

트럼프는 유세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할 때 인플레이션을 언급합니다. 자신이 대통령일 때 (팬데믹 이전) 집값, 대출 이자, 주요 소비 품목 가격을 소개한 뒤 항목별로 지금은 얼마나 가격이 올랐는지 쭉 숫자를 읊는 것으로 공격의 포문을 열곤 하죠. 평소엔 근거가 빈약하거나 전혀 없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트럼프지만, 물가에 관해 지적하는 숫자는 대부분 사실입니다.

다만 트럼프 집권 기간의 경제 호황이 어디까지 트럼프 덕분이고, 어디까지는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건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짚고 가야 합니다. 또한, 트럼프가 2020년 바이든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 과연 바이든 행정부보다 더 잘 벗어났을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도노번의 칼럼에서 소개한 것처럼 미국 정부도 반세기 전에는 주요 임금이나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의 가격을 동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정부에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오늘날 시장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혹은 막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물가를 좌지우지한다고 해석하는 건 근거가 부족한 억측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자기한테 유리한 수치만 부각하며 거기에 작용한 운을 무시한 채 모든 걸 자신의 치적으로 삼는 정치인의 주장은 어느 정도 깎아서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맥락을 다 지운 채 맹목적인 주장을 펴지는 않지만, 소비자들이 실제로 겪은, 또 여전히 겪고 있는 고생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이번 칼럼에 대해 뉴욕타임스 독자들이 오피니언에 보내온 편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한 독자는 도노번이 소비자들을 실제 물가 동향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가 자주 사는 물건의 가격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로 그린 점을 우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이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지만, 실제로 임금이 그만큼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삶이 팍팍해진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임금이 팬데믹 내내 올랐는데도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 임금을 계산해 보면 2020년 겨울보다 덜 벌고 있다며, 유권자들의 분노를 그저 스니커즈바 가격이 비싸진 데 대한 불만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독자는 소비자 물가에 집중하다 보면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많은 유권자가 인플레이션과 높은 금리를 우려하는 건 오히려 집값과 대출 이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올린 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가 너무 어려워져서 큰 문제입니다. 금리를 결정하는 건 연방준비제도의 권한으로, 여기에 정부가 개입하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50년 전 닉슨 대통령과 달리 소비자 물가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도 없을 만큼 정부와 시장은 분리돼 있습니다.

바이든은 이런 불리함을 안고 도전자인 트럼프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그저 경제를 모른다거나 트럼프를 지지하는 논리로 치부하고 귀담아듣지 않는 건 한 표가 아쉬운 박빙의 선거를 치르는 자세는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