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역사적 승리’ 거둔 미국 자동차노조, 그들의 ‘Make America Great Again’은 이뤄질까?
2023년 12월 25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1월 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2023년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열쇳말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조합’ 하면 해묵은 구호나 한물간 투쟁 방식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이 많을 텐데, 사실 미국에서도 노조의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노조 조직률도 지난해 기준 10.1%로 한국(14.2%)과 함께 OECD 최하위권을 다투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죠. 특히 미국은 공공 부문 노조 조직률은 33.1%로 높은 편이지만, 민간 부문은 6%에 불과해 그 격차가 아주 큰 나라이기도 합니다.

노조가 힘을 잃고 약화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조합원이 됐을 때의 장점을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입해 봤자 득이 될 게 없어서 조합원이 줄어들면, 많은 수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내야 높아지는 노조의 협상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노조의 매력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아마존 물류창고나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세간의 이목을 끄는 굵직굵직한 파업이 잇따랐습니다.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과 새로운 단체협상 타결이 시사하는 바에 관해서는 이미 전해드렸죠. 이번에는 좀 더 전통적인,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에 들어맞는 노동조합이 벌인 파업이 또 한 차례 노조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바로 전미 자동차노조(UAW)의 파업입니다.

먼저 폴 크루그먼이 이번 파업의 의의를 정리한 칼럼 번역했습니다.

전문 번역: [크루그먼 칼럼] 미국 자동차 노조의 역사적인 승리

 

노조와 사측이 합의한 단체협상안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임금이 약 25% 올랐습니다. 현재 미국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가장 높은 급여가 시간당 32달러인데, 이 액수가 앞으로 4년 반에 걸쳐 시간당 40달러까지 오릅니다. 사실 25% 인상안에 더해 물가가 오르면 그에 맞춰 임금을 더 올리기로 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받는 최고 급여는 시간당 40달러를 넘을 예정입니다.

여기에 특근 수당, 시간외수당을 더하면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가운데 연봉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연봉 10만 달러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라면 몰라도 자동차 공장들이 모여 있는 중서부의 제조업 도시에서는 중산층의 윤택한 삶을 누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액수입니다.

사실 처음 노조는 임금을 40% 올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해도 40%는 지나치다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 이에 대한 전미 자동차 노조의 답변은 간명했습니다. 지난 2019년 임단협이 타결된 뒤 4년 동안 자동차 회사 CEO와 경영진의 임금이 40% 올랐다는 겁니다. 그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죠. 최근 들어 자동차 기업들은 매출과 이윤 모두 호조를 보였는데, 그 혜택을 경영진만 누렸으므로, 40% 인상 요구는 전혀 지나치지 않은, 오히려 아주 상식적인 요구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물가가 오르면 그에 맞춰 임금도 올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물가를 임금에 반영하는 조항은 과거 자동차 산업이 한창 잘 나갈 때 모든 공장에서 채택했던 원칙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된 조항이었습니다. 이 조항이 다시 임단협에 포함됐다는 건 노조가 그만큼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밖에 회사가 노동자들의 퇴직 연금에 내는 돈도 늘어났고, 유급 휴가도 확대됐으며, 공장 폐쇄에 대해 노동자들이 파업할 수 없다고 못 박았던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블루칼라 노동자 = 중산층 공식 부활할까?

두 차례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50년대부터 미국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합니다. 미국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세계 경제를 선도했고, 이는 제조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주요 자동차 브랜드 공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미시간주를 포함한 중서부(mid-west) 지역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여러 자동차 회사가 공장을 가동하던 디트로이트를 연고지로 하는 NBA 농구팀 이름이 자동차 내연 기관의 피스톤(pistons)이라는 점은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이 당시 잘 나가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벌이도 좋았습니다. 지금도 한국에 비하면 높은 편이 아니지만, 당시 미국인의 대학 진학률은 매우 낮았습니다. 제조업 노동자 대부분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 이들이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공장에 취직해서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는데,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었죠.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미국 자동차 브랜드들은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미국 차들이 밀려나면서 매출과 기업 가치가 동시에 속절없이 내려갔습니다.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일자리를 지킨 이들에게도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건 더는 윤택한 중산층의 삶을 보장하는 멋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파산하거나 파산 직전에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는 등 그야말로 밑바닥까지 갔던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최근 10여 년의 실적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준입니다. 회사는 살아났는데,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낸 노동자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파업을 벌였습니다. 사실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이는 것 자체는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있지만, 이번 파업은 처음부터 예전과 다르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전미 자동차 노조위원장 숀 페인(Shawn Fain) 때문일 겁니다.

 

“싸우는 노조위원장” 션 페인

올해 55세인 숀 페인은 인디애나주 코코모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크라이슬러 공장에 전기 기술자로 취직했고, 바로 전미 자동차노조에 가입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4명 중 3명이 전미 자동차 노조원이었던 페인은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실제로 할아버지가 처음 받은 급여명세서를 마치 부적처럼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합니다.

페인은 노동조합의 주요 보직을 거치면서도 늘 일선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는 일이라면 사측, 경영진과 맞서는 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싸움꾼(fighter)’이란 별명이 붙었는데, 이를 당당히 내세워 올해 3월, 전미 자동차 노조 역사상 처음 직접선거로 치러진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됩니다. 일선 노동자들이 특히 페인을 많이 지지했습니다.

나는 사측과 싸우기 위해 노동조합 위원장이 됐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회사들과 끝까지 싸울 준비가 된 노동조합이 저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페인의 취임 일성이었습니다.

기록적인 실적을 전혀 나누려 하지 않는 사측을 향해 페인은 여러 차례 파업을 예고했고, 마침내 지난 9월 14일 전미 자동차 노조는 파업에 돌입합니다. 영상 속에서 파업을 선포하는 사람이 숀 페인 위원장인데, 페인은 비장한 어조로 “stand up strike”를 벌이겠다고 말합니다. 파업은 파업인데, 일어선 채로 하는 파업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엉덩이를 가볍게, 일어선 채로 하는 파업”

자동차 노조와 같은 거대한 산별 노조의 전형적인 파업을 생각해 봅시다. 수많은 조합원을 거느렸다는 건 그 자체로 회사를 압박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무기를 손에 쥐었다는 뜻입니다. 전미 자동차 노조는 보통 임단협을 앞두고 협상안에 이견이 크거나 다른 문제가 있는 회사 한 곳을 골라 거기서 대대적인 총파업을 조직했습니다. 공장 가동이 일제히 멈추면 짧은 시간에 가능한 한 최대의 타격을 사측에 입히는 식으로 실력을 행사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대로 협상이 진행되면, 이어 다른 회사와도 협상을 벌였습니다. 자동차 노조뿐 아니라 많은 산별 노조가 수십 년째 이런 전략을 써왔는데, 사측의 양보를 얻어낸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노조와 노동자들도 손해가 막심해서 문제였습니다.

대대적인 파업에 나서면 노동자들이 보통 공장이나 사무실 등 일터에 모여 이른바 ‘점거 농성’을 벌이죠. 생각해 보면 점거 농성은 대개 한 자리에 앉아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션 페인이 말한 “일어선 채로 하는 파업”은 앉아서 벌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총파업과 정반대 전략입니다. 파업을 선포하면서 페인은 조합원들에게 “지도부가 정해준 사업장을 제외한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반드시 출근해서 일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다 함께 파업에 동참하자면서 대부분 조합원들은 정상 근무를 하라는, 다소 모순적인 전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GM과 포드, 스텔란티스의 공장 곳곳에서 파업을 벌이긴 했지만, 처음 파업에 참가한 인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공장 안에서도 일부 조업 라인만 멈추게 한 곳도 있습니다. 대신 정상적으로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지도부의 지시가 나오면 언제든지 일손을 멈추고 파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엉덩이를 가볍게 하고, (언제든 나갈 수 있게) 일어선 채로” 파업에 임해 달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페인은 이 방식을 택한 이유도 명확히 밝혔습니다. 사측에 불확실성을 안겨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은 파업에 참가한 인원이 적어 큰 피해가 없지만,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을 경우 노동조합이 어느 공장의 어떤 조업 라인을 멈춰버릴지 모르게 하겠다는 거죠. 노조로서는 파업에 따르는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사측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파업이 일어나면 회사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닙니다. 노동자들도 당연히 손해를 감수합니다. 일하지 않은 만큼 급여나 수당을 못 받게 될 수 있는데, 노조에서는 노동자들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파업 기금(strike fund)을 마련해 둡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총파업과 이번에 자동차 노조가 택한 파업 방식을 비교해 봅시다. 모든 노동자가 한꺼번에 일손을 멈추면, 파업 기금은 당연히 빨리 소진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측으로서는 며칠만 버티면 자원이 고갈된 노동자들의 기세가 꺾일 거라고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일어선 채로 벌이는, 게릴라식 부분 파업은 노조가 손해를 보전해줘야 할 노동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노조가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허세를 부린다면 이 전략은 먹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미 자동차 노조원들은 파업 결의가 높았고, 실제로 실력 행사에 나선 적도 있습니다. 10월 초, 포드가 노조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무시한 수정안을 들고 초반 협상에 임하려 하자, 션 페인은 협상 테이블을 10분도 안 돼 박차고 나와 그날 밤 곧바로 포드의 주력 품목 중 하나인 픽업트럭과 SUV 등 중대형 차량을 생산하는 켄터키주 루이빌의 공장을 멈춰버렸습니다.

 

승리 여파 어디까지 미칠까?

이번 파업은 자동차 노조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 관심은 파업과 승리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든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변하는 원인은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노조에 가입하는 게 나한테 득이 되면, 이를 마다할 노동자는 많지 않습니다. 반대로 가입해 봤자 얻을 것도 없고, 손해 볼 게 뻔해 보이면 외면받겠죠. 이번 파업과 승리는 당장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지만,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 겁니다. ‘노동조합에 들면 내 월급도 오르고, 내 삶도 나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죠.

전미 자동차 노조는 ‘물이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를 젓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신규 노조원을 늘리고, 노동조합이 없는 공장과 회사마다 노조를 설립하고 조직하는 캠페인을 벌일 계획입니다. 전미 자동차 노조는 이를 위해 남쪽으로 세를 확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주로 중서부 지역에 공장을 두고 있는 반면, 도요타나 현대, 혼다, 니산 등 (미국 기준에서) 외국 자동차 회사들은 주로 남부 주에 자동차 제조 공장이 있습니다. 주 정부 차원에서 공장을 유치하면서 세제 혜택을 주기도 했지만, 기업들에 남부 주가 매력적인 이유는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제도적 환경 때문입니다. 남부 주들 중에는 노조가 불법이거나 노동조합을 설립하기가 법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곳들이 많습니다. 보수적인 정치 성향과 문화적인 요인도 겹쳐 이래저래 “노조 하기 어려운” 곳이 남부입니다. 션 페인 위원장은 전미 자동차 노조가 이제 그 남부로도 진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테슬라 등 전기차 생산 공장에도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시장점유율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점과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테크 업계가 전통적인 제조업 노조를 매우 혐오하는 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24 대선과 노동조합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파업 현장에 찾아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노동자들과 어깨를 건 첫 미국 대통령이 됐죠. 파업을 강경 진압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한 대통령은 많았지만, 또 노동자들의 파업에 공감하는 성명을 발표한 대통령도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대통령은 바이든이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이를 두고도 정치적인 쇼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바이든의 위선을 지적했습니다.) 그래도 미시간주를 비롯한 중서부 주들이 내년 대선의 향방을 가를 경합주(swing states) 임을 고려하면 바이든의 이례적인 행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 전기차 보급을 늘리겠다고 약속해 온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지적한 바이든의 위선이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미 자동차 노조도 기술의 변화를 애써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전기차로의 전환 자체를 가로막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기존 노조원들이 계속해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재교육을 강화하고 전기차 생산과 판매에서 나오는 이윤을 적절히 나눠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임단협에도 이에 관한 논의를 앞으로 더 충실히 해나간다는 조항이 담겼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기차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동시에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도 사실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 더 문제입니다. 전미 자동차 노조의 승리가 내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