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연금, 정해진 미래가 만든 ‘방 안의 코끼리’
2023년 12월 20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1월 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20세기 인류 평균수명의 증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경제학자 맥스 로저에 따르면 20세기 동안 인간의 평균 수명은 1900년 32세에서 2000년 66.5세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아프리카를 제외한 지역의 평균 수명은 70대 후반이며 많은 이들이 이 숫자가 가까운 시일내에 90세까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아사망률의 급격한 하락, 그리고 전염병과 기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의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며 전쟁이나 사고로 인한 사망을 줄인 사회와 제도의 변화 덕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구구조의 변화는 더 큰 제도적 변화를 요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금제도입니다. 연금제도는 은퇴 연령인 65세를 넘기는 이들이 많지 않았고 연금 수령 기간도 길지 않았던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평균 수명의 증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65세를 넘기며 길게는 삼십여 년 동안 연금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연금이란 소득이 있는 일정 기간 동안 보험금을 납부한 이들에게 이들이 나이가 들거나 사고를 당해 소득이 없어졌을 때 이를 지급해 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연금제도의 한 가지 문제는 이 제도가 여러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금의 가장 큰 목적은 소득이 없는 이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제도의 역할입니다. 만약 연금제도를 순수하게 이 목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면, 국가가 부유한 이들이나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은 뒤 이를 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재원과 용처를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세율을 상당히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며 따라서 국민들의 조세저항을 불러옵니다. 때문에 연금제도는 자신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를 납입하며, 국가가 이를 관리했다가 노년에 돌려주는 저축의 특징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펀드매니저에게 자신의 자산 관리를 부탁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명이라는 불확실성을 책임져주는 보험의 역할 역시 있습니다. 만약 개인이 자신의 노후를 관리해야 한다면, 자신의 사망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해야만 생활수준을 관리할 수 있을 겁니다. 곧, 자신이 자신의 예측보다 더 오래 살게 되는 것이 지독히 가난한 황혼기를 의미하는 불행한 소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연금제도를 통해 살아 있는 동안 연금을 계속 지급받을 수 있다면, 이 수명이라는 불확실성을 가진 변수를 집단의 통계적 특성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측면들이 실제 제도의 운영에는 서로 충돌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연금이 복지라면 더 가난한 이들에게 적어도 연금 수령 후 보정 소득이 역전되지 않는 한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해줘야 할 것입니다. 반면, 저축이라면 더 많은 돈을 낸 이가 더 많은 돈을 돌려받아야 합니다. 보험의 측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더 오래 사는 이들은 더 부유한 이들이며, 이들이 더 오래 연금을 받는 것은 어쩐지 더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어떤 조건들, 곧 인구가 계속 증가하거나 경제 규모가 계속 발전한다면, 그리고 인간의 수명이 무리하게 증가하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다수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상황에서 위의 조건들을 줄타기하며 유지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조건들이 만족되지 않는 세상이 다가오면서 처음 합의된 사회적 약속이 위태로워졌습니다. 곧, 저출산으로 인해 근로자의 비율은 줄어든 반면, 평균 수명의 증가인 고령화로 인해 노년층의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근로자 대비 수혜자 비율, 곧 부양인구비율은 1965년 4.0에서 오늘날 2.7로 줄었고, 20년 후에는 2.3까지 감소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 중인 대한민국의 경우 그 비율은 2022년 4.1이지만 20년 뒤 1.7로 줄어들며 2070년에는 1.0으로 줄어들 예정입니다.

즉, 연금제도가 이대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정해진 미래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모른척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방 안의 코끼리’인 것입니다. 물론 이 제도에 손을 대지 못하는 매우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제도의 변경으로 인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고 때문에 우리의 미래를 책임 진 이들이 책임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전문 번역: 나이 든 사람들이 일은 더 많이 하고 돈은 덜 받아야 하는 이유

 

지난 10월 26일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란에는 나이 든 이들이 손해를 봐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이 실렸습니다. 어반 브루킹스 세금정책연구소의 공동창업자인 C. 유진 스튜얼과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글렌 크레이먼은 미국의 경우 세금과 보험 등으로 이미 나이 든 이들이 충분한 이득을 보고 있으며, 또 과거보다 노인들이 더 건강해진 만큼 더 오래 일하고 더 길게 연금을 내야 한다고 매우 강력한 어조로  주장합니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똑같은 상황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칼럼이 말해주는 것은 결국 연금 제도라는 것은 세대 간의 줄다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며, 또 이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충분히 수준 높은 국민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더 많은 변화와 문제들이 미래에는 산적해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이미 긱이코노미와 같이 노동의 조건을 바꾸었으며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혹은 특이점주의자들의 말처럼 이삼십 년 안에 초인공지능이 나타나 모든 문제를 긍정적으로 건 부정적으로 건 사라져 버리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기본소득이 정말로 말이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런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서라도, 우선 예상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이 코끼리를 치우겠다는 책임 있는 누군가가 나와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