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시험 문제를 꼭 정해진 시간에 빨리 풀어야만 할까
2023년 11월 17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오늘 소개하는 글은 9월 2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누구나 시간이 모자라 시험 문제를 다 풀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많은 시험이 수험생들의 시간이 부족하게 만들어지며, 따라서 시험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요령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문제가 시간을 많이 뺏을 것 같으면 넘어가라는 식이지요.

애초에 해당 시험이 측정하고자 하는 실력과 이런 요령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잠깐 의문이 들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면 그런 문제도 빨리 풀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탓하고는 넘어갑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험생이 시간을 부족하게 느끼며 이런 요령이 변별력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 가지 미심쩍은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어떤 일을 빨리 해내는 사람이 실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가정입니다. 여기에는 당장 반론이 가능하지요. 곧 쉬운 문제는 빨리 풀지만. 어려운 문제는 풀지 못하는 사람과 쉬운 문제도 시간이 좀 걸리지만 시간을 좀 더 주면 어려운 문제까지 풀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경우 두 번째 사람이 더 실력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누구나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은 있겠지요.

펜실베이니아 와튼 경영대학원의 애덤 그랜트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시간이 부족한 시험이 가지는 문제점과 함께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가 내년부터 시간이 덜 부족해지는 시험으로 바뀐다는 내용을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란에 기고했습니다.

전문 번역: 내년에 확 달라지는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시험 시간과 실력의 관계

물론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면 빨리 마치는 것이 주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또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요. 일상에서 말하는 효율은 대부분 시간당 산출물로 계산되며, 더 좋은 기계는 대부분 더 빠른 기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같은 반론이 가능합니다. 곧, 해당 시험으로 뽑으려는 사람이 그저 어떤 일을 시간에 쫓겨가며 빠르게 해야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랜트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폭탄제거반으로 일할 사람이나 텔레비전 퀴즈쇼에 나갈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학생들에게 시간 압박 속에서도 정답을 찾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더 정확한 답을 더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랜트는 학습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들이 시험에서 추가 시간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며,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학습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도 말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일일 수 있지만, 저는 미국 대학에 있던 시절 이를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즉,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임에도 학습장애가 있기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50%의 시간을 더 배정해야 했던 것이지요.

미국은 테스트 결과 시험 문제를 줄이고 시간을 늘렸을 때 결과가 더 좋았기 때문에 내년부터 SAT를 이 방향으로 운영한다고 합니다. 실험을 하고 그 실험 결과에 따라 제도를 바꾸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로 보입니다. 결과가 좋았다는 말은, 그 방식으로 뽑은 학생이 이후 대학을 진학했을 때 성적이 더 좋았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시험 문제 수를 줄이고 시간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문제의 수가 충분해야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고, 시험 시간을 크게 늘릴수록 관리의 문제가 생길 겁니다.

대학의 몇몇 전공 시험 중에는 그런 시험들이 있습니다. 학부생 시절,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시험은 오픈북에 시간은 무제한이었습니다. 오후에 시험이 시작하고 저녁이 지나도 남아 있는 학생들을 위해 조교가 빵을 사다 주는 것이 하나의 미담이자 전통이었지요.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런 식으로 치르기는 힘들 테고요.

사실 이 모든 문제에는 가장 근본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곧, 테스트를 통해 어떤 본질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질량이나 전하량, 온도와 빛의 밝기 같은 물리적 본질은 정의 자체가 측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노이즈와 같은 실험 오차를 제외하면 아주 정확한 수준으로 측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실력, 곧 수학이나 영어와 같은 추상적인 능력은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지요. 여기에는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가 존재합니다. 곧, 수학 시험을 잘 치르는 이는 대체로 수학 실력이 좋은 친구입니다. 하지만 좋은 수학 시험은 수학 실력이 더 뛰어난 이가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험이어야 하겠죠. 그리고 그 간극은 운이라는 것이 메꾸고 있고, 이를 다른 말로는 인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