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각자 다른 ‘평행 우주’에 살고 있는 여야 지지자들이 함께 맞이할 내년 선거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8월 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기소됐습니다. 선거에서 패한 뒤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막으려고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해 음모를 꾸며 국가에 해를 끼친 혐의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 제목에서 지적한 것처럼 나라를 배신한 죄에 해당한다고 썼습니다.
혐의로 지목된 일련의 계획과 행동, 발언이 워낙 방대한 만큼 기소장을 분석하고 앞으로 일정을 정리하며, 정치적인 파장을 내다본 기사와 칼럼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기소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데자뷔가 오지 않으시나요? 그럴 만도 합니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를 수사하는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수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전례 없는 일이다 보니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죠.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혐의가 쌓일수록 함께 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정치 후원금이 그렇고, 트럼프의 지지율도 그렇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은 둘로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을 향한 검찰의 기소가 추가될 때마다 “부정하게 내 승리를 빼앗아 간 바이든이 다음번 선거에서 나한테 질까 봐 두려워서 정치적인 음해와 보복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 말에 격렬히 반응합니다.
정치적 양극화 자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양극화는 훨씬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엣살이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는 서로 다른 평행 우주에 산다”고 썼을 정도입니다. 검찰이 트럼프를 기소할 때마다 트럼프가 마땅한 죗값을 치른다고 믿는 사람들과 이는 전부 다 날조된 정치적인 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대선을 15개월 넘게 남겨둔 시점에 치른 이른 여론조사 결과도 바이든과 트럼프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원래 오늘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치적 양극화 탓에 내년 미국의 대선 구도는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내용의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트럼프가 저지른 잘못이 낱낱이 밝혀져봤자, 그 충격파는 지지 정당을 갈라놓은 선을 넘지 못한다는 글이 됐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글도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럼프가 워낙 전례 없는 말과 행동을 일삼은 특이한 인물이긴 하지만, 미국은 원래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가 서로 팽팽히 나뉜 나라입니다. 또 최근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트럼프도, 바이든도 다 싫다는 부동층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이는 아직 대선이 한참 남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더 싫어하는 후보의 승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차악에 투표하는 결집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어느 선거에서든 한 후보를 찍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조 바이든을 찍은 유권자들이 모두 공유하는 생각이 없듯 트럼프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를 찍었다고 그 사람을 인종차별주의자나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뉴욕타임스 독자들 다수는 트럼프 지지자나 매번 공화당을 찍는 지역을 향해 알게 모르게 이런 편견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 테네시주 내쉬빌에 살며 미국 남부의 동식물, 정치, 문화에 관해 칼럼을 쓰는 마가렛 랭클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한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별의별 이야기와 고정관념이 넘쳐나는 지역 – 남부에서 진실을 전하기
사람은 복잡한 존재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어떤 지역이나 공동체, 집단의 특징을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고, 선거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지 모르는 말이지만, 중요한 통찰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한 가지가 아니고,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의견을 내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랭클은 없는 말을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적한 미국 남부를 향한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은 분명 실재합니다. 제가 남부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저도 편견인 줄도 모르고 편견을 지닌 채 살았을지 모릅니다. 버지니아주 샬롯츠빌과 랭클이 사는 테네시주 내쉬빌에 합해서 고작 4년 산 게 전부지만, 그 덕분에 저는 적어도 어떤 생각이 들 때 이건 내 안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쁘다는 걸 알아도 편견을 버리기는 쉽지 않아서 편견 없이 살고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지만요.
대신 매우 제한적인 저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남부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죄다 덮어놓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미뤄 짐작했을 때 인종차별주의자라 부를 만한 사람을 만난 기억도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가장 심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당한 건 코로나19 초기 뉴욕 맨하탄에서였습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생각, 임신 중절에 대한 생각, 과학적 사실을 믿는 태도, 음모론을 가려내는 과학적 분별력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남부라서 그렇군.’ 한 경우, 즉 고정관념을 강화해 주는 사건은 적어도 제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에 소개한 적 있는 미국 선거 결과를 투표소별로 모아 표시한 상세 지도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파란 미국(민주당)과 빨간 미국(공화당)은 선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남부는 대체로 공화당이 우세한 곳이 많지만, 남부에서도 도시들은 대부분 민주당이 우세합니다. 붉은 바다에 떠 있는 푸른 섬 같습니다.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MAGA’는 고작 37%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인기가 좀처럼 오르지 않으면서 트럼프는 점점 더 2024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대세를 굳히는 중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검찰이 트럼프를 기소할 때마다 공화당 경선은 점점 더 싱거운 싸움이 되고 맙니다. 트럼프와 다른 후보들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선거 분석 기사를 쓰는 네이트 콘 기자가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왜 강한지 분석한 기사를 보면, 역설적으로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정말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트럼프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지지하는 소위 MAGA(트럼프의 선거 구호) 공화당원은 37%에 불과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공화당 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 3명 중 2명이 우리의 고정관념, 편견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는 무조건 인종차별주의자나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이라고 속단하는 한, 우리는 결국 이들을 영영 오해한 채 편견에 갇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미국 남부 유권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우리가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할 필요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잘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두는 편이 낫지, 어설픈 편견과 고정관념에 기대 속단한 내용을 진실이라 믿고 오해한 채 사는 건 위험합니다.
“지면 끝장인 선거”의 위험
주별로 선거 결과를 집계한 뒤 선거인단을 승자에게 몰아주는 독특한 선거 제도 탓에 미국 대선은 박빙일수록 경합주의 승패를 가르는 몇 안 되는 유권자들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이나 트럼프가 패한 2020년이나 전체 투표에서 나타난 표심의 큰 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박빙일수록 대선 결과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읽어내려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보다 내년 선거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걱정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선거의 성격 자체가 “지면 끝장나는 선거”가 되는 건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퇴보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절차에 따라 선거를 치르고 결과에 승복하는 건 민주주의 제도를 지탱하는 근간 중 하나입니다. 이번에 선거에서 져도 다음번에 다시 잘 준비해서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면 다시 권력을 찾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선거에서 졌다가는 패가망신할 게 뻔해지면, 누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이겨 살아남으려 할 겁니다.
지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나 그의 대응을 보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는 것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또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대기 위해 부지런히 정치 자금을 모으려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죠. 자기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 바이든과 민주당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잔뜩 벼르는 트럼프를 볼 때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도 “절대로 지면 안 되는 선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 많은 것이 걸린 선거는 정책이나 비전을 두고 토론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년 미국 대선 관전 포인트를 미리 짚어볼까요?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나 그가 속한 집단을 함부로 속단하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할 테고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지면 끝장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수준 높은 정책 토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