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줄 서서 먹는 맛집’, ‘나만 아는 보석 같은 식당’… 어디를 더 가고 싶을까
2023년 9월 21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7월 3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뉴욕 맨하탄 이스트빌리지에는 제가 자주 찾는 단골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미슐랭 별을 받은 프랑스 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한국인 셰프가 한식과 프랑스식을 섞은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으로, 음식은 물론 맛있고, 셰프 가족과도 모두 친해서 틈만 나면 가는 곳입니다. 넓지 않은 식당 내부의 여러 자리 가운데 가장 안쪽에 있는 아늑한 자리가 특히 인기가 높습니다. 그래서 예약을 하면 보통 그 자리에 저희 일행을 앉혀주시곤 하는데, 지난봄에 식당을 찾았을 때는 그 가장 안쪽 자리에 예약석이라는 표시와 함께 조명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시나 보네요? 무슨 촬영이 있나요?”

제 질문에 식당 매니저가 답했습니다.

“보름쯤 전에 ㅇㅇㅇ라는 인플루언서가 우리 식당에 와서 식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틱톡이랑 인스타그램이랑 여기저기 팔로워 다 합하면 수백만 명 되는 거물이니까 당연히 오시라고 했죠. 이 사람이 홍보해 줘서 확 뜬 식당도 많거든요.”

인플루언서는 겉보기엔 수수한 차림의 아시아계 젊은 남성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이나 DSLR 카메라도 워낙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 촬영 장비도 평범해 보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와 장비처럼 음식을 촬영하고 맛을 본 뒤 묘사하며 녹화하는 과정도 조용조용 진행됐습니다. 인플루언서는 저희 일행과 비슷한 속도로 코스 요리를 먹었는데, 매번 진지한 표정으로 새로운 요리를 한 입 먹을 때마다 자세한 평을 남겼습니다.

혼자 와서 심심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일행 없이 혼자 왔으면서도 마치 수많은 팔로워에게 랜선 맛집 투어라도 해주듯 바쁘게 촬영을 이어갔습니다. 가끔 셰프가 직접 테이블에 가서 요리와 재료를 설명하기도 했고, 서버들도 특별히 주문을 받았는지 좀 더 신경 써서 음식을 서빙했습니다.

누구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식당에는 어딘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디저트까지 다 먹은 인플루언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산하고 셰프, 매니저, 서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떠났습니다. 저도 늘 그렇듯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고, 긴장이 풀린 듯한 매니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와, 전 그냥 음식 좀 찍고, 먹는 시늉만 하다가 갈 줄 알았는데, 정말 프로네요.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촬영하는 줄 몰랐어요. 인플루언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요!”

“그러게요. 저희 식당에 왔던 다른 인플루언서들 꽤 있는데, 오늘 저분은 특히 정성이 대단했네요. 맛있게 잘 먹고 만족한 것 같아 보이긴 한데, 어떻게 영상이 잘 나올지는 또 지켜봐야죠.”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다녀갔다고요? 그렇군요. 한 번씩 왔다가 좋은 리뷰 남겨주면 효과가 좀 있나요?”

“천차만별이에요. 식당 리뷰 진짜 잘해서 사람들이 믿고 보는 진짜 인플루언서도 있고, 아니면 별로 영향력도 없으면서 오히려 이것저것 잔뜩 요구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어딜 가나 진짜가 잘 되고 성공하면, 그저 그런 짝퉁도 생겨나고 심하면 사기꾼들이 파리처럼 꼬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레스토랑 추천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보니,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에 정확히 그 이야기를 다룬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전문 번역: 요즘 식당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슈퍼 갑’은 누구?

 

경쟁이 치열한 요식업계에서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는 때로 식당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숨은 맛집을 발굴해 주는 고마운 인플루언서도 있지만,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공짜로 식사를 대접받는 것은 물론이고, 홍보비 명목으로 식당에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상 온갖 것에 순위를 매기는 세태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칼럼도 떠올랐고, 지난주에 쓴 우리가 알던 소셜미디어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될지 모른다는 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소셜미디어는 이미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칼럼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주장 중 하나는 기성 언론과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식당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를 지적한 부분입니다. 즉 기성 언론은 숨은 맛집을 소개하는 기사든, 식당의 문제, 비위를 고발하는 기사든 식당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을 바탕에 깔고 있는데, 반대로 인플루언서들은 모든 걸 철저히 계산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물론 인플루언서 중에도 맛있는 음식, 좋은 식당을 발굴해 알리는 일에 보람을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대체로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뉴욕타임스 음식 비평가 피트 웰스

아마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의 대척점에 선 전통적인 음식 비평가의 대표 격인 사람이 뉴욕타임스에 글을 쓰는 피트 웰스(Pete Wells)일 겁니다. 웰스는 앞서 소개한 제 단골 식당에 대한 리뷰도 일찌감치 썼습니다. 당시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던 식당에 웰스의 후한 평 덕분에 찾아오는 손님이 꽤 늘었다고 합니다.

피트 웰스는 2012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수많은 식당의 후기, 음식에 관한 칼럼을 써왔습니다. 공개된 사진이 없지는 않으므로, ‘얼굴 없는 비평가’라고 부르기엔 다소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매번 가명을 써서 예약하고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게 적당히 변장하고 식당을 찾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비평을 쓰기 전에 보통 2~3차례 식당을 찾는데, 매번 다른 사람처럼 하고 나타납니다.

영향력이 너무 커지다 보니, 팬도 많지만 반대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어쨌든 웰스의 비평은 철저히 음식의 맛과 식당의 서비스에 집중한 글입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와는 다르죠. 웰스처럼 암행하는 비평가의 방문에 대비하려면 평소에 성실히 잘하는 것 말고 딱히 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반대로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는 돈을 주고 계약을 맺은 만큼 좋은 면만 담기로 약속한 사이라 마음이 놓일 법도 하지만, 오히려 눈치도 더 봐야 하고, 홍보 영상이 올라갈 때까지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홍보가 기대한 만큼 잘되지 않으면, 본전 생각에 속상할 때도 많습니다.

 

서로 다른 욕망에 맞춘 서로 다른 방식의 후기와 비평

저처럼 맛집 찾아다니기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어떤 의미에선 서로 모순인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즉 남들 다 가는, 줄 서서 먹는 집은 꼭 가보고 싶으면서 또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보석 같은 맛집’을 꼭꼭 숨겨두고 싶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음식 비평과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가운데 어떤 방식의 후기 또는 비평이 더 낫냐고 누가 묻는다면, 싱거운 답변이지만 둘 다 쓸모가 있다는 말을 하려고 꺼낸 이야기입니다.

피트 웰스의 비평은 기본적으로 글입니다. 음식 사진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식의 맛과 식당의 수준을 평가하고 전달하는 매체는 텍스트입니다. 독자들은 비평에서 묘사한 그 맛이 과연 어떤 맛일지 상상하며 식당을 찾고, 나의 판단과 피트 웰스의 판단이 얼마나 비슷한지 가늠해 보는 재미로 비평을 찾아 읽습니다.

반대로 소셜미디어는 주로 영상이 올라갑니다. 텍스트가 오히려 자막이라는 부차적인 수단으로 쓰일 뿐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돈 받은 만큼 식당을 홍보해 주는 것과 시청자를 대신해 맛집을 찾아 이것저것 경험하는 인플루언서 본인입니다.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게 두렵거나 불편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인플루언서일 겁니다. 오히려 관심을 끝없이 갈구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일이겠죠. 어쨌든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소개하는 맛집 영상은 남들 다 가는, 줄 서서 먹는 집에 어울립니다.

 

또 다른 팁: 미국 식당에선 꼭 팁 내셔야 해요

뉴욕타임스 칼럼을 쓴 스태비너는 무리한 요구로 식당 주인이나 셰프를 곤란하게 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양심 없는 행태를 비판했지만, 인플루언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 인플루언서의 영상이 홍보에 실제로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요. 다만 오늘 글에선 마지막으로 미국 식당의 팁 문화 얘기를 조금만 더 설명할까 합니다.

사실 미국 식당의 팁 문화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1월 “’한 끼 63만 원’ 세계 최고 식당이 문을 닫은 이유는”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요약하면, 미국에서 식당 서버들은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직군에 속하므로, 사실상 노동의 대가를 고용주가 지급하는 급여가 아니라 손님이 내는 팁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서버들이 팁에 예민하다는 겁니다.

음식값의 얼마를 팁으로 내는 게 적절한지는 법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문화와 관행에 따른 규범이 있을 뿐이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가가 오르면서 미국 주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내는 팁의 평균 요율도 올랐습니다. 음식값의 15%를 팁으로 내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제는 20% 정도는 내야 눈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플루언서들이 식당 주인 속을 썩이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팁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거라고 칼럼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미국에서 외식을 해본 적이 잘 없는, 그래서 팁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 인플루언서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음식이야 셰프나 식당 주인이 홍보비 치른다 생각하고 공짜로 줘도 상관없는데, 팁은 서버와 손님 사이의 서비스에 대한 성의의 표시입니다. 그러니까 음식값은 내지 않기로 양해받았더라도 팁은 어느 정도 내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홍보 잘 해줘서 식당이 장사 잘되면, 서버들도 손님 더 많이 받고 수익도 오를 테니 좋은 거 아니냐고요? 그건 인플루언서 본인 생각일 뿐입니다.

사실 점점 더 많은 식당이 인플루언서의 촬영과 홍보 협업 요청에 가급적이면 다른 손님들이 내는 것과 같은 값을 내고 음식을 먹고 공정한 평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추세입니다. 촬영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고, 서비스로 음식이나 술을 좀 더 주기는 하겠지만, 아예 공짜 식사를 대접한다고 반드시 좋은 홍보 영상이 나오지 않더라는 걸 식당들도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겁니다. 제값을 내면 자연히 팁을 두고 얼굴 붉힐 일도 없어서 좋습니다.

제 단골식당에 왔던 인플루언서도 제가 낸 것과 똑같은 돈을 내고 코스 요리를 먹고 갔다고 했습니다. 팁도 충분히 내고 갔는지 서버들도 만족한 표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