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동조 기계’ 소셜미디어에 맞서 내 시간표 지키려면
*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2월 1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트위터는 한때 한물간 서비스 취급을 받았습니다. 과거 트위터를 통해 일상을 낱낱이 보고하며 수십만의 팔로워를 자랑하던 인플루언서들 중 적잖은 사람이 다른 소셜미디어로 옮겨갔고, 이제 특정한 취향을 가진 이들만 트위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2022년, 다시 트위터는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인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했기 때문입니다.
트위터에는 트위터만의 독특한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가장 분명한 특징은 (이제는 제한이 풀린) 140자라는 글자 수 제한입니다. 트위터는 간결한 표현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짧은 글 안에 결론을 말해야 하므로, 좀 더 쉽게 어떤 의견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뜻을 밝히게 됐습니다. 트위터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어떤 인물, 계정이든 팔로우할 수 있으며, 상대의 트윗을 나의 팔로워들에게 리트윗을 통해 알릴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트위터는 하나의 의견이 수많은 사람에게 가장 빠르게 전달되는 매체가 되었습니다. 또한, 누구나 상대의 트윗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달 수 있으며, 이 댓글 역시 수많은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분노 생산 기계? 집중력 앗아가는 ‘트인낭’?
그러나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을 이야기할 때 트위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며, 대화와 논리적 토론으로 진실을 찾고 합의를 구하는 공간이 있다면 이는 온라인 세상의 이상향이겠죠. 그러나 우리가 아는 소셜미디어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집단으로 공격하고 상대를 비방하고 경멸하는 공간이 되었으며, 또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공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 대표 격인 트위터가 비판을 피해 가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트위터를 “분노 생산 기계”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트위터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주의(attention)를 끝없이 요구하며, 이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기억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트위터는 시시각각 새로운 뉴스를 보내며 다른 그 뉴스피드의 좋아요와 리트윗, 댓글을 계속 알려주는 방식으로 우리의 주의를 앗아가는 대표적인 소셜미디어입니다.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했었죠. 선수들이 다음 경기에, 축구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며 한 말이지만, 누군가 잘못된 트윗으로 필화를 겪을 때나 트위터의 부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노장의 통찰은 ‘의문의 1승’을 올리곤 했습니다.
지난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How to do nothing; Resisting the Economy)”을 출간한 제니 오델은 12월 8일 올린 칼럼을 통해 트위터가 가진 이런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했습니다.
전문 번역: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시간 감각에 미치는 영향
트위터의 시간표를 따르게 되는 ‘동조’
오델은 한쪽이 다른 쪽의 주기를 따라가게 되는 동조(entrainment)라는 개념을 이용해 트위터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트위터에서는 새로운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분노가 빠르게 증폭되며 이런 트위터의 빠른 리듬에 따라가다 우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델은 심지어 자신이 트위터를 한창 하던 시기에 그 속에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 같았으며, 현실 시간에의 적응이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오델은 이 동조가 부르는 부정적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아침 9시부터 자유를 잃는 것이 아닙니다. 한두 시간 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기 전부터 이미 자유를 잃고 있으며, 그 전날 밤 다음 날 아침 알람을 맞출 때부터 이미 심리적으로 내일 출근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까다로운 상사가 시도때도 없이 하는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부하직원은 사실상 24시간 자유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동조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동안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사용하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동조는 권력관계를 의미하며, 우리를 급히 움직이게 하거나 기약 없이 기다리게 만듭니다.
그녀는 결국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부정적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끊은 직후,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초조함과 불만족이라는 표현에서 소셜미디어 중독의 금단 증상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 초조함과 불만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 역시 너무나 잘 알기에 같은 종류의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일상 속의 감각과 자기 신체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며 중독에서 벗어난 이의 승리감과 만족감에 관해 자신 있게 썼습니다.
동조의 부작용 최소화하려면
21세기의 첫 20년 동안 인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변화를 겪었지만, 그중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한 가지 기기를 꼽자면 단연 스마트폰일 것입니다. 2007년 첫 번째 아이폰이 발표된 이후 이 주머니 속의 인터넷은 소셜미디어라는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이 괴물은 인간이 진화를 통해 얻게 된 사회적 인간이라는 특성을 악용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2010)”,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2010)”,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2015)”, 애덤 알터의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2017)”, 프랭클린 포어의 “생각을 빼앗긴 세계(2017)” 등 이를 지적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마치 책 제목만 놓고 보면 시리즈물 같네요. 그러나 이렇게 많은 책이 나왔지만, 대세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보입니다.
결국, 오델이 한 것처럼 개인의 실천을 통한 시도가 아직은 유일한 답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다시 트위터를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는지 스크린 타임을 체크하고, 적어도 근무 시간 중에라도 소셜미디어 앱을 차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