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나를 위해 지금 현재에 충실합시다
2022년 11월 28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정신과 신체를 별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영혼이나 귀신, 또 영적인 세계와 같은 개념은 그러한 이원론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이원론을 부정하며, 우리가 나 자신에 관해 느끼는 몸과 분리된 자아라는 감각은 뇌의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환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원론에서 신체가 정신에, 또 정신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매우 신비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실제로 정신이 신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기제를 밝혀냈습니다. 가짜 약이 진짜 약처럼 효과를 나타내는 플라시보가 대표적이죠. 또 정신적 트라우마에 의해 발병률이 높아지는 수많은 질병도 그 원인과 기전(機轉)을 알게 되면서 더는 ‘신비한 현상’이 아닌 것이 됐습니다.

캐나다의 의사 게이버 메이트는 자신의 신작 “정상이라는 신화: 유해한 문화에 의한 트라우마와 질병, 그리고 치료(The Myth of Normal: Trauma, Illness, and Healing in a Toxic Culture)”에서 정신이 신체의 문제를 야기하는 다양한 예를 이야기합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있는 여성은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습니다. 어렸을 때 성적 학대를 받은 남자는 더 높은 확률로 심장병에 걸립니다. 인종차별을 자주 당한 흑인은 수명이 짧아지며, 염증 및 질병의 발병 확률도 더 높아집니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아이는 정신질환, 고혈압, 심장병, 당뇨 등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큽니다.

사진=Unsplash

메이트는 2009년, 베스트셀러가 된 책 “배고픈 유령들의 왕국 안에서(In the Realm of the Hungry Ghosts: Close Encounters with Addiction)”에서 중독이 유전자나 의지력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후 TED에서 2천만 번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 요한 하리의 “당신이 중독에 관해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잘못되었습니다”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영상에서 하리도 중독이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임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예를 듭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20%가 전쟁 중에 헤로인을 맞았던 사례를 예시로 듭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전쟁이 끝나면 미국이 마약중독자로 넘쳐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헤로인을 맞다가 집에 돌아온 병사 중 95%는 더 이상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헤로인의 대체재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 대체재란 곧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중독은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지요.

메이트는 새 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이런 트라우마를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이유 자체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답으로 우리 사회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를 가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 요소란 바로 하리가 앞서 이야기한 타인과의 연결, 소속감, 나 자신이 아닌 더 큰 목표에 매진한다는 생각 등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끝없는 경쟁으로 몰고 가는 오늘날의 사회와 소비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황금 만능주의를 문제로 지적합니다. 동시에 “직장에서의 압박, 멀티태스킹, 소셜미디어, 끝없는 뉴스, 수많은 즐길 거리”와 같은 현대 사회의 특징 탓에 우리는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타인과의 교류, 자연과의 접촉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부분에서는 갸우뚱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그가 인정하는 것처럼, 이러한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관한 답을 찾는 건 훨씬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는 적어도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지라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요한 부분에서 내가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한 적이 있을까?”

“‘맞아요’리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억누른 적은 없을까?”

이는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롱펠로의 인생 찬가가 떠오르네요.

“지금 현재에 충실하라! (Act in living pres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