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바이든 행정부 ‘산업정책’ 주도하는 상무부의 핵심 레이몬도 장관
2022년 11월 16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지난 9월 12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쓴 글입니다.

  • 로드아일랜드주 스미스필드라는 작은 마을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 아버지는 불로바(Bulova) 시계 공장에서 일했는데, 56세 때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 하버드 학부,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뒤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포드에서 수학했다. 나중에 싱글맘에 관한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로드아일랜드주 최초의 벤처캐피털 회사를 차렸다.
  • 2011년부터 주 재무장관을 지냈고, 2015년엔 로드아일랜드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주지사가 됐다.
  • 주지사 재임 시절 주요 이력은 감세, 규제 완화, 최저임금 인상, 지방대학 등록금 면제였다.
  • 2021년 3월 바이든 행정부 첫 상무장관으로 임명된다. 상원에서 찬성 84표 (반대 15표)를 받고 장관이 됐다. (공화당 상원의원 2/3 이상이 찬성했다는 뜻.)

오늘 할 이야기 주인공의 이력을 정리한 겁니다. (글 제목에 스포일러가 있지만) 이 사람이 공화당일지, 민주당일지 성향부터 맞춰보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미국 상무부의 지나 레이몬도(Gina Raimondo) 장관입니다. 지난 7월 의회를 통과한 뒤 8월 발효된 반도체산업육성법(The CHIPS and Science Act of 2022)을 이끈 장본인이죠. 법은 하원에선 243:187로, 상원에선 64:33으로 통과됐는데, 이는 공화당 하원의원 24명, 상원의원 14명이 반대 당론을 무릅쓰고 찬성표를 던졌다는 뜻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꺼내 든 강경한 산업정책과 이를 주도한 레이몬도 장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소개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월스트리트저널은 “산업정책의 귀환”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과거에는 많은 나라가 정부가 특정 산업을 주도적으로 육성하며 세제 혜택을 주거나 경쟁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해당 산업을 보호해주는 게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토대로 한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산업정책은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았죠.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이 (잠재적)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산업정책을 다시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산업정책’의 귀환, 중국을 정조준해 산업정책을 꺼내 든 미국)

사진=지난 7월 CBS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한 레이몬도 장관. 레이몬도 장관은 “미국이 반도체 칩이나 인공지능 등 현재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중국에 내주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미국 상무부는 연방정부 부처 가운데 중요성이 아주 높지는 않은 곳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미국 기업의 활동을 돕거나 특허를 관리하기도 하지만, 날씨 예보를 하는 미국 기상청도 관장하는 등 부처가 챙기는 다양한 업무가 여러 분야에 널리 퍼져 있고, 업무 대부분은 특히 미국 내에서는 전국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상무부 장관인 지나 레이몬도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이 삐그덕거리고,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첨단기술 경쟁이 심화하자 곧바로 상무부를 ‘산업정책’의 핵심 엔진으로 전환했습니다. 정책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겁니다.

레이몬도 장관은 반도체산업육성법이 초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도 두루 만났습니다. 2017년부터 2년 동안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H.R. 맥마스터는 조 로건 팟캐스트에 출연해 레이몬도 장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며 그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경쟁을 논하는 데는 민주당 공화당의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레이몬도 장관의 신념에 동의한다면서 말이죠.

초당적인 협력을 끌어내고자 분주히 움직이는 레이몬도 장관을 아마도 가장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민주당 내 진보 인사들일 겁니다. 당장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레이몬도 장관이 주도한 반도체산업육성법을 가리켜 “이미 막대한 이윤을 내는 사기업에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혜택을 주는 정책”이라고 비판했었죠. (이에 대해 레이몬도 장관은 법이 정한 요건을 지키지 못하면 기업에 제공한 보조금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조항도 있다며 비판을 일축했습니다.)

상무부는 반도체산업육성법과 지난해 민주당이 통과시킨 인프라법 등을 근거로 약 135조 원 규모의 예산을 관장하게 됐습니다. 레이몬도 장관은 특히 반도체산업육성법에 따라 투입될 약 65조 원의 예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지 설명하면서, 기업들이 정부가 제시한 요건을 채워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레이몬도 장관은 로드아일랜드주 재무장관과 주지사로 일할 때부터 특히 민주당 내 진보 진영과 견해가 달라 자주 충돌하곤 했습니다. 재무장관 때 책임지고 진행한 주 공무원 연금 제도 개혁을 레이몬도 장관은 대단한 성과로 내세우지만, 공무원 노조와 민주당 내 진보 인사들은 연금 혜택을 줄이거나 연기금을 헤지펀드에 맡긴 점 등을 문제 삼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레이몬도 장관이 빅테크 기업들과 너무 가깝다며, 상무부가 기업의 이윤을 위해 복무해선 안 된다는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레이몬도 장관은 유럽연합이 새로 제정한 테크 규제안 때문에 미국 기업이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는데, 워런 의원은 이에 “정부가 다국적 기업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 겁니다.

레이몬도 장관은 “기업의 고충을 듣고 기업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규제 부문의 문제가 있다면, 같이 해결책을 찾는 게 상무부의 역할”이라며 워런 의원의 비판을 일축했습니다.

앞서 2020년 대선에서 처음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을 지지했던 레이몬도 장관은 당시 “의료보험이든 뭐든 이것도 저것도 다 공짜로 해주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며, 워런 의원을 비롯한 진보 인사들을 비판하기도 했었죠.

반대로 특히 중국에 적대적인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레이몬도 장관의 상무부가 보통 미국의 국가 안보보다도 미국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예를 들어 상무부는 중국 소셜미디어인 틱톡(TikTok)이 미국 사이버 안보를 침해하지 않도록 관련 예방 규정을 마련하라고 권고받았지만, 1년째 규정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레이몬도 장관은 상무부가 미국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안보상의 우려 때문에 수출이나 기술 제휴를 금지한 중국 기업의 목록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고 반박합니다.

지난 2월 대만 반도체 기업 글로벌웨이퍼스(GlobalWafers Co.)가 독일에 50억 달러 규모 제조공장 설립 계획을 백지화하고 새로운 부지를 물색하고 있을 때 레이몬도 장관의 상무부는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글로벌웨이퍼스의 도리스 슈 CEO는 “원래 공장 건설 비용이 (미국의) 1/3밖에 안 되는 한국에 공장을 지으려 했는데 레이몬도 장관이 비용을 원하는 수준에서 다 맞춰 지원해주겠다고 설득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글로벌웨이퍼스는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레이몬도 장관으로서는 “중국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한국이나 대만)에 지어질 뻔했던 반도체 공장을 텍사스로 유치했는데, 이래도 내가 안보에 신경을 덜 쓴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되물을 수 있게 된 셈이죠.

워싱턴 정가에서 레이몬도 장관은 야망이 큰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상무부 장관보다 더 높은 자리를 꿈꾼다는 건 비밀이 아닙니다. 2022년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을 진두지휘하며 미국 기업의 ‘첨병’을 자처하고 있는 레이몬도 장관은 개인적으로는 노동자와 특히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열심인 모습을 유산으로 남기려 애쓰고 있습니다. 상무부는 이번 반도체산업육성법에 보조금을 받는 회사들이 다양한 배경의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포함했습니다.

2020년 대선 결과를 투표소별로 살펴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지도에서 레이몬도 장관의 고향 스미스필드를 검색해보면, 트럼프가 바이든에 1.5%P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했습니다. 레이몬도 장관이 정치적 성향에는 고향 외에 수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다만 평소에는 첨예하게 갈리는 듯한 민주당과 공화당도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중국을 견제하자.)”라는 구호 아래에서는 손을 굳게 잡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