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스포티파이가 2억 달러 주고 산 “양날의 검” 조 로건
2022년 6월 2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미국의 팟캐스트 시장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세계의 공용어인 영어로 만든 콘텐츠는 잠재적인 청취자의 풀이 넓습니다. 언어장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다 보니 다양한 주제를 다룬 양질의 콘텐츠가 있습니다. 또 미국에는 직접 차를 운전해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아서 팟캐스트 청취자가 많기도 합니다.

그런 미국 시장에서 가장 큰 팟캐스트 플랫폼은 한동안 애플(Apple)이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에 (청취자 수 기준) 미국 최대 팟캐스트 플랫폼의 주인공이 바뀝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작해 꾸준히 성장해온 스웨덴 스타트업 스포티파이(Spotify)가 주인공이었죠. (2021년 기준 스포티파이에서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은 2820만 명으로, 애플의 2800만 명을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사진=스포티파이

스포티파이의 성공은 조 로건(Joe Rogan)이라는 최고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의 영입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5월, 스포티파이는 조 로건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쇼를 샀습니다. 당시에는 1억 달러를 주고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스포티파이에 독점 공급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는데, 최근 뉴욕타임스는 로열티가 알려진 것보다 두 배 많은 2억 달러 규모였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스포티파이의 청취자를 늘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조 로건은 동시에 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기존 언론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조 로건의 화법과 인터뷰 방식은 수천만 명의 열정적인 팬을 끌어모았지만, 설화(舌禍)를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조 로건 때문에 스포티파이는 페이스북, 유튜브처럼 ‘문화전쟁’의 전장이 되었죠.

오늘은 스포티파이가 2천억 원 넘는 돈을 주고 산 “양날의 검” 조 로건과 그의 팟캐스트 쇼 “조 로건의 경험(JRE, The Joe Rogan’s Experience)”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도 함께 참고했습니다.

논란의 발단은 조 로건이 일주일에 최소한 3~4회씩 올리는, 매번 두 시간을 너끈히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팟캐스트에서 나눈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해 평소 대다수 의사와 과학자들이 사실로 합의한 것과 다른 의견을 개진해온 사람을 게스트로 불러 놓고는 구충제가 코로나19를 치료하는 데 어떤 효과가 있는지 따위의 이야기를 한참 나누거나 백신과 관련한 가짜뉴스, 음모론을 여과 없이 내보내기도 했죠. 백신 회의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해로운 콘텐츠였습니다.

포문을 연 건 가수 닐 영(Neil Young)이었습니다. 영은 스포티파이에 공개적으로 편지를 보내 “코로나19와 관련한 가짜뉴스를 계속 내보낼 생각이면, 내 음원을 플랫폼에서 당장 내려라. 조 로건과 나 가운데 한 명을 골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죠. 조니 미첼(Joni Mitchell)을 비롯해 유명 가수들이 닐 영과 뜻을 같이했습니다. 조 로건이 팟캐스트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게 계속 둘 거면 자신의 음원을 플랫폼에서 내리라고 선언하죠. 이어 스포티파이와 팟캐스트를 제작하기로 계약한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도 우려를 표하며 조 로건과 스포티파이를 비판하는 대열에 합류합니다.

그러나 조 로건과 스포티파이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조 로건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 영상은 보기에 따라 변명을 잔뜩 늘어놓은 ‘무늬만 사과’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조 로건 인스타그램 영상 갈무리.

영상 속 조 로건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라며, 앞으로는 좀 더 균형 잡힌 내용을 전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말했죠. 스포티파이도 “우리는 언론사가 아니라 플랫폼일 뿐”이라며,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츠를 검열할 권한은 스포티파이에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 플랫폼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이어 조 로건이 과거 팟캐스트에서 인종차별적인 혐오의 언어를 밥 먹듯이 사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유튜브에 남아있는 영상도 있었고, (스포티파이와 독점 계약을 체결한 뒤엔) 스포티파이에서만 들을 수 있게 옮겨둔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가수 인디아리(India.Arie)가 직접 찾아낸 사례만 보더라도 한두 번 말실수가 아니라 검둥이를 뜻하는 차별적인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조 로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에 이어 또 한 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명백히 넘은 사실이 알려지자 조 로건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런 잘못을 방치하고 묵인해 온 스포티파이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DeleteSpotify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스포티파이 불매 운동이 시작됐죠.

이번에는 스포티파이도, 조 로건도 좀 더 제대로 된 사과를 내놓습니다. 스포티파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 담긴 에피소드에는 관련 사실을 표시해두기로 하고, 가짜뉴스나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계층을 지원하는 데 1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조 로건도 인종차별을 뜻하는 혐오의 언어를 사용한 데 대해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거듭 밝히며, 스포티파이 플랫폼에서 문제가 된 에피소드들을 자발적으로 삭제했습니다.

 

사건의 개요만 보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기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벌어진 문화전쟁 또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플랫폼 스포티파이가 사실상 마지막까지 조 로건을 감쌌다는 점이 기존의 사건과 다른 점입니다. 트위터는 가짜뉴스의 온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전 계정을 여러 차례 경고한 끝에 삭제해버렸고, 페이스북도 플랫폼의 평판에 먹칠할 만한 게시물이나 계정은 가차 없이 차단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스포티파이에 조 로건은 그렇게 간단히 징계하고 지울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조 로건이 곧 팟캐스트 사업의 핵심이자 스포티파이의 미래였기 때문입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한 스포티파이의 수익은 유료 구독자가 내는 구독료와 광고 수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원은 제작자, 음반사와 수익을 나눠 가져야 하는 구조로 플랫폼의 수익이 크지 않은 시장입니다. 또 고객의 데이터를 모으기도 쉽지 않아 맞춤형 광고를 붙이기도 애매합니다. 소셜미디어나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비해 이용자가 무슨 음악을 듣는지 분석해서는 이용자의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동영상 검색 결과를 토대로 분석하는 것보다도 이용자의 프로필을 만드는 데 효과가 없죠. 이때 스포티파이는 팟캐스트에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 시장에 뛰어듭니다. 팟캐스트는 음원보다 (맞춤형) 광고를 붙이기 쉽습니다. 또 팟캐스트를 들으러 플랫폼에 온 고객들은 음원도 평균적으로 더 많이 재생했습니다. 오디오 플랫폼을 키우는 촉매제로 팟캐스트 만한 콘텐츠가 없었던 겁니다.

다만 팟캐스트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아메리카노 팟캐스트도 어느 플랫폼에서나 들을 수 있었죠. 그런데 스포티파이는 스포티파이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독점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고객을 끌어모아 데이터도 모으고 광고도 팔 수 있었죠. “조 로건의 경험”은 구독자만 1,100만 명에 이르며, 미국을 비롯한 93개국에서 스포티파이 기준 팟캐스트 청취율 1위를 자랑하는 압도적인 팟캐스트 브랜드였습니다. 이 열혈 팬들을 스포티파이 플랫폼으로 끌어올 수만 있다면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계산한 액수가 2억 달러였던 겁니다. 거래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조 로건이 스포티파이와 계약을 맺은 효과는 당장 나타났습니다. 스포티파이 이용자와 유료 구독자, 광고 매출이 모두 올랐고, 주가도 올랐죠. 그리고 마침내 ‘넘사벽’으로 보이던 애플을 미국(세계) 최대 팟캐스트 플랫폼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문제는 조 로건이 스포티파이에 마냥 복덩이일 수만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부터 우려하는 이도 있었고, 스포티파이 직원 중에도 CEO 다니엘 에크(Daniel Ek)를 비롯한 경영진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조 로건은 코미디언, UFC를 비롯한 격투기 해설가 출신의 방송인입니다. 2003년에 동료 코미디언, 격투기 선수들과 나눈 이야기를 녹음해서 올리기 시작했고, 2009년엔 유스트림(UStream)이라는 플랫폼으로 옮겨 라디오 쇼를 진행하며 쇼의 이름도 “조 로건의 경험”으로 바꿉니다. (대부분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므로, “조 로건이 만난 사람들” 정도로 옮기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그리고 2013년부터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인터뷰를 촬영한 뒤 이를 그대로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 결정이 신의 한 수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유튜브 콘텐츠가 많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도였죠. 조 로건의 인기는 급격히 높아집니다.

조 로건의 경험 한 회는 짧아도 2시간, 길면 4시간 가까운 길이입니다. 게스트와 말 그대로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원 없이 나누고는 아무런 편집 없이 고스란히 이를 내보내기에 가능한 분량이죠. 조 로건의 팬들 가운데는 압도적으로 남성 비율이 높습니다. 격투기 해설가 출신인 조 로건이 아무래도 초반에 UFC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고, 남자들만 하는 농담도 자주 나옵니다. 격투기 같은 스포츠 좋아하는 남자들이 주말에 맥주 마시면서 편하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듯 들을 수 있는 포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 운동, 식습관, 약, 의료는 물론이고, 철학, 과학, 환경 등 거의 모든 주제를 조 로건만의 방식으로 다룹니다.

눈에 띄는 특징은 두 가지인데, 인터뷰를 편집하지 않는다는 점이 첫 번째입니다. 조 로건의 팬들 가운데는 이렇게 여과 없이 모든 얘기를 다 공개하는 솔직함을 조 로건 팟캐스트의 매력으로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 즉 전문가가 권위를 앞세워 팩트체크라는 이름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치려는 듯한 엘리트 언론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죠.

또 다른 특징은 게스트로 전문가가 나올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올 때가 더 많다는 겁니다. 조 로건은 게스트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관해 비판이 나올 때마다 “나는 기자가 아니다. 다양한 사안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얘기해줄 만한 사람을 불러서 솔직하게 질문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기성 언론과는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조 로건의 경험에는 여러 번 출연했다. 2018년에는 스튜디오에서 조 로건과 함께 방송 중에 마리화나를 피웠다. 사진=“조 로건의 경험” 영상 갈무리.

문화전쟁의 측면에서 보자면, 조 로건과 조 로건의 애청자들은 대체로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을 불편해하거나 나아가 혐오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백인 남성으로 멀쩡히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들을 피부색과 성별만 가지고 잠재적인 가해자 또는 기득권층으로 몰아세우는 시류에 신물이 난 이들에게 조 로건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을 넘어 심리적인 편안함까지 느끼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조 로건이 전문가를 혐오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려고, 또 다른 의견을 들어보자는 컨셉을 온갖 주제에 다 적용하다 보니, 자연히 팟캐스트에는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이 자주 나왔습니다. UFO나 외계인을 믿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에 관한 설교를 늘어놓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예를 들어 초등학생과 교사 수십 명이 숨진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이 날조됐다고 주장하던 알렉스 존스라는 극우 성향의 음모론자도 조 로건의 경험에 단골 게스트였습니다. 알렉스 존스는 지난해 1월 의사당을 점거한 테러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 인물입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태도에서 갈라지는 문화전쟁의 골은 생각보다 매우 깊습니다. 조 로건은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와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사과한 뒤에도 계속 왕성하게 사람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팟캐스트로 올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언론이 아니라 그저 다양한 생각을 소개하기 위해 청취자를 대신해 질문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도 그대로입니다. 스포티파이도 문제가 된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나오는 경우 표시를 해뒀지만, 조 로건(과 맺은 계약)을 팟캐스트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핵심 전략으로 삼는 건 그대로입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조 로건과 스포티파이의 독점 계약은 오는 2023년 말까지입니다. 그때까지 팟캐스트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도 관건이겠지만, 조 로건과 스포티파이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는 팟캐스트 시장의 판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청취자와 여론이 조 로건과 스포티파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