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풍전등화 우크라이나
2022년 5월 27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렸던 글을 시차를 두고 소개하면서 다시 읽어보면, 여러가지 묘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불과 몇 달 전 일인데 까마득한 예전 일처럼 느껴지는 일도 있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사안에 관해 그때는 여론이 어땠는지 돌아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해서도 많은 글을 썼고, 요즘도 쓰고 있는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전쟁에 관한 글은 분명 재미로 읽기에는 무거운 주제지만, 전쟁의 경과를 처음부터 찬찬히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뉴스페퍼민트에 옮깁니다. 오늘은 소개하는 첫 번째 글은 2월 14일에 쓴 글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은 지금 당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연일 러시아를 향한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는 미국 정부와 언론이 무책임하게 공포를 조장하고 히스테리를 부린다며 우려를 일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누가 봐도 전쟁 준비로 보이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왔습니다. 13만 명의 병력이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집결했습니다. 탱크를 비롯한 중화기도 예년의 동계 훈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이 동원됐고, 아예 야전 병원을 지어놓고 혈액까지 대량 운송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럽 각국 정상들은 부랴부랴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러시아 해군은 또 해상 훈련을 핑계로 흑해에서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바닷길을 막고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미국인들에게 하루빨리 우크라이나를 떠나라고 권고했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적어도 베이징 올림픽이 폐막하는 20일까지는 침공을 자제하지 않겠냐는 세간의 예상이 얼마든지 빗나갈 수 있다며, 올림픽 기간에도 러시아군이 얼마든지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푸틴 대통령은 소련에 맞서는 군사 조약으로 시작해 지금은 사실상 러시아를 포위하고 있는 군사 동맹인 나토(NATO) 회원국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을 엄중한 도발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나토 회원국을 사실상 러시아가 선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러시아의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양강의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가 완충지대로 남기를 거부하면서 사태가 악화해 결국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는 대강의 해설은 여러 언론에서 보셨을 겁니다.

오늘 글을 준비하며 우리말로 우크라이나 상황의 배경을 잘 풀어놓은 글을 찾아봤더니, 시사저널에 동덕여대 오은경 교수가 쓴 칼럼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좀 더 자세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의 기원과 역사를 살핀 복스의 기사인터뷰, 그리고 이코노미스트의 해설 영상을 참고해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복스와 인터뷰한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의 마크 갈로티 교수의 말처럼 “군사 전문가들은 전쟁이 임박했다고 말하고, 정치·외교 전문가들은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평가가 정확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전쟁이 당장 내일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면전이 푸틴 대통령의 플랜 A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외교적인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죠. 오늘 글에서도 전쟁이 진짜 일어날지 예측하기보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연원, 배경과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였습니다. 소련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나뉘면서 하루아침에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됐죠. 미국과 러시아는 곧바로 우크라이나 비핵화를 위한 협의에 착수했고, 우크라이나는 주권과 안보를 보장받는 대가로 핵무기를 자진해서 러시아에 반납했습니다.

이때 체결한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는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리미아반도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시험대에 올랐고,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 접경지대인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무장 폭동을 러시아가 지원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돈바스 지역은 사실상 내전에 가까운 상태가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시민 1만 4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남쪽이 크리미아반도, 동쪽이 돈바스 지역. 사진=이코노미스트 영상 갈무리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초와 지금의 유럽 지도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보입니다. 나토가 처음엔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이른바 동유럽 구공산주의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더니, 이제는 구소련의 일원이었던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까지 회원국이 되면서 적대국인 러시아와 나토가 국경을 맞대는 상황이 됐습니다.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는 나토의 동진 앞에 선 러시아의 상황을 이렇게 빗대었습니다.

권투 시합에서 졌는데, 나를 때려눕힌 선수가 갑자기 우리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온 거예요. 그리고는 밤마다 샌드백을 쳐대는 거죠. 이미 경기는 졌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무섭게 그러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운동하는 것뿐이라고 해요.

물론 다분히 러시아의 관점, 아니 소련이 한창때 누리던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을 본인의 정치적 유산으로 남기고 싶은 푸틴 대통령 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뿌리가 같은 한 나라, 형제의 나라나 다름없습니다. 잘못은 러시아가 아니라 가족을 떼어 가져가려는 나토, 유럽연합, 미국이 수십 년째 해 온 겁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를 고찰한 역사 평론까지 썼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라는 주장을 담은 내용은 러시아 정부에서 영어로 번역해서 올려놓았습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던 시점의 NATO 영토.

현재 NATO 영토.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 4개국과 러시아 사이에 껴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이미 별 의미가 없을 만큼 러시아와 나토(미국)의 갈등은 한참 전부터 “서로 선을 넘어”왔습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가까운 미래에 나토 회원국이 되는 일은 없을 거라면서 러시아의 호전적인 야욕을 비판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부터 네 번째로 많은 군사 원조를 받는 나라가 됐고,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군사 정보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로선 정식 회원국만 아닐 뿐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준회원국처럼 대하고 있지 않으냐고 따질 만합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된 뒤 한동안은 친러시아 성향의 정부가 집권했고, 서방과의 교류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확장하던 가운데 치른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유권자들은 푸틴이 지원하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 대신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센코 후보를 선택합니다. 5년 뒤 선거에서는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의 대규모 경제 원조를 받는 대신 친서방 정책을 되돌리려 하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야누코비치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축출됩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계 주민이 대부분인 크리미아반도의 공용어에서 러시아어를 제외하는 등 노골적으로 러시아에서 멀어지려 하자 푸틴 대통령은 2014년 군대를 동원해 크리미아반도를 병합한 겁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 가운데 러시아계는 13%이고,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국민은 약 1/3입니다.)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6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젤렌스키는 정치 풍자 코미디언 출신으로 실제 정치는 처음이었습니다. 푸틴은 젤렌스키에 사실상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우크라이나에 반환하는 대신 러시아가 사실상 통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안을 제시했고, 젤렌스키는 이를 거부합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여론은 나토와 서유럽, 미국과 더 가깝게 지내는 쪽을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고,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군사 협력은 계속 강화되고 있었습니다.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의 군사 엘리트들은 무력 시위를 벌여서라도 러시아 주변의 영토 문제, 안보 위협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이미 대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집결시키자, 갓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안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지금이 좀처럼 손발을 맞추지 못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러시아가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는 적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4년 동안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관계는 꽤 소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미국은 팬데믹, 경제 등 어느 것 하나 좀처럼 반등하지 못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쫓기듯 도망쳐 나와야 했습니다. 여기에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과 관계를 재정립하느라 정신이 없고, 독일은 러시아에서 직접 천연가스, 석유를 공급받는 송유관을 지으면서 경제적으로 러시아와 관계가 끈끈해진 상태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신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나 러시아를 향해 같이 강경하게 말해달라고 압박했지만, 숄츠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의 어조는 끝내 달랐습니다. 게다가 2014년 크리미아반도를 합병하자 러시아 안에서 푸틴 대통령의 인기도 급격히 올라갔습니다. 특히 민주주의를 원하는 젊은 세대일수록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를 싫어하는데, 내부의 문제에 쏠린 시선을 돌리는 데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토 분쟁만큼 좋은 소재도 없죠.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무력 시위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려 할 것입니다. 전면전을 벌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가 최소 5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끔찍한 전쟁을 벌이면 아무리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려 해도 국제 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를 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는데, 러시아 경제가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독일 등 유럽연합과 얽힌 에너지 협력 관계 등을 고려하면 경제 제재는 큰 효과가 없을 거란 분석이 많습니다. 러시아는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이 크다는 건 그만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오랫동안 전쟁 위협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운명에 처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더 두려운 일은 바람이 영원히 잦아들지 않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인하지 않는 러시아가 있는 한 돈바스 지역에서 유혈 사태가 잇따르면서 발생한 수많은 사상자, 러시아의 경제 봉쇄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는 또 다른 차원의 극심한 고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릅니다. (전쟁에 대비해 군사 훈련을 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진들을 모아 소개한 애틀란틱 기사를 보면,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일상은 어떨지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언론의 편집권 독립을 위해 전 키이우 포스트 기자들이 창간한 키이우 인디펜던트라는 언론사가 있습니다. 키이우 인디펜던트의 정치 에디터 올렉세이 소코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요. 러시아랑 국경을 맞대고 산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러시아의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다는 거니까요.

사실 처음에는 글 제목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까?”라고 썼다가 수많은 전문가도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낚시성 글을 쓰지 말자는 생각에 지금 제목으로 바꿨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은 주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 휩쓸려 주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현대사와도 겹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디 상황이 악화해 전쟁으로 치닫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