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많은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구분을 흐려 놓았습니다. 2020년 출간된
“아무것도 하지마(Do Nothing)”의 저자 셀레스테 헤들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IT 기술과 만나 사람들이 점점 더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고, 코로나는 그런 경향을 더 악화시켰다고 이야기합니다. 일과 삶의 구분이 흐려지면서 휴식과 여가도 점점 더 일과 구분이 어려워 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애틀란틱의 문화 담당 기자 셜리 리는 여가가 어떻게 일이 되는지를 몇몇 사람들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습니다.
셜리 리는 NBC의 유명 쇼 새터데이나잇라이브(SNL)의 팬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들은 매회 출연진이 화면에 몇 분 몇 초씩 등장했는지를 액셀에 정리할 저도로 열심히 쇼를 분석하는 팬들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연예 프로그램 배츨러(The Bachelor)를 분석하는 일을 아예 주업으로 삼은 이들도 생겼습니다.
셜리 리가 쓴 기사의 부제는 “관심 경제가 취미를 데이터 분석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란 우리가 잘 아는 소셜미디어를 말합니다. 누구나 타인의 관심을 바라며,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을 주는 대가로 타인의 관심을 원합니다. IT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 현실 세계에서 접하던 것에 비해 인터넷 세계에서 훨씬 더 많은 이들과 접촉할 수 있게 만들었고, 덕분에 관심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모바일을 통해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이 관심 경제에 쓰는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사진=Unsplash
처음 저 부제를 읽었을 때는 관심 경제가 어떻게 취미를 데이터 분석으로 만들었는지 좀처럼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영화를 보는 저의 취미가 정확히 저 말을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이를 기록하는 앱으로 가서 해당 영화의 별점을 매깁니다. 이 앱은 제가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에 대한 저의 평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인기 있는 영화를 제가 얼마나 좋아할지, 그리고 제가 보지 않은 예전의 영화들 역시 제가 얼마나 좋아할지를 알려줍니다. 제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며, 어떤 배우와 감독을 좋아하는지 알려주며, 제가 평가한 영화를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알려줍니다. 곧 제 취미와 데이터 분석이 하나로 결합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사의 제목인 여가가 일이 된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한테는 봐야 할 책과 영화의 목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 이번 생에 이들을 다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점점 더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목록을 하나씩 지워갈 때 저는 제가 여가를 휴식을 취했다기 보다는 마치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렇게 여가와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은 분명 더 큰 현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몇 주 전 저는 직업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곧 일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말하며,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일과 자아실현으로써의 일이 있습니다. 후자의 태도로 살아간다면, 여가 또한 일의 연장이 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헤들리 역시 자신의 책에서 이런 흐름의 시작을 마틴 루터와 16세기 종교 개혁을 통해 설명합니다. 바로 칼뱅이 말한 소명으로서의 직업윤리입니다. 하지만 칼 뱅 이전에도 하루 종일 자신의 일을 생각한 사람들이 없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을 자신과 분리시키는 경향이 더 늦게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요. 물론 헤들리는 서두에 말한 것처럼 효율과 자기계발에 대한 현대인의 집착이 휴식을 휴식으로 두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상당히 그럴듯한 말을 합니다.
저도 찔리는 부분이 또 있습니다. 시험 기간이거나 아니면 어떤 바쁜 일이 있을때 영화나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고, 그래서 그럴때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계속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여가를 여가로 즐기지 못하고 일처럼 되어버린 지금일지도 모릅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어떤 불필요한, 배부른 생각으로 여기는 약간의 자만심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헤들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휴식이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많은 연구가 있으니 저도 어느 정도는 자신을 돌아볼 필요를 느낍니다.
사실 저의 휴식에 대한 부정에는, 적어도 잠을 자는 동안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잠을 자는 동안 자신이 가진 문제를 풀었던 여러 선배들을 생각하며 꿈 속에서도 일을 추구하곤 했다는 점에서 잠이야말로 완전한 휴식이라 말하는 것이 당당하지는 못하네요. 그래도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언젠가는 이런 부담감을 다 벗어버리고 아주아주 긴 시간을, 아마도 영원히 긴 시간 동안 잠들게 될것임은 분명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