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트로픽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누트로픽스는 뇌의 기능을 개선한다는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들을 말합니다. 인간의 신체가 화학물질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뇌 역시 화학 물질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은 당연해 보입니다.
브래들리 쿠퍼가 주연한 영화 리미트리스(Limitless)는 머리를 좋게 만드는 약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지를 영화의 소재로 다루었습니다. 저도 무척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똑똑하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볼 영화지요.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똑똑해진 주인공이 단순히 머리만 좋아진 게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제대로 처리하며, 그 결과 외모까지 깔끔하고 멋있어진다는 점입니다. 곧 좋은 머리란 단순히 지적 능력이 높아지는 것을 넘어 삶에 의욕을 가지게 만든다고 이 영화는 말하는 것이지요. (천재와 자살의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는 그럼 어떻게 된 걸까요?)

사진=영화 리미트리스 예고편 갈무리.
누트로픽스도 지적 능력, 곧 인지 능력의 개선 외에도 의욕, 곧 기분의 영역을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 저는 ‘시작이 전부다’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중요한 비결은 일단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누트로픽스는 이를 위해 환경적 요인, 곧 화학물질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하고 싶은 기분까지 들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 주장도 어쩌면 매우 당연해 보입니다. 누트로픽스의 대표적인 약물은 카페인입니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돌지 않는다고 말하는 수많은 직장인은 이미 누트로픽스를 생활에 적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에서는 처방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몇 가지 약물들, 곧 어떤 환자들에게는 인지 기능의 향상을 가져오는 것이 의학적으로 확인되었지만, 정상인에게 장기간 복용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그런 약물들이 있습니다.
누트로픽스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고 – 당연하게도 – 실리콘 밸리의 투자자들도 여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일반인에게 권장되는 의학적으로 확실한 제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개념을 오늘 소개하는 이유는 이에 관한 흥미로운 글을 하나 보았기 때문입니다.
미디엄의 인기 블로그인 베터휴먼에 실린 누트로픽 초보자 가이드에는 이 기분과 생산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곧, 누트로픽스를 통해 우리의 능력이 어떻게 바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어떤 일을 하기에 적절한 기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여키스-도슨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이 법칙은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이 주장한 법칙으로, 인간의 각성 상태에 따라 적절한 과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각성(arousal)이란 흥분의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흥분의 정도에 따라 적합한 과제를 다섯 단계로 분류합니다.
- 글쓰기와 같은 복잡한 정신적 작업
- 단순 서류 작업과 같은 단순한 정신적 작업
- 전화를 거는 사회적 작업, 건물 내부를 조사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육체적 요소가 있는 정신적 작업
- 운동과 같은 정신적 요소가 큰 육체적 작업, 춤과 같은 사회적-육체적 작업
- 달리기나 헬스와 같은 순수한 육체적 작업
여기서 흥분 정도가 높아질수록 더 높은 단계의 작업 효율이 올라갑니다. 즉 높은 흥분 상태에서 글쓰기는 쉽지 않지만, 낮은 흥분상태에서는 육체적 작업을 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각 과제에 맞는 최적의 흥분 정도와 앞서 이야기한 누트로픽스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바로 다양한 기능의 누트로픽들, 곧 카페인과 같은 각성제와 L-테아닌 같은 안정제, 그리고 크레아틴, 로디올라 등의 물질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과제에 맞는 최적의 각성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트로픽은 앞부분에 이야기한 것처럼 아직 의학계의 전면적인 지지를 얻는 분야는 아닙니다. 카페인 외의 물질들이 카페인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기사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화학물질보다 생산성 향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미디엄의 글에도 나오듯 충분한 수면과 충분한 운동, 그리고 이를 위한 좀 더 구체적인 방법들이지요. 물론 언젠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끊임없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로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 나올지 모릅니다. 그때쯤이면 머리가 좋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도 더 잘 알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