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데이터와 체감 경기의 동상이몽 경제
2022년 4월 13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뉴스에서는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데, 내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팍팍하게 느껴진 적 많으실 겁니다. (반대로 여러 지표에서 적신호가 켜졌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나는 운이 좋아서 사정이 괜찮을 수도 있겠죠.) 이런 일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도 여러 차례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지난해 12월 1일에 프리미엄 콘텐츠에 쓴 글을 소개합니다.

여러 경제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왔던 최악의 침체기를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전혀 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이 둔감한 걸까요? 아니면 데이터가 이른바 ‘체감 경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걸까요? 오늘은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서 다룬 거시 데이터와 체감 경기의 간극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드리기에 앞서 관련 기사는 보름 전에 나왔고, 그 사이에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는 점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며, 백신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서둘러 맞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백신 회의론자가 워낙 많은 미국은 여전히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이 여전히 6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8일 현재는 66%가 백신을 맞았습니다.) 오미크론 변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모든 경제 지표가 곤두박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경제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을 미국의 현재 경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 요즘입니다. 주요 지표만 보면 분명 그렇습니다. 팬데믹 초기 한때 20% 가까이 치솟았던 실업률은 지난달 4.6%까지 낮아졌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되며 사라졌던 일자리의 80% 정도가 다시 생겨났습니다.

지난 10월 미국인이 가게나 식당 등에서 지출한 돈은 6억 3,800만 달러로, 직전 9월보다 1.7%,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는 21%나 높았습니다. 월마트나 홈디포 등 주요 대형 소매업체들은 예상을 웃도는 3/4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업체들은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시작되는 연말 대목을 앞두고 물건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돈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정부가 시중에 돈을 무제한에 가깝게 푼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의 급여가 올라 가처분소득도 늘어나 지출도 늘고 돈이 돌고 있는 셈입니다.

올해 연말 대목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연말보다 2019년 연말에 더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사진=뉴욕 메이시 백화점.

그런데 사람들은 겉보기에 무난하게 굴러가는 경제를 아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의 경제 전망은 지난 10년 사이 가장 비관적인 수준입니다. 경제가 완전히 멈춰버리고, 실업률이 치솟던 지난해 봄 팬데믹 초기보다 더 비관적입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데이터와 체감 경기의 극명한 온도 차이를 분석하기에 앞서 여기에 정치적인 요인이 분명히 작용했을 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에 사는 만큼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아 경제도 더 비관적으로 볼 것이고, 반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에 훨씬 더 관대할 겁니다. 그러나 이 점을 감안해도 최근 들어 경제를 비관하는 시선은 지지 정당이나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데이터와 체감 경기 사이의 괴리는 왜 발생하게 된 걸까요? 경제 지표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니, 왜 체감 경기가 경제 지표와 다른지를 살펴봅시다. 뉴욕타임스 데일리에 출연한 벤 캐슬만 기자는 두 가지 이유를 꼽았습니다. 첫째는 인플레이션, 둘째는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부족’ 현상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 그림자 인플레이션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연방준비제도가 돈을 이렇게 많이 푼 만큼 불가피한 일입니다. 실제로 지난 10월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6% 올랐습니다. 인플레이션을 단지 100달러 하던 물건이 106달러가 된 거로 생각하면 체감이 쉽지 않습니다. 대신 제 친한 친구 한 명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제 친구 A는 미국에 1년 동안 연수를 왔습니다. 원래는 2020년 여름에 미국에 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이 6개월 밀려 지난해 겨울에 연수를 시작했고, 얼마 전에 귀국 전 마지막 여행을 한다며 제가 사는 뉴욕에 들러서 가족이 함께 만났습니다. 친구는 미국에 오면서 중고차를 한 대 샀고, 가족과 함께 1년 동안 미국 곳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1년 동안 달린 주행 거리가 5만 5천km가 넘는다니 말 다 했죠. 그런데 중고찻값은 그사이에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본의 아니게 인플레이션 덕에 ‘차테크’를 하게 된 친구는 5만km 넘게 탄 차를 살 때보다 더 비싼 값에 되팔고 돌아가게 됐습니다.

잘 됐다며 한턱내라는 제 말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긴 좋은데, 기름값이 진짜 올라도 너무 올랐어. 1년 전만 해도 갤런에 2달러도 안 했는데, 지금은 비싼 데는 갤런에 4달러 가까이 하니까 말이야.”

1갤런은 약 3.785입니다. 리터당 원으로 환산하면 코로나가 한창일 때 수요가 급감해 리터당 600원 정도까지 내렸던 휘발윳값이 지금은 리터당 비싼 주는 1,400원에 육박하게 된 셈입니다. 미국에 살면 한국보다 훨씬 더 운전을 많이 하게 됩니다. 기름값은 다른 어떤 경제지표보다 피부에 와닿는 바로미터입니다. “6% 인플레이션”이라는 기사가 달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기름값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밖에도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 가격도 빠르게 올랐습니다. 구인난과 같은 요인이 더해져 임금도 오르긴 했습니다. 그러나 물가가 이렇게 가파르게 상승할 때는 사람들이 급여가 올라도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데이터와 정반대 체감 경기를 만들어낸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요인은 다양한 ‘부족’ 현상입니다. 미국 어딜 가나 구인난이 심각합니다. “We’re hiring now”라는 공고를 내 걸지 않은 가게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위기까지 더해져 가게 진열대에 물건이 듬성듬성 비어있거나 식당이나 카페를 가면 직원이 부족해 서비스가 어쩔 수 없이 형편없어진 경우가 허다해졌습니다. (가격은 오르지 않지만, 서비스나 제품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을 그림자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이 또한 팬데믹으로 사라졌던 일자리의 80%가 회복됐다거나 실업률이 4.6%로 팬데믹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는 데이터 기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대표적인 ‘일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맞벌이 부부를 생각해봅시다. 어린이집 등에서 일하는 보육교사는 사회에 꼭 필요한 인력이지만, 대표적인 저임금 직종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프라 법안에서 보육비 지원에 상당한 예산을 책정한 것도 그 때문이죠. 그러나 법은 멀고 팬데믹은 가까워 수많은 보육 시설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면 맞벌이 부부 가운데 한 명은 일을 덜 하거나 아예 못 하게 되고, 이는 가계 수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간신히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서 아이를 보내려고 보니, 이번에는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게 나을 정도죠.

이번엔 식당 종업원이 되어 봅시다. 음식값은 올랐는데, 식당에 가면 재료도 어딘가 하나씩 빠진 음식이 주문한 지 한참 지나야 나오곤 합니다. 그림자 인플레이션을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상황을 이해해주는 공감 능력 뛰어난 소비자도 있겠지만, 식당 종업원에게 짜증을 내고 막 대하는 소비자도 분명 있을 겁니다. 게다가 뉴욕 등 주요 도시는 코로나19 이후 식당 밖에도 테이블을 차리고 손님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손님은 몰려오는데, 일손은 부족하니 생각만 해도 힘에 부칩니다. 게다가 실내에서 음식을 먹을 거면 백신 접종 기록을 보여달라고 해야 하는데, 가끔 백신을 안 맞았거나 접종 카드를 안 가져왔다고 우기며 난동을 피우는 손님도 있습니다. 몇 배로 힘들어진 직업을 시급 좀 올려준다고 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서 전보다 훨씬 더 인상된 급여를 제시해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식당들은 하소연합니다.

데이터가 이렇게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데 왜 아직도 걱정이냐고 사람들을 다그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피부에 와닿는 문제를 바탕으로 걱정하는 점까지 다 담아내지 못하는 데이터를 탓할 수도 없겠죠.

이론적으로는 중앙은행(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기준 금리를 높이면 돈을 빌리는 비용이 많이 들어 결과적으로 돈이 덜 돌게 되고 물가도 안정될 수 있죠. 그러나 이는 동시에 여전히 회복 중인 미국 경제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 연준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도대체 언제 끝나나.”

카톡방마다 저 말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벌써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등장한 지 만 2년이 다 돼 갑니다. ‘위드 코로나’가 생활 속 방역 차원에 그치지 않고, 경제에도 기본 바탕이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요원해질지 모릅니다. 살펴봤듯이 인플레이션은 다분히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 등 심리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습니다. 코로나19로 불거진 온갖 부족 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그림자 인플레이션도 지속할 테고, 이 점이 반영돼 물가가 오르고 임금이 덩달아 오르는 되먹임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벌써 2년이 다 돼 가는 팬데믹에서 지겨워진 말이기는 하지만, 특히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인 만큼 “방역이 곧 경제”라는 말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