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이번에는 정말 독립할까?
2017년 9월 26일  |  By:   |  세계  |  No Comment

“카탈루냐가 공화국 형태의 독립국가가 되는 데 찬성하십니까? (Voleu que Catalunya sigui un estat independent en forma de república?)”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정부는 다음 달 1일 위의 질문이 담긴 주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3년 전 법적 구속력 없이 주민들의 의사만 확인했던 자체 투표와 달리 이번에는 투표 결과 과반이 독립에 찬성하면 48시간 이내에 독립국의 출범을 선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주민투표를 스페인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행위로 규정하고, 카탈루냐 정부 주요 인사를 체포하고 투표용지를 대거 압수하는 등 초강수를 뒀습니다. 양측이 물러서지 않고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주민들은 바르셀로나 시청을 비롯한 주요 도심에 모여 주민투표를 가로막는 스페인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또 앞서 스페인 중앙정부 경찰인 과르디아 시빌이 카탈루냐 주 정부 청사를 급습해 카탈루냐 주 정부 공무원 14명을 연행하고 인쇄해놓은 투표용지 1,000만여 장과 선거 벽보를 비롯한 인쇄물 150만 장을 압수해 간 데 맞서 새로 인쇄한 투표용지 100만 장을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카탈루냐의 미래를 카탈루냐 사람들의 손으로 직접 결정하자는 구호가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며 경찰 수천 명을 언제든 투입할 수 있도록 대기 조치했다고 밝혔고, 주 정부의 돈줄을 옥죄는 등 투표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스페인 헌법재판소도 주민투표를 집행하는 카탈루냐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24명에게 주민투표를 철회하지 않으면 매일 6천~1만2천 유로의 벌금을 물린다고 밝혔습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10월 1일 주민투표는 스페인 헌법을 거스르는 불법 행위로 스페인 정부는 투표 자체가 진행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혀 왔습니다. 이미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카탈루냐 주의회가 발의해 통과시킨 주민투표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라호이 총리는 지난 주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잣대로 보더라도 주민투표는 저지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라며 “(분리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는 없을 것이고, 이는 스페인 모든 국민이 아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스페인 정부는 민주적인 정부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주민투표 계획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스페인 중앙 경찰이 카탈루냐 지방 경찰의 사법권을 정지하고 중앙 정부가 카탈루냐 치안을 직접 장악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주말 내내 진실 공방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경찰청의 상위 부서인 스페인 내무부는 단지 중앙 경찰과 지방 경찰 사이의 공조를 유지하고 필요할 때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체계를 점검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요 정당 사이에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스페인 사회당의 페드로 산체스 당수는 카탈루냐 주 정부에 주민투표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지방 정부가 이런 식으로 성급하게 독립을 추진하는 건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뿐입니다. 푸지데몬 수반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주민투표 계획을 철회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긴축정책 반대를 중심으로 한 정당 포데모스(Podemos)는 반대로 사회당에 라호이 총리의 재신임을 묻는 조기 총선을 실시하고 카탈루냐 독립 문제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정부가 협상할 수 있게 하자고 거듭 제안했습니다. 정권 교체를 통해 판을 새로 짜겠다는 계획입니다.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당수는 특히 스페인 중앙 정부의 대응이 너무 미숙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 정부가 중심이 되어 스페인이란 국가를 이루는 국민과 모든 지역 공동체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는 형식으로 카탈루냐 독립을 묻는 투표를 진행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짓밟고 있는 스페인 중앙정부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독립이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던 곳에서도 이런 식의 중앙정부는 옳지 않다며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카탈루냐 주민은 독립 찬반을 놓고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두 달 전 여론조사에서는 독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49.4%, 찬성하는 의견이 41.1%였습니다. 하지만 750만 주민의 대다수는 주민투표를 치르는 것 자체에는 찬성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엘파이스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카탈루냐 주민의 82%는 상호 합의한 합법적인 주민투표를 하는 데 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카탈루냐는 과거 자치권을 가진 공국이었다가 현재는 스페인의 지방 정부로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스페인 북동부 지방의 32,108km2에 이르는 면적에 약 752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카탈루냐 사람들이 스스로 카탈루냐의 자치와 독립 여부를 정할 수 있는 도덕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권한이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먼저 경제적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축에 속하는 카탈루냐 지방은 다른 곳보다 중앙 정부에 훨씬 더 내고 중앙 정부로부터 훨씬 덜 받았습니다. 카탈루냐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큰 불만입니다.

지난 몇 년간 스페인이 경제 위기를 겪는 와중에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카탈루냐 정부는 2006년 높은 자치권을 갖는 자치정부 안을 제정해 스페인 중앙 정부로부터 승인도 받았지만, 2010년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자치정부 안에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자치정부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중앙 정부와 마드리드를 향한 카탈루냐 사람들의 반감은 이때부터 다시 급등했습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갑자기 제안해 속전속결로 밀어붙인 사안은 아닙니다. 푸지데몬 수반을 중심으로 한 연정이 이끄는 카탈루냐 주의회는 1년 넘게 독립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밟아 왔습니다. 지난 6월 푸지데몬 수반은 10월 중에 카탈루냐 주민들에게 독립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주민투표에 부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달 주의회는 열띤 토론 끝에 10월 1일을 투표일로 정하고, 이번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독립에 찬성하는 답변이 절반을 넘으면 48시간 이내에 독립 국가를 선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라호이 총리와 스페인 중앙 정부로서는 멀쩡한 나라가 쪼개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선 정부는 1978년 민주화 이후 제정한 헌법에는 스스로 지방 정부가 자치나 분리독립을 결정할 수 있는 조문이 전혀 없으며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카탈루냐 주 정부가 발의한 주민투표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에는 3년 전 구속력 없이 카탈루냐 주민의 독립 찬반 여론을 가늠해보고자 실시했던 주민투표를 진두지휘한 아르투르 마스 전 카탈루냐 정부 수반에 2년간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 주 정부에 주어진 기본적인 자율권마저 빼앗아가려 한다며 사실상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4만여 명이 거리에 나서 중앙 정부를 규탄하자 라호이 총리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 법을 지키고 규정을 준수하라.”며 카탈루냐 주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여전히 투표를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카탈루냐 주 정부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투표를 막겠다는 스페인 중앙정부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헌법 155조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모든 권한을 몰수하고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 조항은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지만, 중앙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표를 막을 수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했다가는 고조된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독립을 갈망하는 여론만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마드리드가 속한 수도권을 일컫는 카스티야와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는 스페인이라는 국가 안에서 활발히 교류하며 공존해온 두 지역입니다. 최근 들어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이 표출되고 긴장이 고조되긴 했지만, 원래부터 민족이 다르거나 생활양식과 문화가 판이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를 겁니다. 또한, 독재자 프랑코가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선포한 정치 지도자를 사형에 처하고 카탈루냐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려 했던 어두운 과거는 카탈루냐 독립 요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즉, 가족 중에 누구는 마드리드, 다른 누구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카탈루냐 독립 투표가 벌어져 찬성이 과반으로 나오면 당장 이런 사람들은 졸지에 글로벌한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겁니다. 카탈루냐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마드리드 시민들은 대체로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멀쩡한 나라를, 문화적으로 이미 하나로 묶여있는 공동체와 가족을 둘로 쪼개는 것이 마뜩잖은 겁니다.

“저는 마드리드 출신일 수도, 카탈루냐 출신일 수도, 바스크 출신일 수도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 원래는 남부 안달루시아 출신인 저희 조상이 스페인 전역으로 흩어졌고, 그 가운데 저희 부모님은 여기에 터를 잡고 저를 여기서 낳았으니 제가 마드리드 출신이 된 거죠. 제 사촌만 해도 바르셀로나에서 나고 자랐어요. 카탈루냐어를 하고 스스로 카탈루냐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한 가족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마드리드에 사는 아나 루케 시예로 씨의 말입니다. 마드리드에서는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를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처사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카탈루냐 안에서 독립 여부를 둘러싼 찬반 여론은 팽팽히 갈려 있지만, 주민투표 자체는 치러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입니다. 마드리드를 비롯해 카탈루냐 외의 스페인 국민은 카탈루냐의 행보에서 분노와 당혹감,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프랑코 독재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 이후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왕성한 문화 재건기에 영화감독이 된 페르난도 콜로모 감독은 카탈루냐 사람들의 자치권은 보장돼야 한다면서도 절차상 문제가 있는 이번 주민투표에는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주민투표 자체는 할 수 있다고 봐요. 다만 주민투표 결과에 영향을 받을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고 모든 진영이 과정에 참여해 제대로 준비를 한 뒤 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판도라의 상자를 일단 열어보고 보자는 식이에요. 끔찍한 결과가 날 수도 있어요.”

프랑코 독재 정권의 끔찍한 기억이 아직 생생한 스페인에서 민주주의 가치가 침해된다, 그것도 특정 지역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며 자기주장을 편다고 인식되는 순간 거대한 반발을 일으킬 수 있는 이슈입니다.

좌파 정당과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중앙 정부도 카탈루냐 정부도 모두 우파 정당이 집권한 상황에서 우파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로 멋대로 정의하고 결사 항전처럼 몰아가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라호이 총리와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이 모두 국가적 이익보다 개인적인, 혹은 정치적 셈법을 앞세워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실제로 독립을 둘러싼 찬반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경제 회복과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긴축정책을 둘러싼 토론 등 다른 중요한 이슈들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났습니다. 좌파들은 라호이 총리는 물론 푸지데몬 수반 역시 세상을 우리 편과 적으로만 나누는 흑백 논리에 갇혀 있다며 이런 태도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투표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TV와 신문 지상에서 비장하게 상황을 다루는 것과 달리 마드리드 사람들의 일상은 카탈루냐 주민투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스페인의 모든 문제가 수도 마드리드와 카스티야 기득권의 권위주의와 오만함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주장이나 잘 사는 카탈루냐의 돈으로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운영하면서 카탈루냐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데는 인색했다는 주장에 대해 마드리드 시민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카탈루냐 독립에 관한 문제가 스페인 언론을 장식할 때마다 카탈루냐를 제외한 스페인 전역에서는 카탈루냐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매 운동이나 카탈루냐 방문하지 않기 캠페인이 눈에 띄는 효과를 내는 건 아닙니다.

이미 정서적으로 같은 나라, 같은 국민으로 굳어진 카탈루냐가 독립 국가를 선포하는 상황은 마드리드는 물론 스페인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도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한편, 카탈루냐 독립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아직 반이민 기치를 내건 극우 정당이 인기를 끌지 못한 스페인에서 극우 정치 운동의 불씨를 지필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가디언)

참고 기사 1: Catalan campaigners hand out a million referendum ballots

참고 기사 2: Why do some Catalans want independence and what is Spain’s view?

참고 기사 3: The view from Madrid: anger and sadness as Catalans prepare for v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