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햇살’이 아니라 ‘먹구름’이라도 괜찮아
2017년 9월 18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저는 스물네 살 되던 해,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에 룸메이트와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엌 창밖으로 교회가 보이는 작은 아파트였죠. 재택근무를 할 때면 교회 부속 유치원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노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요가 바지를 입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등원시키는 모습도 볼 수 있었죠. 이 아파트에서 보낸 10년의 세월을 거의 싱글로 보낸 저는 언젠가 나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어느새 저는 딸 아말리아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마이애미에서 아말리아를 낳은 후 2년간 저는 전업주부로 지냈지만, 곧 뉴욕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두고 출근할 생각에 걱정도 됐지만, 아침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오랜 꿈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기대도 컸죠.

요즘 맨해튼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입학시키기란 대학 입시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설을 둘러보고, 수업을 참관하고, 원서를 쓰고, 플레이데이트에 부모 면접까지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입학이 결정되는 시스템이죠.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습니다.

남편과 여러 유치원을 둘러본 결과, 운영 방식이 다들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은 대부분 물과 모래, 나뭇잎을 가지고 어지르며 노는 “감각 놀이 공간”, 공주 의상과 해적 의상을 입고 놀 수 있는 “상상 놀이 공간”, 미술 활동을 하고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벽에는 원생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꿈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이 그림들을 보세요. 아이들 이름이 쓰여 있지 않죠. 아이들이 서로 비교하거나, 부모님들이 서로 비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지망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시설 투어 중 자랑스레 꺼낸 말이었습니다.

이런 정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아이들은 어차피 누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서로 알고 있습니다. 서너 살 먹은 아이들이 과연 누가 그림에 대단한 재능을 가졌는지 알아내려고 할까요? 부모들이 벽에 걸린 아이들 그림을 비교할 정도로 경쟁적이라면 그런 부모들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죠.

다음으로 원장 선생님이 보여주신 것은 역할 분담 차트였습니다. 줄반장과 냅킨 당번 등을 정해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역시나 모든 유치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죠. “이건 다른 곳에서 못 보셨을 거예요.” 원장 선생님이 자랑스럽게 내보인 것은 역할 분담 차트에 적힌 “우리반 햇살(Class sunshine)”이라는 역할이었습니다.

“햇살의 역할이 뭔가요?” 내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만약 급우 맥스가 오늘 기분이 우울해 보인다, 그러면 ‘햇살’인 친구가 맥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맥스, 기분이 안 좋니? 안아 줄까?’라고 물어보는 거죠.”

함께 시설 투어를 하던 부모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죠. 왜 세 살 난 내 딸이 맥스의 기분을 맞춰주고 기분 장애를 해소해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반 햇살”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평생을 보낸 제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사들을 기쁘게 하려고 좋은 점수를 받았고, 주문을 잘못 받은 웨이터의 기분을 생각해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기꺼이 먹었으며, 길을 가다 부딪히면 상대가 화분이라도 사과를 하는 인간으로 살아왔죠. 우리 사회는 이미 여성에게 “햇살” 같은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말리아가 “우리반 먹구름”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엄마가 되면 내가 더 유하고 부드러운 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연말에 크리스마스 캐롤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사람이 되었지요. 동시에 “로 앤 오더(Law and Order)” 시리즈를 예전처럼 즐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극 중 피해자를 보면서 ‘저 사람도 누군가의 자식인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의 존재가 나를 더 사납고 용감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결국 학급마다 “햇살” 역할을 정하는 유치원에 아말리아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른 유치원에 아이를 보낸 후 처음 학부모-교사 미팅 자리에서 선생님은 “아이가 아주 기운이 넘쳐요!”라고 말씀하셨죠. “어휴, 말도 마세요!”라는 제 대답에 선생님은 “아뇨, 어머님, 그게 좋은 거예요. 여자애들은 어쩐 일인지 중학교쯤 가면 다들 그런 활기를 잃어버리더라고요. 그걸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저희 일이에요.”라고 말씀하셨죠.

세월이 흘러 아말리아는 올가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때로는 딸아이에게 “우리반 햇살” 같은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싶을 때가 있죠. 우울한 맥스의 기분을 내가 풀어줘야 한다는 책임감까지는 느끼지는 않더라도, 엄마인 나의 기분도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교실에서는 선생님 마음에 드는 학생이 되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두 살이었을 때 했던 결심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때에 빛을 발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겠다는 결심을 말이죠.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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