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 (1)
2017년 9월 12일  |  By:   |  경제, 세계  |  3 Comments

30대 후반의 뉴요커 비아트리스 씨는 점심을 먹으며 최근 고민 중인 두 가지 사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별장을 어느 동네에 구입할지, 그리고 아이를 어느 사립학교에 보낼지에 대해 남편과 의논 중이라고 말했죠. 이야기 끝에 그녀의 고백도 이어졌습니다. 새 옷을 사면 보모가 볼까 봐 가격표를 바로 떼어 버린다고요. 비아트리스 씨가 고급 제과점에서 사 온 빵에 붙은 가격표까지 바로 떼어버리는 것은 라틴계 이민자인 보모와 자신 간의 경제적 불평등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비아트리스 부부의 연봉은 3억 원에 가깝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그녀는 6달러짜리 빵을 사 먹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불경스럽다”고 표현합니다. 최근 만난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역시 부유한 고객들이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비싼 가구를 들이면서도 직원이나 가정부가 보지 못하도록 가격표를 꼭 떼어달라고 부탁한다고요.

이들을 만난 것은 부유층의 소비 행태에 관한 연구의 일환입니다. 저는 이 연구를 위해 자녀를 둔 부유층 5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이들은 금융 관련 업계에 종사하거나, 수십억에 달하는 자산을 상속받았습니다. 모두가 소득이나 자산, 또는 두 가지 모두에서 상위 1~2%에 드는 사람들이죠. 경제적인 배경은 다양하지만 약 80%는 백인입니다. 이들이 익명을 요구하기도 했고, 제 연구의 일부이기도 한 만큼,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도 모두 가명입니다.

흔히 우리는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자 베블렌이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을 들고나온 지도 어언 100년, 부유층은 늘 적극적으로 부를 드러내려는 사람들로 그려졌습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은 그런 부자의 전형입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부자들은 모두 자신을 부자로 정의하는 데 대단히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죠. 자신을 열심히 일하고 신중하게 소비하는 “보통 사람들”로 소개하면서, 과시적이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며 뻔뻔한 부자의 전형과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 부유한 뉴요커들이 자신을 “보통 사람”으로 묘사하며 “부의 낙인”을 피하려는 현상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들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미안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행동은 미국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가려지고 정당화되며 유지되는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사회적 계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부유층만의 특성이 아닙니다. 미국 사회 전체의 규범에 가깝죠. 그리고 이런 규범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계급이 중요하지 않고, 중요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자들 개개인의 행동(열심히 일하는지, 합리적으로 소비하는지, 기부는 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부유층에 대한 평가를 하는 분위기 역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덮어버리죠.

가격표를 가린다고 특권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모가 고급 빵의 가격을 모른다고 해서 계급 간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까요? 가격표를 가리는 행위는 부유층이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더는 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 나아가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 것, 그러므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죠.

인터뷰를 하며 알게 된 것은 부유층이 아예 돈이라는 주제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업주부인 한 여성에게 가족의 자산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아무도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 건 ‘당신은 자위를 하시나요?’와 다름없는 차원의 질문이에요.”라고 말했죠.

남편과 함께 금융 업계에서 번 돈으로 500억 원 이상의 자산을 구축하고, 100억 원짜리 주택에 사는 한 여성도 “우리 부부가 얼마나 돈을 쓰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제가 구체적인 숫자를 알려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인터뷰가 끝난 후 연락을 해와 익명성이 얼마나 보장되는지 거듭 확인했습니다. 남편이 이런 정보를 남에게 알렸다는 사실을 알면 엄청나게 화를 낼 테니 인터뷰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하겠다는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맨해튼에 위치한 40억 원짜리 펜트하우스에 사는 한 부부는 우편물에 “PH(펜트하우스)”라고 주소가 찍히는 것이 민망해서 “PH” 대신 층수를 표시해달라고 우체국에 특별히 부탁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또한 자신에 대해 말할 때 “부유한”, “상류층”과 같은 단어 대신 “형편이 좋은”, “운이 좋은” 등의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심지어는 “슈퍼 부유층”과 비교해 자신을 “중산층”, “중간쯤”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이메일에서 “부유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취소할까 생각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진짜 부유층”은 개인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라면서요. “부유함”이란 돈에 대해 절대 걱정할 일이 없는 상태인데, 자신은 홑벌이 금융업계 종사자로 수입이 들쑥날쑥하고 고용도 불안하니 진정한 부유층이 아니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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