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안 하는 시대 (6/7)
2017년 9월 5일  |  By:   |  건강, 문화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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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제 (살을 빼는 데 집착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뚱뚱한 것, 비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기 모인 우리 모두 사실 나무랄 데 없이 똑똑하고, 각자 하는 일 다 야무지게 해내는 성공한 여성이잖아요. 물론 남자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우리가 정말이지 검증된, 가장 효과적인 다이어트라는 것들 다 해봤죠. 안 해본 것 없을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해봤는데 잘 안 되는 거라면, 어쩌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여러 차례 해봤습니다. 모임에는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다시 얼굴을 비추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습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가로젓고, 심지어 저를 향해 어딘가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습니다. 마치 ‘지금 자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건가? 뚱뚱한 사람이 날씬해지고 싶지 않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죠. 당장 도나만 해도 자매들은 모두 당뇨병으로 고생하며 약을 먹고 있지만, 그녀는 살을 빼고 난 뒤 당뇨병도 사라졌습니다. 지금보다 약 9kg 더 뚱뚱했을 때까지만 해도 등이 늘 아팠지만, 이제 도나는 손자와 함께 바닥을 기어 다니며 한참을 놀아줘도 등이 멀쩡합니다.

이들의 논리에 사실 마땅히 반박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만 해도 매번 모임에 올 때마다 거의 칼뱅의 소명설에 버금가는 무결점의 논리가 인도하는 가능성에 혹하곤 하니까요. 그 논리라는 건 우리 모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논리입니다.

먹는 것을 줄이면 몸무게도 줄어든다. 결국, 우리 몸은 섭취하는 열량이 부족하면 몸에 축적해 둔 지방을 연소해 필요한 열량을 태운다. 그럴수록 우리 몸은 날씬해지고, 가벼워지고, 작아져서 이 세상의 미적 기준에 더욱 부합하게 된다. (0 사이즈를 추앙하는 문화에서) 우리가 증발해버릴 때까지 작아져도 좋다. (옮긴이: 0 사이즈는 우리나라 옷 치수로 44 사이즈에 해당)

처음에는 저도 이 모임 날만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만이 내가 처한 아픔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어쩌면 한낱 저의 바람과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모임을 마치고 건물을 나서는 순간 이미 처음 기대는 온데간데없었고, 차에 타서 시동을 걸 때 즈음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여기서 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따라 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면 저도 기꺼이 시도해볼 텐데,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냥 먹는 것만 좀 줄이면 되는 건데, 어려운 일도 아닌데도 도저히 선뜻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2년쯤 전에 마침내 저는 제가 확인한 모든 통계가 가리키는 결론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몸무게를 줄이려 더 이상 애쓰지 않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끊기로 마음먹고 나서 보니, 또 그렇게 할 수 없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평생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살찌는 음식 아니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만 분류해 왔던 저인지라 무얼 어떻게 먹어야 할지, 즉 일상적인 식단을 짤 줄 몰랐던 겁니다. 영양 치료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기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만성 질환 같은 것임을 배웠죠.) 매주 치료사를 찾아가 상담을 할 때마다 저는 분명 살을 빼는 데 효과적인 식단이 있을 거라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럼 그때마다 치료사는 제게 그런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 다이어트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으로 자기를 찾아오신 분이 몇 주째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서야 되겠느냐며 핀잔을 주었죠. 저는 그 말에 수긍을 못 하고 외려 “당신은 날씬해서 죽었다 깨어나도 제가 얼마나 간절한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라고 치료사를 쏘아붙였습니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관절염 때문에 제가 무릎이 얼마나 아픈 줄 아세요? 도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정말 아프거든요. 제 여동생도 무릎에 관절염이 있어요. 그런데 걔는 안 아프대요, 글쎄. 왜 그런 줄 아세요? 걔는 날씬하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저를 이해한다고 착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가엾은 영양 치료사는 저 때문에 매주 인내력 테스트를 하며 훌륭한 인품만 인증한 셈이 됐죠.

저는 ‘당기는 대로 먹기(intuitive-eating)’ 수업도 들었습니다. 당기는 대로 먹기란 오로지 배꼽시계가 울리는 대로 먹는 것으로, 정해진 시간이나 식단 등에 구애받지 않는 방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배고플 때 참지 않고 무엇이든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겁니다. 수업에는 저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이 있었는데, 모두 교육 수준은 높지만, 꼭 살을 빼고 싶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음식과 식단에 신경을 쓰며 먹어본 뒤 각자 문제점과 어려운 점을 털어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앞에 음식이 주어집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음식을 입에 대봅니다. 그 음식에 관해 떠올려보며 음식을 맛보고, 음식을 바로 삼키기 전에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봅니다. 그러고 나서 음식을 삼킵니다. 아직도 배가 고픈가요? 정말로요? 첫 주는 건포도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치즈부터 크래커, 케이크, 부활절에 먹는 사탕까지 조금씩 메뉴를 바꿔가며 비슷한 훈련을 되풀이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둘러앉아서 마치 처음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이 지구인의 먹을거리를 조심스럽게 탐구하듯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이 훈련을 할 때마다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묻는 선생님께 저는 매번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41살이나 먹은 성공한 전문직 여성이자, 집에서는 사랑받는 아내고 좋은 엄마예요. 일도 열심히 하고 그 덕분에 세상에도 제 나름대로 이바지하면서 사는데, 도대체 지금 여기서 이 빌어먹을 건포도를 씹어먹는 법이나 배우고 앉아있으니, 도대체 제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건지 서럽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들은 저를 달래려 했습니다. 뚱뚱한 것을 혐오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인 편견에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왜 이들이 저를 위로하려 하는지 그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테니스를 치다가 발목을 삐었습니다. 원래 발목이 좀 좋지 않았는데 더 골치 아프게 됐죠. 아무튼, 병원에 갔더니, 저를 태어나서 처음 만난 내과 전문의라는 사람이 제 병력이나 관련 기록은 열어보지도 않고, 혈압 — 참고로 제 혈압은 아주 정상입니다. — 이나 체온 등 기본적인 상태를 체크하기도 전에 제게 제가 살을 빼기 전까지는 병원에서도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퉁명스레 말하며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되는 식단에 관한 지침서로 보이는 종이쪽을 성의 없이 제 손에 쥐여줬습니다. 이 사회가 이렇습니다.

글 쓰는 일로 취재차 들린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묵던 호텔 주인이 낚시를 가며 저를 배에 태워줬는데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죠.

“구명조끼 꼭 입으시라고는 안 할게요. 아마 물에 빠져도 잘 뜨실 것 같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농담이라고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배에 타는 내내, 그리고 다시 뭍에 내릴 때까지요. 제가 바이킹족처럼 거대한 대구를 낚자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몸집이 거대한 사람은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는 않겠구먼요!”

비행기 제 옆자리에 탄 한 여자는 이렇게 비꼬듯 말했죠.

“아주 안락한 비행이 되겠네요.”

뉴욕 맨해튼에서 택시를 탔더니 이번에는 택시 기사가 저를 보고 “젤리”가 떨리는 모습이 재밌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제 신체의 어느 부위를 지칭한 농담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죠. 10회권을 다섯 번째 구매한 필라테스 학원에서도 이번이 필라테스는 처음이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요가 학원에서는 “정신력을 높이 산다.”, “그저 꾸준히 출석만 하시면 성공”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참고로 저는 요가 경력 12년 차입니다. 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준 재봉사는 결혼식 전에 살을 빼지 않는 신부는 난생처음 봤다고 말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에서는 한 정신 나간 사람이 제게 사탕을 주려고 해서 제가 정중히 거절했더니, 그는 저를 보고 “이미 살이 찔 만큼 쪘으니 더 먹으면 안 되는 걸 본인도 알겠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저도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자 동생은 미친 사람을 왜 상대하느냐며 의아해했습니다. “넌 날씬해서 날 이해 못 해!” 뻔한 레퍼토리가 또 한 번 반복됐죠. (그나저나 제가 이 글을 쓰면 아마 제 메일함은 온갖 비아냥과 조롱, 욕설로 가득 찰 겁니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도 안 봐도 뻔하죠. 전에 한 여성 잡지에 우리 몸의 모습에 관한 에세이를 쓰던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 편집인이 제가 쓴 글을 인쇄한 여백에 이런 말을 써놓은 적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왜 쉴새 없이 먹는 버릇을 못 고치나?”)

이야기가 너무 딴 길로 샜네요. 다시 뉴저지주 유니온에서 열린 모임, 데이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 서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죠. 명절을 맞아 집에 온 대학생 아들이 머핀에 뭐가 들었는지 어떻게 알고, 남편은 으깬 감자에 버터를 넣지 않으면 이를 무슨 수로 알아낼지 같은 이야기가 오갑니다. 도나는 부활절 파이를 만들 때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돼지고기를 다 먹기라도 할 것처럼 돼지고기를 듬뿍 넣습니다. 모임에 나온 이들은 살을 어느 정도 빼도 자기는 여전히 뚱뚱한 편인데 이를 깜빡하고 자기가 날씬한 사람이 됐다고 착각하지는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늘 경계해야 하는 날인 겁니다.

“어쨌든 추수감사절도 똑같이 1년 365일 중 하루잖아요.”

데이나의 말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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