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가족앨범이 아닙니다.
2016년 9월 30일  |  By:   |  문화, 세계  |  1 comment

“제 모든 인생이 촬영되었고, 공개되었어요.” 오스트리아의 한 18세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고소했습니다. 소녀의 부모는 간혹 벌거벗거나 변기 위에 앉은 모습 등, 페이스북에 게시된 소녀가 갓난아이였을 때의 사진 500여 장을 삭제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사진들은 그들의 페이스북 친구 700여 명이 볼 수 있게 공개되었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행동을 전문으로 하는 임상 심리학자 얀 발뢰르(Yann Valeur)는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 일부 부모의 행동을 비판합니다.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는 일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일 그 오스트리아 소녀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의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면, 문제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입니다. 저는 우선 가족 전체 상담을 받도록 권유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법정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를 넘어서, 여느 가족들과는 조금 다른 이 이야기는 널리 퍼져있지만 깊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던 현상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온라인에 자녀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시하고 있으며, 간혹 과도하게 많이 업로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건전한 일상의 공유와 아이에게 해롭거나 위험할 수 있는 강박적 행동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인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신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이러한 노출된 상황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기애적인 행위

실생활이나 인터넷에서 자녀의 사진을 공유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는 이를 부모의 자기애적인 표현의 개인적 필요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며 이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이 사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SNS도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페이스북의 등장 이전에도 몇몇 사진가-예술가인 부모들은 사적인 영역을 넘지 않아야 할 이미지를 대중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SNS의 사용을 금지하고 SNS를 단죄할 것이 아니라 다만 적절히 규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부모를 위한 균형, 그것은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기애적 필요를 충족시킬 줄 아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오스트리아 부모는 성공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분명 지식의 부족, 그리고 SNS를 통제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은 온라인 가족앨범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례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합니다. 인터넷에서 우리는 부모의 입장보다 무분별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는 청소년의 입장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올 줄 모르고 자신을 노출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거꾸로입니다. 기능장애를 보이는 이들은 바로 성인이며, 그들의 아이들이 부모를 통제하기 위해 법과 권위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나 부모나 관계없이, 이러한 종류의 행동은 SNS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상황을 완전히 넘어서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되는 사용자들이 많은 것과 유사합니다.

사진 하나가 페이스북이나 다른 매체에 게시된 순간부터 그 사진은 더 이상 그 사진의 게시자나 촬영자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상업적 이용은 법적으로 제한되겠지만, 어떤 누구도 누군가가 그 사진을 스크린샷으로 저장하거나 인쇄하는 일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은 친구들 사이에서만 돌려보는 가족 앨범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웹상에서 공유된 모든 사진은 잠재적으로 모든 이에 의해 사용될 수 있으며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사진을 게시하는 일과,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의 사진을 게시하는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그 누군가가 우리가 보호해야 할 사람이면 더욱 그러합니다.

‘친구’와 ‘망’을 구별할

한 가지 분석이 필요한 부분은 온라인상 친구의 개념에 대한 것입니다. 위의 오스트리아 부모는 딸의 사진을 700여 명의 친구와 공유하였습니다. 이러한 수준에서는 더 이상 친구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그저 사회 관계망일 뿐입니다. 그 누구도 동시에 700명의 사람들과 우정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 부모는 딸이 아기였을 때 다소 내밀한 모습도 포함된 사진 500장을 게시하였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벌거벗은 모습이나 변기에 앉은 모습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이를 충분히 모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아이에게 자신감을 줄 수도 있었을 아이를 보는 부모의 자랑스러운 시선은 여기서는 정당성 없는 관음적인 시선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게시된 사진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도 중요하지만, 게시된 사진 자체의 성격도 중요합니다. 이 경우 기능장애의 정체는 분명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몰랐으며,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줄도 몰랐습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필요는 아이의 필요보다 우선시되었으며,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이미지가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 최소한 아이를 당혹스럽게 한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 자신의 사적 영역을 잃어서도 안 되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껴서도 안 됩니다. 아이는 한 번 성인이 된 이상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통제하고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는 아이는 자신의 어린시절에서 자신이 유리되었다고 느끼고, 자신의 과거도 상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특정 시점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할 때에도 그 자신이 선택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는 행위는 철저히 자기 자신의 선택으로 남아야 합니다.

저도 제 딸들의 사진을 게시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저는 아이의 사생활에 대한 존중의 의무와 아이의 첫 걸음 장면의 동영상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할 마법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기준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인터넷과 SNS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걱정하는 많은 부모들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금지하는 것보다 깊게 생각해보도록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이들의 사진을 절대 게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게시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두 딸의 아빠이고, 우리 가족의 예쁜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 게시하기를 즐깁니다. 저는 제 자기애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을 사진들,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 사진들을 고릅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등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서 좋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바바라 크리프(Barbara Krief) 취재 (L’Obs, Le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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