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도 나를 친구로 생각할까?
2016년 9월 21일  |  By:   |  문화  |  No Comment

다른 사람을 친구로 생각하는 마음은 절반 정도만 ‘상호적’이라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연구가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의 친구로 포함되지 않은 데 서운해하기에 앞서 우리의 사회적인 관계, 그로 인한 심리적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정이란 무엇인가에 관해서부터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연구 결과입니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이 글은 지난달 카카오 스토리펀딩에도 후보로 소개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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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이번 한 주, 아니 지난 한 달 동안 마주쳤던 모든 이들을 떠올려 보세요. 안부를 묻고 반갑게 인사 나누고, 같이 수다를 떨거나 아니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까지 전부 다, 그러니까 당신과 어떤 관계라도 맺고 있는, 당신의 세계에 같이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 모든 이들을 다 떠올렸으면 이제 다시 한 명 한 명을 차례로 살펴봅시다. 그리고 한 번 물어보는 겁니다. 이 사람이랑 나는 얼마나 친한 걸까? 이 사람을 진짜 친구라고 할 수 있나?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서로 친하다고 답할 확률이 절반 정도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절반 정도는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고, 반대로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가운데도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겁니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조직 행동 전문가, 사회학자,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우정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도 남을 연구 결과였습니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친한 것, 즉 우정의 정도를 두고 인간이 기본적으로 낙관적으로 혹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친구라는 단어가 그저 소셜미디어상에서 클릭 한 번, 드래그 한 번으로 맺었다 끊었다 할 수 있는 무언가로 여겨지면서 우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이번 연구 결과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한 사람의 관계, 소속감, 친분 등이 그 사람의 건강에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친구로 생각한 사람이 자신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MIT에서 컴퓨터 사회과학을 연구하며 <PLOS One>에 최근 실린 연구 논문 “‘친구의 친구’라는 개념과 우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행동 변화를 불러오는 가능성을 차단하는지에 관한 연구”의 공저자이기도 한 알렉스 펜틀랜드의 말입니다.

연구진은 한 경영과목 수업을 듣는 23~38세 학생 8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수업을 듣는 반 친구들에 대해 친한 정도를 1~5점으로 매겨달라고 부탁했죠. 1점이면 “모르는 사람”이고, “절친”으로 분류할 수 있는 친구에게는 5점을 주는 겁니다. 사람들은 친구들과 94% 정도 마음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친하다고 여기는 정도와 사람들이 나를 친하다고 여기는 정도가 94% 일치하리라 믿은 거죠. 결과는? 53%였습니다. 지난 10년간 총 9만 명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과 집계한 데이터의 결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친하다고 여기는 정도가 일치했던 비율이 34~53%였으니, 이번 실험의 53%면 오히려 높은 축에 속합니다.

펜틀랜드는 “친구 사이에 우정의 화살표가 엇나가는 건 아마 자아 인식에 균열 혹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는 근본적으로 우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관해 묻게 합니다. 우정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건 어색한 침묵, 그리고 이어 “글쎄…”, “음…”처럼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펜틀랜드 같은 전문가들에게 물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의 알렉산더 네하마스 교수도 우정이란 대단히 복잡한 개념임을 인정합니다. 그가 최근에 펴낸 책 <우정론(On Friendship)>만 해도 300쪽에 걸쳐 우정이란 개념 하나만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으니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그건 우정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건 오히려 쉬워요. 아니면 그냥 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하고 말면 그걸로 그만이죠.”

우정은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하고자 동원하는 도구나 수단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근사한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려고 그 사람과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누군가 반드시 우정으로 맺어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네하마스 교수는 우정이 오히려 예술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우리의 내면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정에 관한 한 가장 잘 알려진,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우정의 특징으로 생각하는 것이 또한 데일 카네기의 책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입니다. 계산된 행동이든 진실한 것이든 유명 연예인들이 과시하는 우정은 대개 칭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일반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 사이트 환경만 보더라도 다양하고 풍성한 친구 관계보다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는 건 많지 않습니다.

바사르 대학교 영문과의 로널드 샤프 교수는 문학 속의 우정, 우정의 문학을 가르칩니다. 그는 계산적인 인간관계는 우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전문가입니다.

“친구를 일종의 자산이라고 여기고 친구 관계를 관리하는 걸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우정의 근본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정은, 친구 관계는 누가 다른 이를 위해 무얼 해줄 수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서로 존재와 관계를 통해 각각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관한 존재의 문제죠.”

그는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이자 우정에 관한 통찰력 있는 전문가이기도 한 유도라 웰티와 몇 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던 대화를 소개했습니다. 샤프 교수와 웰티 작가는 함께 우정에 관한 선집인 “우정 글 모음(The Norton Book of Friendship)”이라는 책을 엮었습니다. 샤프 교수는 문자 메시지, 트윗이 넘쳐나는 세상에 우정의 양상도 분명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친구 곁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같이 있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뭐랄까요, 옛날식이 되었다고 할까요? 요즘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도 최대한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친구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정작 망각하는 경우가 많죠.”

친구라는 단어 자체가 당신이 시간과 품을 들여 이해하고 알아가는 누군가, 또 그 누군가가 당신을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도록 같이 나를 드러내고 공유하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귈 수 있는 친구의 숫자도 무한하지 않죠.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르는 이 문제를 연구하며 친구의 층위를 나누어 묘사했습니다. 먼저 나와 가장 가까운, 아마 대부분 사람은 한두 명 정도에게밖에 허락하지 않을 ‘절친’ 타이틀이 있습니다. 배우자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아마 여기 해당할 것이고, 그밖에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매일 연락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가 그렇겠죠. 그다음 층위는 최대 네 명 정도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하는, 당신이 무척 아끼고 좋아하고 늘 애정을 갖고 지켜보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안부를 주고받아야 하는 친구들입니다. 편하게 만나고 연락하는 친구들은 다음 층위에 해당합니다. 상대적으로 시간과 품을 덜 들이고 연락을 주고받는 빈도도 상대적으로 들쭉날쭉한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기적인 연락을 취하지 않는 이들은 친구라기보다는 지인에 해당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죠. 이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할 수는 있어도, 이들을 친구라고 부르기는 어딘가 어색한 그런 사이입니다. 물론 이는 던바르의 분류이긴 합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과 감정 에너지도 제한돼 있어요. 그래서 가장 친밀하고 노력을 들여 관리해야 하는 친구들은 다섯 명이 넘지 않는 거죠. 절친을 꼽으라고 했을 때 다섯 명 이상을 꼽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많은 이들과 하나하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건 나약함의 발로라고 여기고, 남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강인함이라고 치켜세우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돌보는 것, 소셜미디어에 올려놓은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진과는 꽤 다른 진짜 나를 드러내는 것 모두 우정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네하마스 교수는 말합니다. 사실 자신의 결점이나 흠을 드러내고 나누면서 관계가 유지되고 오히려 더 돈독해지리라 믿는 건 장담할 수 없는 모험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우정을 키우는 길 대신 관계를 끊는 쪽을 택합니다.

속 깊은 우정을 가꾸는 대신 서로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는 건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보건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외로움이나 소외감이 담배나 술, 비만 만큼이나 건강을 해치고 심지어 사망률을 높인다는 연구는 이미 알려졌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소외감과 외로움이 지나치면 특히 상냥함, 누군가를 응원하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관계 맺기를 담당하는 뇌의 똑똑한 미주신경(smart vagus nerve)이라 불리는 곳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웰슬리 여성 의학센터 정신과에서 대인관계와 신경생물학을 연구하는 의사 에이미 뱅크스는 말합니다.

“미주신경 톤의 건강과 활성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투쟁 도주 반응이라 불리는,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자극이 왔을 때 여기에 대응해 맞설 것인가 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뱅크스는 “뇌과학과 건강한 인간관계의 놀라운 연관성”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뱅크스는 진정한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우리의 미주 신경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반대로 낯선 이, 혹은 나를 재는 사람과 있으면 미주 신경이 경계 태세에 돌입합니다. 편안함을 느낀다는 건 우리가 가장 취약한 약점이나 치부를 드러내도 괜찮다는, 여전히 이 사람과 관계가 유지되리라는 믿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우정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의 미주 신경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생기를 잃어 퇴보하게 되고 늘 걱정에 휩싸여 살게 되죠. 이런 사람은 지속적인, 깊은 관계를 맺기를 갈수록 어려워합니다.

당신이 마주친 사람,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 가운데 누가 진짜 친구인지 가려내는 건 그래서 중요합니다. 당신을 위해 시간을 기꺼이 내주는 사람, 곁에 있는 것만으로 활기가 넘치고 풍족해지며 때로는 겸손함을 갖추도록 해주는 사람, 떨어져 있으면 생각나고 보고 싶은 사람, 떨어져 있으면 당신을 그리워할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 보세요. 앞에도 말했듯이 우정을 간명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우정이라 부르는 것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정은 한 사람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어쨌든 우리가 친구를 고르고 사귀는 과정에도 이런 기준이 중요하게 작용하죠. 그래서 이런 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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