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가 비호한 독재자의 손에 40년 전 아버지를 잃은 예술가의 인터뷰
2016년 9월 24일  |  By:   |  세계  |  No Comment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6년 9월 21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외교관저가 모여있는 거리에서 칠레의 망명 외교관 올란도 레틀리에(Orlando Letelier)와 그의 비서 로니 모피트(Ronni Moffitt)가 타고 있던 차량에 누군가 미리 설치한 폭탄이 폭발했습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실각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동지였던 레틀리에는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지 3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레틀리에는 쿠데타와 동시에 군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 바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당시 17살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온 프란시스코 레틀리에는 미국에서도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다고 회상합니다.

매번 집으로 불길한 전화가 걸려오곤 했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면 레틀리에 부인이십니까? 이런 질문이 이어지고 그렇다고 하면 이내 곧 남편을 잃을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식의 협박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늘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미행하는 것 같았어요.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 FBI는 피노체트 정권의 비밀경찰이 테러 공격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지만, 끝내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관련 정부 문서의 기밀이 해제되면서 독재자 피노체트가 레틀리에의 암살을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워싱턴 DC에 프란시스코 레틀리에가 아버지와 칠레 민중을 기리며 그린 벽화 “Todas las manos” (레틀리에 제공)

이제 57살이 된 프란시스코 레틀리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벽화를 그리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뒤늦게나마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올란도 레틀리에를 암살한 배후에는 피노체트가 있어요, 게다가 미국 정부는 범행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어요. 이런 말을 하면 예전에는 항상 그건 당신의 정치적인 견해일 뿐이지 사실이 아니잖소 같은 비판에 직면했죠. 이제는 다르죠. 공식적인 문서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까요. 최근에는 레이건 정권 때 국무부 장관이었던 조지 슐츠가 레이건 대통령에게 CIA 보고서에 피노체트가 올란드 레틀리에를 죽인 범인이라는 내용을 봤으니 이에 관해 조처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미국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죠. 이번에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데 이에 앞서 명백한 사실이 주목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23일 레틀리에의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레틀리에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를 비롯해 당시 미국 고위 관리들이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 이후의 칠레 정국에 얼마나 개입했는지 그 진실이 어디까지 밝혀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닉슨의 안보 수석이자 외교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키신저는 아옌데가 피노체트에게 살해되고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힌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 전복된 지 몇 주 뒤에 국무장관으로 임명됩니다. 닉슨 행정부와 미국 정보기관이 쿠데타를 부추기고 뒤를 봐줬다는 문서가 여러 차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미디어를 통해 외교 무대에서 카리스마로 미국의 국익을 관철한 영웅으로 묘사된 키신저잖아요. 당장 최근에 비밀이 해제된 문서만 봐도 키신저는 피노체트에게 미국 정가의 여론을 잘 이끌어서 새로 들어선 칠레 정권을 지지하고 편의를 봐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피노체트와 한통속이었던 것이죠. 좀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어쩌면 키신저를 기소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못하더라도 그냥 사람들이 키신저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매번 새로운 외교 문서, 정부 문서의 기밀이 해제될 때마다 키신저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 관해 프란시스코 레틀리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40년 전 제가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면 키신저는 지금보다 더 불편하고 더 불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고등학교 기하학 수업시간 도중에 갑자기 아버지가 폭탄 테러로 돌아가셨으니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가라고 선생님이 제게 말씀하시던 열일곱 살 때 기억이 또렷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건 헨리 키신저로부터 물밑에서 물심양면 지원을 받으며 제 조국 칠레의 민주 정권을 총칼로 짓밟은 피노체트였습니다. 키신저는 쿠데타 이후에도 피노체트를 감싸고 독재 정권이 저지른 범죄를 무마해줬죠. 그런 키신저입니다. 지금보다 더 불행하고 더 불편한 가시방석에 그를 앉혀야 합니다.” (Public Radio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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