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 길라잡이 (2/2)
2016년 6월 21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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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떤 주장을 펴고 있나? (The Players)

사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지도부, 그리고 영국의 거의 모든 정당이 유럽연합에 잔류해야 한다며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기는 합니다. 물론 각기 정치적인 셈법은 조금 다르지만요. 먼저 버니 샌더스에서 진지함이나 추진력을 빼놓은 사람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노동당의 당수 제레미 코빈은 오랫동안 자본주의 체제의 부산물이라며 유럽연합을 비판해 온 인물입니다. 코빈은 노동당 의원들로부터의 거센 반발이 두려워 마지 못해 잔류를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코틀랜드 민족당(SNP)의 당수이자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를 이끄는 니콜라 스터전도 잔류파에 속하기는 하지만,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스코틀랜드 주민들에게도 다시 한 번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묻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주민 투표에서는 영국에 남겠다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노동당과 스코틀랜드 민족당, 그리고 군소 정당을 제외하면 유럽연합 잔류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주체로는 캐머런 총리와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 그리고 별로 인기 없는 보수당 지도부만 남습니다.

그리고 이번 투표는 비단 유럽연합에 남느냐 마느냐를 넘어 정당에 대한 지지와 특정 세력에 대한 불만, 지역마다 다를 수 있는 갖은 이슈가 모두 한데 모여 표출되는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영국의 경우 부유한 남부와 후기 산업사회에서 뒤처지고 소외된 북부의 공업지대 사이의 갈등, 모든 것이 집중된 수도 런던에 대한 지방의 불만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 세속적인 자유주의와 사회적인 보수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사이의 문화 전쟁에 가까운 갈등은 서구 사회 어디에서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시리아에 개입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보다도 난민들에게 유럽의 관문처럼 여겨지는 터키가 더 골칫거리입니다.

이런 불만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엘리트”일 겁니다. 좀 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지만, 영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캐머런 총리는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이튼 스쿨과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중상위 계층 출신의 “엘리트”로 이미 주변 환경부터 서민들과는 확연히 다른 ‘금수저’였습니다. 다만 캐머런 총리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할 때 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쪽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데 엄청난 모순이 있는 거죠.

대표적인 탈퇴파 정치인으로 꼽을 수 있는 보수당 의원이자 런던 시장을 지냈던 보리스 존슨도 이튼 스쿨, 옥스포드를 나왔습니다. 늘 헝클어진 머리 스타일 만큼만 엘리트 학교 안에서 전통적인 엘리트주의에 저항했던, 어떤 의미에서는 조지 W. 부시 같은 인물이죠. 하지만 그도 ‘금수저’인 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캐머런과 존슨의 차이가 있다면 캐머런이 좀 더 모나지 않게 말을 하는 편이라 좀 더 따분하달까요? 존슨은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을 밥 먹듯이 하고도 미꾸라지같이 잘 빠져나오는 데 도가 튼 인물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절반은 케냐 사람 아니냐”는 차별 발언을 했고, 유럽연합이 어떤 의미에서는 히틀러주의나 다름없다는 막말을 했지만 끝내 직접적인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존슨에게는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습니다. 이건 정말 무시 못 할 재능이죠. 이쪽저쪽 편을 옮겨 다니는 데도 능수능란한 존슨이기에 국민투표 결과에 관계없이 머지않아 보수당 당권을 장악하고 총리 자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한 가지 더.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쪽에 자금을 대고 캠페인을 후원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헤지펀드 매니저를 비롯한 금융 투기꾼들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작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해 (보수당 지도부가 경고하는 대로)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별로 피해를 보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캐머런 총리와 오스본 장관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일자리, 투자, 이자율, 수출, 공공지출, 집값 등 모든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설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브렉시트가 몰고 올 충격에 대비해 긴급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경고까지 날렸죠.

반대로 탈퇴론자들은 터무니없는 협박이라고 맞섭니다. 오히려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써 내는 연간 분담금 80억 파운드만 국내 경제 부문에 투자해도 당장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죠. (다만 탈퇴 캠페인을 운영하는 데 쓴 돈이 벌써 80억 파운드의 몇 배가 넘는다는 지적도 있긴 합니다) 대부분 전문가는 분야와 지위를 막론하고 잔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데 의견이 모여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얼마 전 에둘러 영국이 유럽연합 일원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시했죠.

“영국 사람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전문가가 너무 많아요.”

캐머런 총리의 친구이자 유럽연합 탈퇴 운동에 가담한 각료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마이클 고브 법무부 장관이 한 말입니다. 포퓰리즘이 만연한 시대입니다. 고브 장관 말대로 전문가들의 말은 씨알도 안 먹히는 경우가 많죠. 서로 다른 수치, 근거, 주장을 앞세우면서 양측의 싸움은 이전투구 양상으로 흘렀습니다. 보수당 정치인들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투표가 끝나고 나면 총리 뒤로 다시 줄을 서서 뭉치겠지만요.

 

선택 (The Choice)

캐머런 총리에 반대하며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의원들은 그가 올해가 가기 전에 총리직을 내려놓게 되리라고 전망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제일 야단법석이라고 한숨을 쉴 호주 사람들, 부정부패에 탄핵 정국이 겹쳐 만신창이가 된 정치권을 바라보는 브라질 국민, 그리고 돈 많은 허풍쟁이 떠버리가 공화당 후보까지 오르자 적이 당황했을 미국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영국 정치도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가진 자들이 엘리트주의를 공격하며 가난한 서민들에게 엘리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표를 던지라고 호소합니다. 정작 혼란이 심해지면 그나마 갖춰졌던 기반마저 무너져 피해를 보는 건 서민들인데 말이죠. 대부분 언론도 브렉시트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1975년에는 대개 유럽에 들어가자고 외치던 언론들이 말이죠. 대부분 언론이 재벌과 갑부의 손아귀에 들어 있고, 세금을 덜 내고자 대개 본사는 영국에 두지도 않고 있는 언론사가 많아서 그렇다고 분석하면 지나칠까요?

실제로 탈퇴 표가 더 많이 나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유럽연합이 제재를 가할까요? 아니면 영국 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유럽연합이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 영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관계를 유지할까요? 그 전에 영국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요? 아예 모든 관계를 끊을 것은 아닐 테니 캐나다처럼 유럽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는 선을 유지하면 될까요? 유럽연합 회원국은 아니지만, 특별 협약을 맺고 관계를 유지해 온 노르웨이식을 따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지 계획을 꼭꼭 숨기고 있어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노르웨이와 유럽연합이 맺은 협약의 핵심은 사람의 이동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라 외국인 노동자와 일자리, 복지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 짐작할 뿐입니다.

나토를 비롯한 다른 국제기구는 어떻게 되는 거죠? 런던에만 집중되던 부와 자원의 배분도 차제에 해결이 될까요? 영불해협 근처 프랑스 쪽에 있는 칼레의 난민 캠프는 어떻게 될까요? 프랑스 사법 당국이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난민들에 눈감아주던 관행이 바뀔까요? 이 모든 질문에 진영에 따라 내놓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요.

어쩌면 영국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당장 삶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닐 거라고 예상하는지도 모르죠. 오히려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유로 2016에서 훌리건 문제로 잉글랜드 팀이 대회에서 실격 처리되어 쫓겨나지 않을까 그걸 더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영국인들에게 지난주 조 콕스 의원 살해 사건은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젊고 미래가 촉망받는 의원을 극우파의 사주를 받았거나 적어도 이를 추종하는 악질의 손에 잃자 사람들은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해낼 수는 없는 걸까?”

영국인의 선택까지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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