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월드컵과 인조잔디 논란
2015년 6월 19일  |  By:   |  스포츠  |  No Comment

*옮긴이: 애비 웜박(Abby Wambach)은 지난 2001년부터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미국 여자축구의 간판 스타입니다. 올림픽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땄고, 2012년에는 피파(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35살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아마도 월드컵 무대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점쳐지는 웜박은 그간 붙박이 주전 공격수에서 벗어나 이번 대회에서 경기 후반 투입되는 조커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13일, 화창한 밴쿠버 날씨 아래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막 오전 훈련을 끝마친 뒤였습니다. 훈련은 물론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인조잔디 위에서 진행됐죠. 가디언은 웜박에게 이번 대회에서 부여받은 조커로서의 역할이 낯설지는 않은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웜박은 마음 속으로 이미 다른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천연잔디였다면 (제 슛은) 들어갔을 거예요.”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모든 논란을 조명하기 전에, 웜박이 몇 달 전 다른 경기 이후에도 경기장 상태를 문제 삼은 적이 있습니다. 웜박은 골을 못 넣은 이유는 잔디 상태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나온 간판 스타의 당시 발언에 수많은 언론이 달려들었습니다. 비겁한 변명이라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이번 대회 조별 예선에서 보여준 미국팀의 경기력은 우승후보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특히 공격력이 실망스러운데, 인조잔디 때문이 아니라도 넣어야 할 골을 못 넣은 장면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웜박이 나이지리아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앞선 스웨덴 전에서 자신이 놓친 찬스를 떠올리며 잔디 상태를 직접적으로 거론한 건 또 한 번 변명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기 딱 좋은 발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웜박의 지적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 또한 아닙니다.

웜박이 언급했던 장면을 먼저 살펴보죠.

경기 하이라이트 동영상의 1분 15초 부분부터 보시면 됩니다.

웜박은 왼편에서 올라온 크로스에 머리를 잘 맞췄습니다. 바운드된 공은 골문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는데, 스웨덴의 린달(Hedvig Lindahl) 골키퍼가 팔을 뻗어 쳐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헤딩슛이 바운드됐을 때 인조잔디라서 공이 더 높게 튀었다는 점입니다. 인조잔디가 (천연잔디보다) 수분을 덜 함유하고 있고 말라 있기 때문에 그런 건데, 웜박도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천연잔디에서 바운드됐다면, 골키퍼가 반응할 시간이 분명 부족했을 겁니다. 공이 높게 튀어오르니, 골키퍼는 그만큼 반응할 시간을 벌 수 있던 것이죠.”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의 주장 미야마(宮間 あや)도 인조잔디에서 드리블하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반면에 웜박의 발언이 알려지자 미국 대표팀 동료들은 인조잔디라서 애로사항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으니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번 캐나다 여자월드컵은 피파(FIFA)가 주관하는 성인 월드컵 가운데 사상 최초로 인조잔디에서 치러지는 대회입니다. 최근 부정부패 혐의로 사의를 표명한 블래터 전 회장은 “인조잔디 구장이 축구의 미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조잔디가 천연잔디에 비해 부상 위험이 높다는 주장을 둘러싸고는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 있습니다. 두 주장 모두 나름대로 탄탄한 근거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라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습니다. 더 많은 축구장을 보급하고자 하는 피파는 인조잔디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장기적인 인프라 문제이고,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매 경기 승리가 중요하고 대회 주최측에게는 흥행이 관건입니다. 웜박은 이와 관련해 “천연잔디 구장에서 경기가 치러졌다면 분명 더 많은 골이 나왔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게 10:0 대승을 거둔 독일이나 대회에 첫 출전했다가 세 경기에 무려 17골을 내주고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에콰도르를 보면 골가뭄이 웬 말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번 대회부터 참가국이 24개로 늘어나면서 처음 출전한, 그래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많이 약한 국가들이 대량 실점한 경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상태를 살펴보면 골가뭄이 전혀 근거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조별리그 36경기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3.3골이지만, 이 중에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국가들이 치른 경기를 제외하고 나면 평균 득점은 경기당 1골 남짓으로 크게 떨어집니다. 지난 2011년 월드컵 때보다도 물론 낮습니다. 16강 토너먼트부터는 전력 차이가 크지 않은 팀끼리 접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량 득점이 안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웜박은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미국을 조 1위로 이끌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웜박은 인조잔디에 대한 견해를 재차 밝히면서도 자신이 득점을 놓친 데 대해 변명을 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골을 넣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 스스로 변명을 한 것도 절대 아닙니다. 찬스가 주어진다면 그걸 살리는 게 골잡이의 역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잔디 상태의 영향으로 공이 평소와 다르게 튀었고, 그 사실을 모두가 염두에 두고 경기를 하게 되니 경기력에도 차이가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웜박은 자신의 발언이 인조잔디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팀을 향한 비판도 잇따랐다는 점도 말이죠. 스웨덴과의 경기 이후 작심하고 내뱉은 듯한 말이 준비했던 말인지, 아니면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실언이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웜박은 여자축구를 향한 관심이 고조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수의 발언을 분석까지 하고 많은 관심을 받는 게 분명 예전에는 없던 일이에요. 대표팀 관계자들 가운데는 제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어쨌든 여자 축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이런 저런 뉴스가 생겨나니까 좋은 것 아니냐고요.”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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