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클라시코, 정말 전 세계에서 4억 명이 시청했을까?
2015년 3월 30일  |  By:   |  스포츠  |  2 Comments

옮긴이: FiveThirtyEight의 벤자민 모리스(Benjamin Morris)가 쓴 ‘시청률 뻥튀기’에 관한 이 기사를 소개하기에 앞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축구 경기 엘 클라시코(El Clasico,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가 열렸던 지난주 일요일(23일) 제가 겪은 일화를 짧게 소개하려 합니다. 그날 낮 2시쯤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는 미국 대학농구 토너먼트인 “3월의 광란(March Madness)”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십니다. 4시에 열리는 엘 클라시코를 친구와 함께 집에서 보면서 먹으려고 집 앞에 있는 닭집에 치킨을 사러 간 건 3시 반 쯤이었습니다. FC 바르셀로나의 열성팬인 저는 카를레스 푸욜의 이름이 새겨진 FC 바르셀로나 저지를 입고 가게에 들어섰죠.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TV가 수십 대 설치된 가게 안에는 아직도 우리 학교, 우리 지역 농구팀의 패배를 곱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팬들로 가득했습니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제가 입고 있는 옷이 도대체 무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농담을 던졌습니다. “오늘 농구 안 보는 사람도 있었네!”라는 식의 가벼운 이야기었죠. 저는 농구를 봤고 우리 학교가 토너먼트에서 탈락해서 아쉽지만, 지금 이 축구 경기가 제게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줏어들은 숫자를 덧붙였죠. “지금 우리 동네, 아니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은 전부 다 이 경기를 보고 있어. 4억 명이 동시에 중계를 본다고, 슈퍼볼 시청자보다도 훨씬 많아!”라고요. 4억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종업원은 믿을 수 없다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저는 축구의 축 자도 모르는 미국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농담을 던지고는 가게를 나섰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저를 머쓱하게 만든 이 기사가 FiveThirtyEight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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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football)은 많은 나라에서 축구로 번역되지만, 미국에서는 모두가 알다시피 다릅니다. 우리말로 미식축구로 번역하는 스포츠가 미국에선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죠. 축구와 미식축구 두 가지를 모두 풋볼이라고 지칭할 때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경기, 가장 많은 팬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으는 경기는 어떤 경기일까요?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일까요? 아니면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더비 경기라 불리는 엘 클라시코일까요?

축구계를 좌지우지하는 두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의 대결 만으로도 관심을 끌었던 엘클라시코를 미국에서 중계한 방송사는 비인 스포츠(BeIN Sports)였습니다. 비인 스포츠의 해설가이자 메시를 유달리 띄워주는 해설로 유명한 레이 허드슨(Ray Hudson)은 경기 중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이 경기를 TV로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 수가 전 세계에 10억 명이 넘습니다.” 10억 명이라고요? 전 세계 인구가 70억인데, 축구 경기 한 경기를 전 세계 인구 7명 중 1명이 생중계로 시청할까요?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보니 10억 명은 확실히 허드슨의 과장인 것 같더군요. 포브스, CNN, BBC, ESPN 등 유수의 매체들, 그리고 위키피디아가 추정한 엘 클라시코 시청자는 4억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슈퍼볼 시청자가 보통 1억 명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무리 축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라고 해도 4억 명도 많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4억 명이란 숫자가 도대체 어디서 온 건지를 조금 더 찾아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4억 명은 검증되지 않은, 뻥튀기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숫자였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지고 퍼져 사실처럼 굳어진 것일 뿐입니다.

우선 각 나라별로 믿을 만한 시청률을 뽑아내 집계하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시청률을 유추할 만한 단서를 구했습니다. 바로 인터넷(구글) 검색 횟수입니다. 정확한 숫자를 구하고자 한 게 아니라 4억 명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그럴싸한 것인지 확인해보려는 의도였습니다. 엘 클라시코와 비교 잣대가 될 만한 축구 행사로 월드컵을 떠올릴 수 있겠죠. 월드컵과 엘 클라시코 검색 횟수를 비교해봤더니 월드컵은 대회가 열리는 4년마다 검색 횟수가 급증한 데 비해 엘 클라시코 검색 횟수는 상당히 낮았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한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스페인 : 네덜란드) 시청자 수는 평균 5억 3천만 명이었습니다. ‘엘 클라시코’라는 단어로만 국한하는 건 정확하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에는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검색 횟수를 슈퍼볼과 비교 해봤습니다. 엘 클라시코보다 검색 빈도가 훨씬 높긴 했지만, 그래도 4억 명이 시청하는 경기라고 고개를 끄덕이기엔 검색 횟수가 충분히 높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검색 횟수와 시청률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슈퍼볼보다 네 배나 많은 시청자가 보는 지구촌 최대의 빅매치라고 부르기엔 검색 횟수에서 나타나는 관심도가 낮아 보였습니다. 정말 엘 클라시코는 4년에 한 번씩 전 세계 축구팬의 엄청난 관심 속에 치러지는 월드컵 결승전에 버금가는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모으는 걸까요?

의심이 더욱 짙어진 저는 도대체 이 4억 명이란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찾아봤습니다. 수많은 링크를 타고 또 타고 간 끝에 제 검색의 종착역은 2012년 엘클라시코를 중계한 메디아프로(Mediapro) 사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토대로 쓴 것으로 보이는 이 기사였습니다. 기사에는 메디아프로가 중계하는 이번 엘 클라시코가 전 세계 30개 나라에 최대 4억 명의 시청자(potential audience 또는 expected audience)의 안방에 전달될 것이라고 써있습니다. 최대 4억 명의 시청자라고 되어있지 실제로 4억 명이 시청했다(actual audience)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이 기사가 퍼지고 퍼져 어느덧 4억 명이 엘 클라시코를 실제로 본 시청자로 둔갑해버린 겁니다. 이런 조작은 엘 클라시코 말고 다른 스포츠 경기나 시청률이 중요한 대형 이벤트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집계가 어려울 때 어림짐작으로 시청자 수를 뻥튀기해버리는 수법이죠.

그럼 이제 4억 명이란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좀 더 정확한 추정치를 어림잡아봅시다. (적어도 미국 방송사들의 시청률 집계는 공신력이 좀 더 높다는 가정 하에) 비인 스포츠의 시청률 집계를 보면 이번 엘 클라시코 시청자는 미국에서 210만 명입니다. 월드컵 결승전 시청자 수는 2010년 월드컵이 2,430만 명, 2014년 월드컵이 2,650만 명이었죠. 월드컵 전체 시청자 수를 토대로 간단한 비례식을 만들어 대입해보면 엘 클라시코 전 세계 시청자 수는 약 5천만 명쯤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단순비교에 대입한 가중치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면, 아마도 더 열성적인 축구팬일 확률이 높은, 스페인어 채널로 경기를 시청한 미국의 시청자들을 대입해보죠. 그럼 전 세계 시청자 수 추정치는 7천 5백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여기에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엘 클라시코보다도 높은 인기를 누린 축구 경기인 멕시코 리그 플레이오프 결승전 시청자 수(250만 명)를 토대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어림잡아보면 1억 4천 4백만 명이 됩니다. 정확한 숫자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진실은 아마도 이 추정치 사이 어디쯤 있을 겁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4억 명은 터무니없는 부풀리기였다는 건 변함 없습니다. (FiveThirty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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