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산층을 붕괴시킨 레이건의 부자 감세
2015년 3월 12일  |  By:   |  경제, 칼럼  |  No Comment

옮긴이: 이 글을 쓴 하트만(Thom Hartmann)은 기업가이자, 심리치료사, 진보 성향의 정치평론가이자 라디오쇼 진행자입니다.

자본주의는 원래 평등과는 거리가 먼 경제 체제입니다. 한 사회의 부가 소수에게 쏠리지 않고 비교적 평등하게 나누어질 때 등장할 수 있는 중산층도 자본주의 원래 개념과는 썩 어울리지 않습니다. 규제받지 않은 자본주의의 모습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떠올리면 가장 정확할 겁니다. 경제 체제의 정점에 극소수의 부자들이 군림하고 있고, 그 바로 아래 전문직, 혹은 중상주의자(mercantilist)라 불리는 역시 아주 적은 수의 중산층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90%가 넘는 나머지 계층은 빈곤 노동자에 속하는 이들로 공식적으로는 노예 신분은 면했지만 대부분 사실상 평생 갚지 못할 빚 때문에 운신의 폭이 매우 제약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라면 부가 보통 사람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한 사회가 창출해내는 이윤과 이를 통해 축적되는 부는 극소수 부자, 권력층에게 집중되기 마련이고,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내재된 개념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첨단을 달린다는 미국에서 상당히 탄탄한 중산층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공황 이후 세계 2차대전을 거쳐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와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고 소수의 자본가, 대기업에 집중됐던 부에 높은 세금을 매겨 이를 적극적으로 재분배했던 시기가 바로 그 시절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던 기업은 GM이었습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당시 노동자들의 임금은 시간당 50달러를 상회했습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뒤 레이거노믹스라는 혁명적인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이를 단순히 요약하면 규제를 풀고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공급자 중심의 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에 기반을 둔 방침이었습니다. 레이거노믹스 이후 35년이 흐른 지금,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은 월마트입니다.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시급 10달러입니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시기 가운데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이단아에 해당되는 건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됐던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입니다.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의 등장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대격변에 해당되는데, (중세시대 유럽을 자본주의 사회라고 칭할 수 있다면) 14세기 흑사병으로 노동인구가 급감했을 때나 가능했고, 산업혁명 이후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부사들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지 않는 한 중산층이 발을 붙일 곳은 없었습니다. 피케티(Thomas Piketty)가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밝혔듯이, 세계 2차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중산층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건 개인의 소유 아래 세습되던 부가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됐기 때문이고, 새로 창출되는 이윤과 부에는 정부가 전쟁 상황이라는 명목 하에 높은 세금을 물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자본주의와 시장의 순수한 논리를 무시하고 개입과 규제를 일삼던 시절 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낮았습니다.

피케티는 특히 부가 소수에게 독점되는 걸 막기 위한 제도로 누진세(progressive taxation)를 언급했는데 이는 정확한 지적입니다. 자본가, 고용주가 이미 버는 소득 외에 추가로 벌어들이는 돈에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면 그만큼 노동자를 착취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죠. 2차대전 직후 미국에서 최고 소득 과표구간의 소득세율은 91%였습니다. 당시 기업 CEO의 연봉은 가장 기본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에 비해 평균 30배 정도 높았습니다. 레이건 정부는 최고 소득 과표구간의 소득세율을 28%로 떨어뜨렸습니다. 중산층, 서민에게 흘러내리던 부는 빠른 속도로 소수의 부자들에게 다시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거노믹스 이후 소득 불평등은 빠른 속도로 심화되기 시작했고, 현재 CEO들의 평균 연봉이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평균 수백 배 높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계층이 부를 나눠갖기 시작하면, 다시 말해 중산층이 탄탄해지면 이들은 정치적인 권리를 포함해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해 사회적인 토론에 불이 붙죠. 1960, 1970년대 미국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인권 운동, 여성 운동, 반전 운동, 반 권위주의 문화, 환경 운동, 소비자 권익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새로 등장한 중산층은 사회적인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이슈를 찾아내 공론화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겐 끔찍한 대혼란이나 다름없었죠. 레이건의 당선으로 정권을 잡은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혼란을 타개하려 했습니다. 부자 감세를 통해 중산층의 기반을 무너뜨린 건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말그대로 신의 한 수였죠. 중산층은 빠른 속도로 빈곤 노동계층으로 편입됐습니다.

레이거노믹스는 그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도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적어도 부자감세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부시 정권에서 추가로 진행한 부자 감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클린턴 정부도, 오바마 정부도 최고 소득 과표구간의 소득세율, 상속세율을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중산층이 탄탄해야 하는 게 반드시 옳은 목표인 건 절대 아닙니다. 이는 사회적인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문제죠. 독과점 자본주의를 이대로 유지하느냐 중산층을 되살려 보다 다원주의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느냐,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섰습니다. 만약 우리가 중산층을 되살리는 쪽을 택한다면, 그 첫 번째 정책은 레이건의 부자 감세를 철회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Al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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