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2015년 2월 3일  |  By:   |  문화  |  3 Comments

(글에 언급된 36가지 질문은 뉴욕타임스가 만든 무료 앱을 통해 스마트폰, 태블릿 등에서 다운 받아 시도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여 년도 더 전에 심리학자 아서 아론은 처음 보는 두 남녀를 자신의 실험실에서 사랑에 빠지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지난 여름 나는 그의 방법을 현실에 적용해 보았고, 그 결과 나는 한밤중에 어느 다리 위에서 한 남자의 눈을 정확히 4분 동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야겠네요. 그날 이른 저녁, 그 남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통점이 몇 개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상대방을 고르는 기준은 뭐가 돼야 할까요?”

그는 암벽등반 훈련장에서 한 번씩 마주치던, 같은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어쩌면” 하는 생각에 그의 인스타그램을 잠깐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 둘이서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지요.

“사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방법을 찾아왔어요.” 나는 아론의 연구를 기억하며 말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연구에요. 늘 한 번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내가 아론의 연구에 대해 처음 읽은 것은 내 연애가 막 깨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내가 매번 그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마다, 나의 감정은 이성이 내린 결론을 가로막았지요. 나는 답답했고, 성실한 학자답게 현명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어떤 과학적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 연구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이성애자인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문으로 실험실로 들어옵니다. 그들은 마주 보고 앉아 점점 더 사적인 내용으로 바뀌는 질문을 주고받습니다. 그 뒤, 그들은 각자의 눈을 4분간 침묵 속에서 바라봅니다.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세요? 두 사람은 6개월 뒤 결혼에 골인했답니다. 그들은 실험실의 모든 사람을 결혼식에 초대했지요.

“우리도 한 번 해봐요.” 내 이야기를 들은 그가 말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실험이 그 연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실험실이 아닌 술집에 앉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아니었죠. 게다가, 이제 와 생각해보면 우리 두 사람이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면 사랑의 감정을 만드는 실험을 서로 제안하거나 승낙할 이유도 없었을테죠.

나는 아론 박사의 질문들을 구글로 찾았습니다. 질문은 모두 36개입니다. 우리는 내 아이폰을 테이블 너머로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 몇 가지 질문은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유명해지고 싶나요? 어떻게요?” “가장 최근에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 준 게 언제인가요? 다른 이에게 불러준 적은요?”

질문의 강도는 점점 세졌습니다.

“당신과 상대방이 가진 공통점 세 가지를 말해보세요”라는 질문에 그는 즉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우린 둘 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어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가 다른 두 공통점을 말했지만 나는 금세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점쟁이에게 묻고 싶은 한 가지를 각각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도 이야기했지요.

그 질문들은 천천히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가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아주 뒤늦게 알게 되는 고약한 실험을 연상시켰습니다. 우리의 실험에서 서서히 둘 사이의 벽은 낮아졌고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는 몇 주나 몇 달이 걸려야만 도달하는 단계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답들을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더 즐거웠습니다. 처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비어있던 술집이 우리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질문을 멈췄을 때는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서 근 한 시간 만에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우리 대화를 듣고 있지나 않았는지 궁금했지요.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술집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밤이 깊어지는 것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그리고 지인들에게 보여줄 자신의 모습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론 박사의 질문들은 그 준비된 나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립니다. 그와 내가 느꼈던 그런 순간적인 친밀감은 어렸을 때 여름 캠프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밤을 새우면서 서로의 짧은 인생을 이야기할 때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열 세 살 때 나는 처음으로 집을 떠났었고 그때는 누군가와 그렇게 빨리 친해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어른에게는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 않습니다.

가장 불편했던 순간은 나 자신에 대해 고백해야 했던 순간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해야 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22번 질문인 “상대방의 장점을 다섯 가지씩 말해보세요.” 와 28번 질문인 “당신이 상대방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말해주세요. 처음 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그런 이야기라도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같은 질문이 그랬습니다.

아론 박사의 연구는 대부분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에 초점을 둡니다. 특히 몇몇 연구는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여기게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했지요. 이 실험의 질문들이 소위 “자기 확장(self-expansion)”을 유발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당신의 목소리가, 당신의 맥주 취향이,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을 존중하는 듯 보이는 것이 좋아요”라고 말함으로써 한 사람의 어떤 장점이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한 가치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실제로 누군가가 당신의 어떤 특징을 칭찬하는 것을 듣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경험입니다. 나는 오히려 왜 사람들이 항상 서로를 칭찬하지 않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우리의 실험은 거의 열두 시가 다 된 시각에야 끝이 났습니다. 원래 실험에서 주어졌던 90분보다 한참 더 시간을 썼지요. 주위를 둘러보면서 나는 막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나는 말했습니다. “서로의 눈을 쳐다보는 것 보다는 확실히 덜 불편한 것 같아요.”

그는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그 부분도 해야 할까요?”

“여기서요?” 나는 술집을 둘러보았습니다. 너무 공개적인 장소였고, 이상할 것 같았습니다.

“다리 위는 어때요.” 그는 창밖을 보며 말했습니다.

밤공기는 따스했고 내 정신은 맑아졌습니다. 우리는 다리의 가장 높은 곳으로 가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서투르게 휴대폰의 타이머를 맞췄습니다.

“준비됐어요.” 나는 숨을 들이켰습니다.

“좋아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스키를 타고 가파른 경사를 활강하는 것을 즐길 뿐 아니라 짧은 줄 하나에 의지해 절벽에 매달려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을 4분 동안 고요히 쳐다본 것은 내 삶에서 가장 오싹하면서도 충격적인 경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나는 처음 1~2분을 그저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긴장된 웃음이 자꾸 나왔지만, 마침내 우리는 진정되었습니다.

나는 눈이 영혼 또는 그 비슷한 무언가의 창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느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이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바라보는 누군가를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내가 받아들이고 익숙해졌을 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하던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는 고양되었고 경이감을 느꼈습니다. 그 경이감의 일부는 내가 스스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온 것이었고, 다른 일부는 다소 생소한 경이감이었습니다. 마치 어떤 단어를 거듭해서 말함으로써 그 단어의 뜻은 사라지고 그 소리 뭉치만이 남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이 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 일어난 일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기 보다는 유용한 세포들의 덩어리였습니다. 눈과 연관된 감정이 사라지고 나는 둥근 안구 속의 홍채 무늬와 부드럽고 촉촉한 각막으로 이루어진 그 눈을 통해 숨 막히는 생물학적 현실감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알람이 울리자 나는 놀랐고,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상실감도 느꼈습니다. 나는 이미 이날 저녁을 다소 초현실적이고 불확실한 기억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사랑이란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빠지고, 서로에게 반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론의 연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연구는 사랑이 어떤 행동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는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중요한 것은 내게도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 둘의 경우, 서로에게 비슷한 점이 적어도 세 가지나 있고, 둘 다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고, 또한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허락해준 사이였지요.

나는 그와의 이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냥 그날 밤으로 끝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날의 이야기가 그저 우리 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알고자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이야기이며, 또 누가 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나는 사랑받는 방법을 연구해 왔지만,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우리가 고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낭만적인 감정을 나 혼자 편한 대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과학이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생물학적 조건의 중요성입니다. 우리가 일일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페로몬과 호르몬은 실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경험으로 인해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론의 연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심지어 그 방법도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저 사랑이 꽃필 수 있도록 둘 사이의 신뢰와 친근감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그와 사랑에 빠졌는지 궁금하겠지요. 맞아요. 우리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물론 순전히 그 실험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어쩌면 그런 실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 인연은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실험은 우리를 어떤 강제적인 힘으로 연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날 형성된 친밀감을 몇 주 동안 즐기며 그 다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했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그저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지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저자 맨디 렌 캐트런은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사랑 이야기들이 가진 위험에 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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