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비즈니스에서는 압도적인 1위
2014년 5월 13일  |  By:   |  세계  |  No Comment

옮긴이: 올해 유럽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두 스페인 클럽(아틀레티코와 레알 마드리드) 사이의 경기로 치러집니다. 지난해 결승전은 두 독일 클럽(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끼리 치러졌죠. 박지성 선수의 전성기와 함께 우리나라 축구팬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던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nglish Premier League, EPL)는 2년째 결승 진출팀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유럽대항전 성적을 토대로 산정한 유럽축구연맹 리그 랭킹에서도 잉글랜드는 스페인에 1위를 내준 뒤 2위 자리마저 독일에게 위협 받고 있습니다. 성적에서는 부침이 있을지 몰라도 축구의 세계화, 특히 유럽 축구가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시작한 이래 EPL은 비즈니스에서는 단 한 차례도 최고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축구의 불모지라는 미국에서도 EPL을 중계하는 NBC 스포츠채널이 지난 주말 EPL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인 38라운드 10경기 전체를 동시 생중계했습니다. 무엇이 EPL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는지를 짚어본 영국 BBC 경제부의 유에(Linda Yueh) 기자의 글을 소개합니다.

지난 2008년 EPL 사무국은 39라운드 체제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현재 20개 팀이 전체 팀을 상대로 홈 & 방문 경기를 치러 총 38 라운드로 치러지는 리그에 한 경기를 추가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1월 중 한 주말을 정해 전 세계 곳곳에서 EPL 경기를 치르자는 것이었죠.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야구 세계화를 명분으로 일본이나 호주에서 경기를 치른 것과 비슷한 목적이기도 하지만, 야구를 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 안 되다 보니 개최지 선정에 제약이 따랐던 MLB 사무국과 달리, EPL 측은 미국부터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까지 EPL 경기를 기꺼이 치르겠다고 신청서를 낼 나라들이 충분히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한 라운드를 더 편성해 벌어들일 수 있는 예상 수입은 1천 4백억 원. 각 구단의 서포터들부터 FIFA에 이르는 광범위한 반대에 부딪혀 39라운드 체제는 실행에 옮겨지진 않았지만, EPL은 이미 유럽 축구의 간판이자 세계적인 수준의 축구 리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본 팬들 가운데는 잉글랜드 팬들보다 전 세계의 팬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EPL 경기를 공식적으로 접할 수 없는 나라는 북한과 알바니아 뿐입니다. 2013 ~ 2016년까지 세 시즌 동안 EPL 구단들이 벌어들이는 중계권료는 총 9조 5천억 원(관련 뉴스페퍼민트 기사). 프리시즌 투어, 포스트시즌 투어라는 간판을 달고 각 팀들은 오프시즌 중에도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입니다. 스페인이나 독일, 이탈리아 리그는 못하는 걸 잉글랜드 리그는 어떻게 잘 해내고 있는 걸까요? 경기 시각과 언어, 그리고 세계화의 선봉에 나서면서 얻은 이점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영국에서 축구 경기가 열리는 시각은 주말 오후 3시입니다. 이 전통을 그대로 지키더라도 동남아시아나 동아시아에서는 주말 밤 10시 또는 11시에 경기를 볼 수 있죠. 미국과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주말 오전인데,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야구나 미식축구, 또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 자국리그 축구 경기가 열리는 저녁 시간대를 오히려 피할 수 있어 틈새시장 공략에 유리한 시간대라는 평도 있습니다. 반대로 저녁시간이나 밤 늦게 경기를 치르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경우는 아시아 팬들이 밤을 새고 새벽 3시나 4시까지 기다려야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마케팅이 쉽지 않습니다. 스페인 리그가 중국 시장을 고려해 몇 년 전부터 일부 경기를 낮경기로 편성했는데, 이 결정은서포터들과 자국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세계화된 언어라 할 수 있는 영어를 기반으로 한 상품이라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리그 자체의 열기만으로는 유럽에서도 최고라 할 수 있는 독일 분데스리가가 독일어 때문에 세계시장 공략에 EPL에 비해 애로사항이 많은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래 전부터 영연방(Commonwealth) 국가들을 상대로 축구 보급에 앞장서왔던 경험이 자산이 되어 세계 시장 공략에 도움이 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EPL의 스쿠더모어(Richard Scudamore) 사무총장은 중계권료의 공평한 배분을 통한 구단들의 수익 평준화와 이로 인해 경기력이 함께 상승해 리그가 더 치열하고 재밌어진 점 또한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올 시즌 우승팀 맨체스터시티가 중계권료로 가져가는 돈은 1억 파운드(1,730억 원). 꼴지를 차지하고 강등되는 카디프 시티도 6천만 파운드(1,038억 원)를 받습니다. EPL은 사무국이 전체 구단들을 대표해 중계권료 계약을 맺고 최종 순위와 중계 빈도에 따라 차등 지급합니다. 이는 특히 스페인과는 굉장히 다른 구조인데, 각 구단이 개별적으로 중계권 협상을 벌이는 스페인은 구단들 사이에 중계권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합니다.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각각 1억 5천만 유로(2,116억 원)씩 전체 중계권료의 약 80%를 독식합니다. 다음주 최종라운드를 앞두고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올시즌 돌풍의 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최종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도 구단 재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계권료에서는 턱없이 모자란 액수를 받아야 할 게 뻔하고, 현재의 부실한 재정 규모로는 선수단의 연봉 인상 압박을 견뎌내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우수한 선수들을 데려올 재력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두 클럽에게만 남게 되고, 스페인 리그가 말하는 경쟁은 EPL에 비하면 훨씬 제한적인 경쟁에 그치고 마는 겁니다.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를 소유하고 있는 펜웨이 스포츠 그룹(Fenway Sports Group)은 EPL 준우승팀 리버풀(Liverpool FC)의 구단주이기도 한데, 각 구단이 개별적으로 중계권료 협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늘리자고 제안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EPL 클럽들과 사무국은 치열한 경쟁 속에 리그를 보는 재미가 배가되고, 이것이 성공적인 마케팅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선순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 구조를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협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리그의 챔피언을 비롯한 상위 몇몇 구단들이 성적에서 돋보이는 결과를 내는 경우는 앞으로도 계속 있겠지만, 리그 전체의 경쟁력, 재정 건전성 등에서는 EPL의 아성을 위협할 리그가 당분간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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