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의 역사, 금기의 역사
2013년 9월 2일  |  By:   |  세계  |  No Comment

2차대전 당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처칠 수상은 화학무기 사용을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합참의 만장일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화학무기의 역사는 상당부분이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못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학무기는 실제 사용되기 전부터 금지되었던 무기입니다. 1899년 체결된 헤이그 조약이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 화학무기를 사용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물론 화학무기가 끔찍한 무기이기는 하지만, 다른 여러 무기들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비난의 대상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화학무기의 경우는 좀 특수합니다.

헤이그 조약에 반해 화학무기를 처음 사용한 나라는 1차대전 때의 독일입니다. 이때 화학무기로 인해 사망한 군인은 9만명에 달하고, 부상자는 10배 이상입니다.이후 1930년대에 이탈리이아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일본의 중국 침공 때도 화학무기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신무기인 공중 투하 폭탄이나 잠수함과는 달리, 1925년 제네바 협약에서도 화학무기 사용 금지가 다시 한 번 명시됩니다. 2차대전 발발 이후, 화학무기를 사용한 국가는 일본 뿐이었고 금기는 더욱 강화됩니다. 이오지마 전투 때 일본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써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안을 거부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가스실을 활용했던 히틀러조차 전장에서는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합군의 보복을 두려워한 탓도 있었겠지만, 1차대전 참전 중에 가스를 마신 경험이 있는 히틀러가 개인적으로도 화학무기에 큰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독일은 다른 국가들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가 마음만 먹었다면 2차대전의 판세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히틀러조차도 사용하지 않은 무기”로서 화학무기에는 더욱 큰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2차대전 이후 유일하게 화학무기 사용 금지 조항을 어긴 사람은 사담 후세인입니다. 이란과의 전쟁은 물론, 쿠르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탄압에도 화학무기를 사용했죠. 공격을 받은 쪽이 외부 세계에 친구가 많지 않아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1997년 UN에서 화학무기의 사용은 물론 생산과 판매도 제한하는 조약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국가가 아닌 종교 컬트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일본 옴진리교 신도들이 출근시간 지하철역에 사린가스를 살포한 사건입니다. 한때는 화학 산업이 발달한 강대국들의 전유물이었던 화학무기가 이제는 판세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약자들의 무기로 등장한 것입니다. 앞으로 테러리스트들이 화학무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금기는 더욱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1세기 전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화학무기에 대한 공포는 비이성적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여러 무기들에 비해 화학무기가 특별히 더 위험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화학무기보다 방어하기 힘든 무기들도 얼마든지 많죠. 화학무기에 찍힌 낙인이 다른 무기들에도 적용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화학무기가 금기시된 과정이 각종 우발적인 사건들과 복잡한 배경의 산물임을 생각할 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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