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 폴 크루그먼 칼럼] 자격 없는 부자들 (The Undeserving Rich)
2014년 1월 24일  |  By:   |  Economy / Business  |  3 Comments

미국 사회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소득 불평등의 현실은 냉엄합니다. 1970년대 이후 소득 분포 하위 50%의 노동자들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임금은 제자리거나 하락한 반면, 소득 분포 상위 1%의 실질 소득은 4배 이상 증가했고 상위 0.1%의 소득은 그 보다 훨씬 많이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떠한 정책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분명한 사실(Facts)은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연한 사실을 두고서 사람들은 논쟁을 벌입니다. 아예 사실을 잘 못 주장하거나 사실을 통계적 모호성으로 포장해서 오늘날 부유한 사람들은 그런 지위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이용합니다.

아예 사실을 잘 못 주장하는 경우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브렛 스테픈스(Bret Stephens)는 칼럼을 통해서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서 사실 관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비판한 뒤에 오늘날의 소득 불평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바로 과거에 비해서 모든 사람들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 근거로 미국 소득 분포의 하위 20%의 소득도 1979년에 비해 186%나 올랐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 의견이 뭔가 잘못된 것 처럼 들리나요? 네 맞습니다. 그가 말한 186%는 명목 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일 뿐 물가 상승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미 인구 조사국이 물가 상승률을 감안 한 뒤 계산한 소득 상승폭을 보면 실제로 하위 20%의 실질 소득은 감소했습니다 (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뻔한 실수 말고 부자들을 옹호하는 좀 더 복잡한 주장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미 예전에 칼럼을 통해서보수주의자들은 빈곤을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특징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특성이 가난을 결정한 시대도 있었겠지만 지난 30년간을 돌아보면 가난의 가장 큰 원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는 일자리가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난하게 산다는 편견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말합니다. 부유한 사람이 부유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인생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결혼을 한 뒤 이혼 하지 않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고. 이 주장의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기회가 마치 공정하게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집 아이가 주립 대학의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지원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학 교육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심지어 가계 안정성 (family stability) 역시 경제적 상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대로 된 고용 기회가 없는 경우에 가정의 평화는 쉽게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보수주의자들도 불평등이 증가하는 사회의 승리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득 상위 20%, 혹은 5%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화이트칼라 직종의 전문직들은 그냥 저냥 잘 지내는 정도입니다. 불평등한 사회의 진짜 승자들은 이 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 즉 상위 1% 혹은 상위 0.1%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부자들이 대접받을만 하다라는 편견을 유지 시키기 위해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부자의 범주에 넣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이러한 현실이 어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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