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주제의 글
  • 2016년 12월 2일. 자유민주주의는 얼마나 튼튼한 제도일까?

    야스차 뭉크(Yascha Mounk)는 어디서나 가장 비관적인 축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는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서구 정치학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명제에 대해 대담한 의문을 품고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한 국가의 정치 체제가 한번 자유민주주의가 되면, 그 나라는 계속해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명제입니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자체적으로 튼튼한 영속성이 있다는 가정이기도 합니다. 뭉크의 가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영속성을 인정하는 통념을 거스릅니다. 그는 현재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전 세계 곳곳에서 더 보기

  • 2016년 9월 24일. 헨리 키신저가 비호한 독재자의 손에 40년 전 아버지를 잃은 예술가의 인터뷰

    "매번 외교 문서의 기밀이 해제될 때마다 헨리 키신저는 치부가 드러나 불편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40년 전 아버지를 잃었을 때 느꼈던 절망감에 비할 수 있을까요? 제 바람은 키신저가 좀 더 많이, 자주 죄책감을 느끼고 불편해하는 겁니다." 더 보기

  • 2016년 7월 22일. 언론에 재갈을 물려 온 에르도안 대통령을 살려낸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3년 전 '나무 혁명' 당시 에르도안은 평화적인 시위대를 쿠데타 세력이라고 맹비난하며,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사용을 더욱 제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막아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다름아닌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흐름이었습니다. 더 보기

  • 2014년 8월 14일. 쿠데타를 방지하는 방법

    흔히 정치학자들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 조건으로 문민 통제와 입헌주의를 내면화한 전문화된 군대를 꼽지만, 시민적 미덕만으로는 쿠데타를 방지하기 어렵습니다. 관건은 엄격한 법치가 확립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 보기

  • 2014년 7월 3일. 상업적 제국주의? 냉전 시기 CIA 개입은 미국의 수출을 어떻게 늘렸나?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관계가 국가 간의 무역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늘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를 데이터를 통해서 경험적으로 증명한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논문은 최근 비밀 해제되어 대중에게 공개된 CIA(미국 중앙정보부) 문서를 통해 냉전 시기 CIA가 개입한 국가와 미국과의 무역 관계가 어떻게 정치적 영향을 받았는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냉전 시기에 CIA는 비밀스럽게 미국에 유리한 지도자들을 다른 나라에 세우기 위해 개입했습니다. CIA가 조직한 1953년의 이란, 1954년 과테말라, 1973년의 칠레 쿠데타는 가장 잘 더 보기

  • 2013년 9월 11일. 40년 전 오늘 칠레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성공 확률 10% 정도 / 하지만 칠레를 구하는 길 / 대사관은 직접 관여하지 말 것 / 1천만 달러 이상 지출 가능 / (피노체트라면) 걸어볼 만한 도박 / 경제적인 혜택을 가시적으로 집중시킬 것 / 48시간 내에 끝낼 것. 40년 전 9월 어느날 당시 미국 CIA 국장과 닉슨 대통령, 키신저 외무장관 등과 가진 비밀 회의에서 끄적였던 논의사항들입니다. 며칠 뒤인 9월 11일 여느 때와 다름 없던 봄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더 보기

  • 2013년 7월 26일.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군부가 모르시 대통령을 몰아냈을 때, 미국이 과연 16억달러에 달하는 대 이집트 원조를 중단할 것인가 지켜본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1961년 제정된 해외원조법(Foreign Assistance Act)에 따라 미국 정부는 선출된 정부가 군부의 쿠데타로 물러난 국가에는 직접적인 원조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악관 대변인 제이 카니가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고 말을 돌려하느라 진땀빼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1961년 이래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국가는 몇 군데고, 미국이 원조를 중단한 경우는 몇 건일까요? 정답은 ‘아주 많다’와 ‘한 두 건’입니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1961년 5월 한국. 박정희 주도 하에 군부가 장면 정부를 몰아내고 집권. 냉전이 한창이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케네디 정부는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음. 다소 궁색한 변명이기는 하지만, 해외원조법이 발효되기 전에 쿠데타가 일어난 경우라 봐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음. -1963년 남베트남에서 군부가 응오딘지엠 정부를 몰아냄. 남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엄청나게 늘어남. 응오딘지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선거 자체가 부정선거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이 원조를 늘이면서 그 이유를 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 -1967년 그리스에서 군부가 선거 전 임시로 구성된 과도 정부를 몰아내고 집권. 미국은 군 중장비 지원을 잠깐 중단했다가,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다음 해에 지원을 재개했고, 1970년에 다시 중단했다. 1971년 의회는 별도의 법안을 통과시켜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회복될 때까지 지원을 중단하려 했으나, 행정부가 예외 조항을 통해 계속 지원함. -1973년 칠레군부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몰아냄. 미국의 군사 지원은 오히려 증가. -1977년 무하메드 지아 알하크 장군이 부토 대통령을 몰아냄. 미국의 군사 지원은 계속됨. 1979년 카터 대통령이 지원 규모를 줄였으나, 쿠데타 때문이 아니라 CIA가 발견한 핵농축 프로그램이 이유였음. 그러나 얼마 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은 다시 지원을 늘이기로 했는데 당시 카터가 4억 달러를 제시하자, 지아 장군이 이를 “땅콩”이라 표현하며 거절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음. -1979년 엘살바도르의 좌파 성향 군부가 (부정)선거로 당선된 카를로스 움베르토 로메로 정권을 몰아냄. 이후 우파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 당시 엘살바도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오히려 늘어남. -1980년 정당하게 선출된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이 쿠데타로 축출됨. 대통령이 냉전에서 중립을 표방한데 비해, 새로 들어선 군부는 서방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해 미국의 지원이 오히려 늘어남. -2006년 태국 군부가 탁신 시나와트라 대통령을 몰아냄. 미국은 다음 선거가 치러지기까지 2년 간 군사적 지원을 중단했으나,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프로그램 쪽으로는 지원이 중단없이 계속 되었음. 이 정도만 보아도 미국이 해외원조법을 제대로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은 충분히 드러납니다. 물론 1961년에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1979년 이란 혁명과 소련의 위협 앞에서 파키스탄도 마찬가지였겠죠. 마찬가지로 현재 이집트 지원을 계속할 명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원을 끊었다가는 군부는 물론 진보적 세속주의자들도 고립될 것이고, 지원을 끊는다고 해서 무슬림형제단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외교적, 지리전략적 고려 없이 법만을 따른 사례는 드뭅니다. 그나마 놀라운 사실은 이번 정부가 이 점을 의식하고 “쿠데타”라는 단어를 직접 거론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Economist) 원문보기

  • 2013년 7월 9일. 모르시의 몰락과 이집트 민주주의의 미래

    1년 전 모르시가 이집트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이코노미스트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매체로서, 정치를 종교에 종속시키고 여성과 소수자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슬람형제단에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시가 52%의 표를 얻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어쨌거나 이집트에서 30년 간의 독재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지난 며칠 간의 상황이 더욱 절망적입니다. 군과 거리 시위에 의해 물러난 모르시 대통령의 사례는 이 지역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습니다. 모르시 정권이 몰락한데는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