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 주제의 글
  • 2014년 6월 11일.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홍콩의 영어 교과서

    홍콩의 한 영어 교과서가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홍콩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한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교과서 사진을 보면, 여러 국적의 사람들 아래 설명을 달아놓고, 이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로 빈칸을 채우는 연습 문제가 나와 있습니다. “나는 홍콩에서 스시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는 ___입니다”라는 문제에는 빈칸에 “일본인”이라고 적는 식입니다. 그런데 영국인은 영어 선생님이고, 중국인은 샹하이가 고향인 반면, 필리핀인은 가정부라고 쓰여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이 블로거가 찍어 올린 교과서는 교사용이라 빈칸에 더 보기

  • 2014년 5월 15일. 수치로 보는 반유대주의

    오랫동안 두리뭉실한 이미지로 존재해온 반유대주의의 실체를 파해친 전례 없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반유대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안티 데퍼메이션 리그(Anti-Defamation League)”라는 단체가 2013년 7월부터 2014년 2월에 걸쳐 102개 국가의 성인 5만여 명을 대상으로 유대인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것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26%가 반유대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절반은 홀로코스트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유대주의가 가장 강렬한 곳은 무려 응답자의 93%가 반유대주의자로 나타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였고, 이라크, 예멘, 알제리 등이 더 보기

  • 2014년 5월 13일. LA클리퍼스 구단주가 좋아하는 소수민족은 한국계?

    LA 클리퍼스의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의 아프리카계 비하 발언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건물주인 그가 인종에 따라 세입자를 차별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도 더불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종류의 인종주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관의 또 다른 일면을 살펴 보면, 인종주의의 내부적인 모순과 뒤틀림 역시도 잘 드러납니다. 스털링이 세입자로 “근면하고 믿을 수 있는” 한국계를 선호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죠. 스털링은 한국계 선호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건물에 “코리안 월드 타워스(Korean World Towers)”라는 이름을 붙이고 더 보기

  • 2014년 2월 6일. 흰 얼굴의 노예들: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인종주의 활용법

    -뉴올리언즈대학에서 미국사를 가르치는 Mary Niall Mitchell교수가 NYT에 기고한 글입니다. 1864년 1월, 하퍼스위클리(Harper’s Weekly)에는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사진 한 장이 실렸습니다. 북부군이 점령한 뉴올리언즈에서 갓 자유를 찾은 흑인 노예 8명의 사진이었습니다. 세 명의 어른들 앞에 7세에서 11세 사이의 아이들 5명이 서있는 사진이었죠. 페티코트를 갖춘 드레스와 정장을 말쑥하게 갖춰입은 차림새보다도 더 독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들의 생김새였습니다. 피부색이 밝고 머릿결이 부드러운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북부의 중산층 백인 독자들은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남부의 노예들이 모두 더 보기

  • 2013년 11월 1일. 태국에서 인종주의 논란을 일으킨 화장품 광고

    유니레버의 태국 자회사 시트라(Citra)가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펼친 이벤트가 인종주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이벤트는 대학교 교복을 입고 시트라의 ‘펄리 화이트 UV 바디로션’ 제품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내면, 우승자에게 10만바트(약 340만원)의 상금을 주는 판촉 행사입니다. 시트라가 유튜브와 TV에 낸 광고에는 피부색이 밝은 여학생과 어두운 여학생이 등장합니다. 이들에게는 “똑같은 교복을 입었을 때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은?”이라는 질문이 주어지죠. 피부색이 어두운 학생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피부가 하얀 학생은 “시트라의 제품이 도와준다”고 말합니다. 더 보기

  • 2013년 5월 7일. 독일의 네오나치주의자, 마침내 재판정에 서다

    ‘국가사회 언더그라운드(National Socialist Underground)’라는 이름의 극우파 조직원으로 독일 내 이민자들을 살해하고 테러를 일으킨 혐의로 체포된 베아트 채페(Beate Zschäpe)에 대한 재판이 독일 법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재판은 독일이 네오나치즘의 잔존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다문화사회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채페와 공범들이 범행을 시작한 이후 연이은 살인과 테러는 독일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됐지만, 체포에서부터 재판에 이르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용의자 수색부터 헛다리를 짚어 극우파의 혐오 범죄임을 밝혀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수사 과정에서 지방정보국이 증거 문서를 파쇄해 기관장이 물러나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피고의 변호인이 판사의 중립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외 언론의 취재를 허용하는 문제로 마찰이 빚어져 재판이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야당 국회의원이 피해자와 범죄자를 대하는 당국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재판은 이제 독일 안팎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채페는 2000년부터 6년에 걸쳐 활동한 3인조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경찰이 추적망을 좁혀오자 자살했지만, 이들의 범행을 도운 인물들은 이번에 채페와 함께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채페는 살인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지만 조직의 결정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 혐의를 받고 있어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종신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채페는 2011년 제 발로 경찰서에 들어와 “내가 여러분이 찾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이후 수사 과정에서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호인은 채페가 재판 과정에서도 직접 진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NYT)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