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주제의 글
  • 2019년 8월 5일. [칼럼] 저널리즘의 역할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도하는 것입니다

    편집자주: NPR 보도국은 이번 주, 민주당 여성 의원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인종차별적(racist)”이라고 보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특정인물이나 행위에 “인종주의”라는 직접적인 딱지를 붙이지 않고 다양한 유사 표현을 사용해온 경향에서 벗어난 결정이었죠. 그러나 NPR 내부의 의견은 여전히 분분합니다. 보도국의 다양성과 기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키스 우즈(Keith Woods)는 여전히 이런 식의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도국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지만, 칼럼을 통해 우즈의 소수 의견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 다시금 트위터라는 스나이퍼 더 보기

  • 2017년 1월 3일. [칼럼] 2016년 미디어 실패의 교훈

    지난해 12월 31일에 뉴욕타임스에 실린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칼럼입니다. 2016년은 뉴스 업계에 있어 그다지 좋은 한 해가 아니었습니다. 몇몇 탁월한 보도들이 나오긴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은커녕 공화당 경선 승리마저도 예측하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으니까요. 우리는 번쩍이는 것만을 좇기에 급급했고,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물어뜯었으며, 깊이 파헤치지는 못했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도 못했습니다. 2008년 ABC, NBC, CBS 3개 방송 네트워크 저녁 뉴스가 후보자의 성명이나 토론이 아닌 독자적인 선거 더 보기

  • 2015년 2월 10일. 처형 비디오를 보는 것도 테러에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IS가 요르단 조종사 화형 영상을 공개했지만, 그 생생한 세부 내용은 소셜미디어와 주류 언론에서 상당 부분 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이 된 조종사와 그 가족들을 생각해 영상을 공유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시작되었죠. 저도 그런 취지에서 이 영상을 보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워낙 자극적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듯합니다. 자신이 본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주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잔인한 처형 동영상을 보는 행위 자체로 우리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IS의 공범이 될 수 더 보기

  • 2015년 1월 15일. 파리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의 언행 불일치

    세계 각 국의 지도자들이 샤를리 엡도 공격을 규탄했고, 몇몇은 파리에서 열린 집회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자국에서도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고 테러에 강력대응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더 보기

  • 2014년 7월 2일. [칼럼]언론 자유의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요즘 영국의 신문들은 정부의 규제가 300년 역사를 지닌 언론의 자유를 죽이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언론의 자유에 가장 큰 위협은 정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옵니다. 검열은 편집국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언론 자유를 극성스럽게 외치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데일리 메일의 논조에 거의 100% 반대하지만, 데일리 메일의 자유나 가디언의 자유나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데일리 메일의 기사를 보면, 이 회사에는 자유가 없는 듯합니다. 기사의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논조는 한 더 보기

  • 2014년 5월 2일. 천안문 25주기, 사라지는 언론인들

    천안문 사건 25주기를 앞두고 중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가오 유(Gao Yu)가 실종되었습니다. 지난 주말, 천안문 앞에 모인 학생 시위대를 난동으로 규정했던 1989년 4월 26일자 인민일보 사설을 기억하는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던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지인들이 연락했지만, 여전히 소식이 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칼럼을 쓰고 있는 독일 매체 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 받은 것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도 지난 수요일이 마지막입니다. 본인은 물론 아들도 휴대폰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활동가들이 주요 더 보기

  • 2014년 1월 23일. 미 법원, 명예 훼손 소송에서 블로거와 언론인은 법적으로 동등한 보호를 받아

    지난 금요일 옵시디안 재무 그룹(Obsidian Finance Group)이 크리스탈 콕스(Crystal Cox)를 상대로 벌인 명예훼손 소송 9차 순회 법정(9th Circuit Court)에서, 미 법원은 개인의 블로그 활동 역시 공식적인 언론 활동과 마찬가지로 명예훼손 혐의로부터 상당 수준 보호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보상보다 표현의 자유에 더 많은 무게를 실어준 것입니다. 탐사블로거(investigative blogger)로 활동 중이었던 콕스는 2010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하여 옵시디안 그룹이 세금을 탈루하고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몇 차례 제기했었습니다. 콕스의 포스팅으로 더 보기

  • 2013년 9월 4일. 워터게이트 사과를 이끌어낸 언론인 프로스트의 생애

    헨리 키신저, 존 레논, 리처드 닉슨 등 여러 유명인들을 인터뷰했던 영국의 언론인 데이비드 프로스트(David Frost)가 지난 주말 강연 차 탑승했던 선상에서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습니다. 고인의 생애는 60년대 흑백 TV에서 오늘날의 케이블 채널에 이르는 TV 매체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 재학시절 학생 신문과 문예지에서 편집일을 하며 풍자에 남다른 감각을 드러내던 프로스트는 1962년 BBC에서 “이번 주는 이랬다고 합니다(That Was the Week That Was)”라는 제목의 주말 시사 풍자 프로그램의 진행을 더 보기

  • 2013년 7월 17일. 기자가 정치 성향을 밝히지 말아야 하는 이유

    -어제 소개한 ‘기자가 지지 정당을 밝혀야 하는 이유’를 시티대학교 언론학 교수이자 데일리미러지의 전 편집인인 로이 그린슬레이드(Roy Greenslade)가 반박한 글입니다. 기자들이 보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혀야 한다는 로웬스타인의 주장은 여러모로 유혹적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관적이라거나, 기자들이 아무리 공정성을 유지하려 노력해도 각자의 색깔로 기사를 칠하게 된다는 주장은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로웬스타인도 잘 알고 있듯이, 이른바 주류 언론사에 적을 두고 있는 기자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사주나 편집자의 존재 때문입니다.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신문들이 당파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논설위원이나 칼럼니스트가 어느 당에 표를 던졌는지는 그다지 비밀스런 정보가 아닙니다. 데일리메일(Daily Mail)의 스티븐 글로버(Stephen Glover)가 보수당에 투표했다고 선언하거나, 데일리미러(Daily Mirror)의 케빈 맥과이어(Kevin Maguire)가 노동당 지지자임을 고백한다고 새삼 놀랄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칼럼이 아닌 기사는 겉으로 일단 객관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사가 지면에 실리기까지의 과정에는 수 많은 필터가 존재하며,  상당한 이념적 통제가 가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색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로웬스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여기에는 각종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따릅니다. 정치색를 밝힌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밝혀야 할까요? 지난번에 누구를 뽑았는지 밝혀야 하나요? 아니면 다음번에 누구를 뽑을지? 투표를 하지 않고 기권했다면? 어떤 분류법에 따라 자신의 정치색을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요? 로웬스타인은 기자들이 일반적인 정치 성향 선언 외에도 특정 사안에 글을 쓸 때 이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밝혀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집니다. 로웬스타인이 언급했던 팔레스타인 문제의 경우 1000단어짜리 에세이로 써도 모자란 판에, 어떻게 매번 기사 끝에 짧은 한 줄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가 있겠습니까? 방송기자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겠죠. 저도 로웬스타인이 이야기하는 투명성을 전격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해결책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결과물입니다. 독자들이 기사의 질보다 기자의 정치 성향으로 기사를 읽지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인간은 모두가 주관적이라는 로웬스타인의 주장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기계적인 그의 해결책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Guardian) 원문보기

  • 2013년 7월 16일. 기자가 지지 정당을 밝혀야 하는 이유

    -호주의 독립 저널리스트 앤토니 로웬스타인(Antony Loewenstein)이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보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권력을 비판하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기사를 쓴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 경제적 이해 관계는 우리가 보고 듣는 것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문제들이 주기적으로 일어나죠. 금융위기 당시 은행과 너무 가까이 지내던 경제부 기자들이 거짓된 보도를 한 일이나, 2003년 부시 행정부가 근거 없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가지고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을 때 기자들이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던 일처럼 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기자들이 자신의 표를 어디에 던지는지, 정치적 성향은 어떠한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인의 33%만이 언론을 믿는다고 할 만큼 기자들이 독자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언론이 조금이나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기자들은 다른 직업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정작 대중은 기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기자도 인간이니, 자신의 경험과 시각을 통해 세상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자가 스스로 정치색을 밝히지 않더라도, 이른바 “특종”이라는 것이 실은 친한 기자에게만 계획적으로 “흘리는” 소식임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호주 독립언론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2009년 5일의 기간 동안 주류 언론에서 나온 기사의 절반 이상이 독립적인 취재의 결과물라기보다는 보도 자료를 살짝 바꿔쓴 기사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보도 자료에 근거한 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누군가가 쓴 보도 자료를 가져다 쓴다는 데서 이미 언론의 객관성은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자가 어떤 틀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는 중요한 정보이고, 독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기자 각자가 나름대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아무런 아젠다 없이 기사를 쓰는 텅빈 껍데기인 척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기자들이 권력과 가까이에서 밥과 술을 함께 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엄중함이나 회의주의 같은 미덕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자는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마할 책임감이나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마크 래텀(Mark Latham) 전 노동당 대표의 말을 반박하기가 힘든 현실입니다. 동등하지 않은 양 쪽 사이에서 거짓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권력과의 결탁에 가까운 행위죠. 우리는 더 보기

  • 2013년 1월 14일.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그리스의 언론인들

    그리스 경찰이 지난 금요일 언론인 다섯 사람의 집에 폭탄을 설치한 범인들을 찾고 있는 가운데, ‘무법 애호가(Lovers of Lawlessness)’라는 단체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정부와 해외 채권자들에 의해 추진 중인 긴축 정책에 동조하는 기사를 낸 언론인들을 타겟으로 삼았다며, 뉴스 매체들이 “억압적인 국가 체계의 관리자 노릇을 하며 사회를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격의 타겟이 된 사람들 가운데는 현직 편집자와 방송인, 현재 정부 기관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전직 언론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년에도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