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사과를 이끌어낸 언론인 프로스트의 생애
2013년 9월 4일  |  By:   |  세계  |  3 Comments

헨리 키신저, 존 레논, 리처드 닉슨 등 여러 유명인들을 인터뷰했던 영국의 언론인 데이비드 프로스트(David Frost)가 지난 주말 강연 차 탑승했던 선상에서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습니다.

고인의 생애는 60년대 흑백 TV에서 오늘날의 케이블 채널에 이르는 TV 매체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 재학시절 학생 신문과 문예지에서 편집일을 하며 풍자에 남다른 감각을 드러내던 프로스트는 1962년 BBC에서 “이번 주는 이랬다고 합니다(That Was the Week That Was)”라는 제목의 주말 시사 풍자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며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2년만에 막을 내리기는 했지만, 이후 형식이 미국으로 건너와 NBC “데일리쇼(Daily Show)”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내 코너의 전신이 되었다고 평가받는 프로그램입니다. 이후, 프로스트는 연예 프로그램에서 교양 토크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거칩니다. 이후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유명한 리처드 닉슨 인터뷰는 1977년에 방송되었죠. 예리한 질문을 연달아 던지거나 침묵의 순간을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인터뷰이가 뉴스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프로스트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인터뷰였습니다. 당시 닉슨은 60만 달러에 방송 수익 일부를 추가로 받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임했고 녹화는 4주에 걸쳐 장장 29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프로스트는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져 “대통령이 하면, 그건 불법이 아니라는 뜻이다”라는 말을 이끌어냅니다. 프로스트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훗날 털어놓았습니다. 마침내 녹화 마지막 날, 프로스트는 애드립임을 과시하듯 큐카드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지 않으시면, 평생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실 겁니다.”라고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에 닉슨은 “2년 동안 미국인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한 것”을 사과한다며, “내가 미국인들을 실망시켰고, 이는 내가 평생 지고 가야할 짐”이라고 말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닉슨이 사과한 순간이었습니다.

1993년 기사 작위를 받은 프로스트는 2006년 BBC의 최대 해외 경쟁사인 알자지라 영어방송으로 자리를 옮겨, 에르도안 터키 총리,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우주비행사 버즈 알드린 등을 인터뷰했습니다. 7월에 시작된 새 시리즈 “프로스트 인터뷰(The Frost Interview)”는 곧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죠. 스스로도 닉슨 인터뷰를 자기 커리어의 정점이라고 말했지만, 인터뷰했던 여러 대통령 중에서도 아버지 부시를 칭찬한 바 있습니다. 주변인들은 엄청난 인맥으로 인터뷰 대상을 척척 섭외하고, 인터뷰 대상을 언제나 철저하게 탐구하며, 시종일관 젠틀맨다운 태도를 유지했던 사람으로 프로스트를 기억합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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