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수입품에 10% 일괄 관세를” 트럼프의 이토록 허술한 공약이 먹히는 이유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7월 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달 말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 바이든이 참패했고, 이어 지난주 미국 대법원이 대통령이 재임 중에 한 일에 대해 상당 부분 면책특권을 인정해 줬다는 소식도 전해드렸습니다. 두 가지 사건 모두 오는 11월 백악관으로 ‘컴백홈’을 꿈꾸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매우 큰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자중지란에 빠진 민주당 때문에 트럼프와 공화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요즘 트럼프는 그야말로 승승장구 중입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정책이 내게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대비하느라 모두가 분주합니다. 재임 중 한 일에 대한 면책특권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방해하거나 뇌물을 받고 사면권을 남용하는 등) 명백한 범죄를 짓고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될 거란 점에서 우려를 낳았지만, 어떤 정책이든 거리낌 없이 펼 수 있게 됐다는 점도 트럼프의 집권을 앞두고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트럼프가 내건 공약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 들여오는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일괄 적용하는 겁니다. 트럼프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6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말했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여전히 높지 않아 보이지만, 트럼프라면, 게다가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의 트럼프라면 못 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표 관세는 그와 공화당의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미국을 살리는 정책이 될까요? 가보지 않은 길이 어떻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관세의 효과가 원하는 대로 나타나리라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껏 전쟁 같은 특수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렇게 급격히 관세를 올린 대통령이 없었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 참고할 수 있는 사례에서 나타난 관세의 효과도 대체로 미미했습니다. 관세는 미국이 당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습니다. 폴 크루그먼이 이 점을 지적한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트럼프가 매긴다는 그 관세, 실제 부담은 누가 질까? [크루그먼 칼럼]
관세를 통해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금을 올리면 생산자가 늘어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듯, 관세를 올리면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나라와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는 대신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수입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입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얼마가 됐든 관세 부담을 해당 국가가 다 지는 예는 없습니다.
또한,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 상대방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마련입니다. 그럴 경우 그 나라에 물건을 수출하는 기업과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를 이루는 여러 부문 가운데 승자와 패자를 정부가 정하는 셈인데, 이때 발생할 각종 불균형과 피해를 조정하고 보완하지 않는다면 무리한 관세 정책은 소비자의 부담만 늘린 채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의 관세 공약은 훌륭한 마케팅?
이렇게 허술한 공약에 미국 유권자들이 큰 기대를 품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우선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하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야당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권자들이 겪는 모든 문제는 실제 원인이 어디에 있든 현 정부에 책임을 묻기 좋죠. “나였으면 훨씬 더 잘했을 거다”라는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즉,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성적표에 나타난 문제는 잘 파고들었지만, 대안으로 제시한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는 뜻입니다.
정책 자체의 실현 가능성, 실효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트럼프의 관세 공약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는 효과적인 카드입니다. 걸핏하면 모든 문제를 외국 자본, 외국 기업, 특히 중국 탓으로 돌리던 이른바 ‘중국 때리기’와 비슷한 맥락인데,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노동자 계급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그래도 트럼프는 우리 같은 서민들의 어려움에 귀라도 기울여준 사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트럼프의 성공적인 정책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유권자들은 제조업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 지역에 많습니다. 이 지역은 이번 선거에서 최고의 격전지가 될 경합주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책의 효과에 대해 이론과 모델, 예상치로만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보다 실제 사례가 있다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면 좋겠죠. 아시다시피 트럼프는 4년간 대통령을 지냈고, 지금 주장하는 정책을 상당 부분 실행에 옮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크루그먼도 칼럼에서 트럼프 행정부 때 중국과 벌인 관세 전쟁의 효과를 짚었습니다.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점은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가 선제적으로 관세를 올리자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는 점입니다. 중국 정부는 미국산 제품 가운데도 특히 트럼프 지지층이 모여 사는 지역의 산업에 보복 관세를 매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두, 밀 등 농산품입니다. 중국산 제품이 미국에서 비싸진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농산물도 중국에서 가격이 올랐습니다. 수출 경쟁력이 타격을 입자, 실제로 수출이 줄기도 하는 등 농업 부문 기업들에 비상이 걸립니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조용히 이 부문에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피해를 보전해 줌으로써 지지층 이탈을 최소한으로 막았습니다.
지난달 말 TV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정책 토론을 벌일 요량이었다면 이런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어야 합니다. 즉, 트럼프가 말하는 정책이 터무니없다, 실제로 집권 1기 때도 정책이 어디가 잘못돼 효과가 미미하거나 심지어 역효과가 났다는 등 공략할 수 있는 약점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은 트럼프의 거짓말을 짚어내기는커녕 자꾸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오히려 트럼프는 “표가 되는” 지지층의 어려움에 최소한 공감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바이든의 최근 행보는 불통과 단절의 연속입니다. 민주당 지지층이 특히 분통을 터뜨리는 지점은 벌써 몇 년째 바이든의 건강이 정말 괜찮은지 우려를 나타낼 때마다 아무런 문제 없다고 호언장담하며 때로는 면박을 주기도 하더니,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눈과 귀를 닫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측근, 민주당 지도부의 오만입니다.
민주당이 결정적인 타개책을 내 후보를 바꾸지 못한다면, 트럼프가 다시 집권에 성공하고 중국과 미국은 다시 관세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효과와 여파가 트럼프가 말하는 것처럼 미국에 절대적으로 좋은 만병통치약이 될지, 직접 겪어보고 알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