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이것은 “혁신의 탈을 쓴 불평등”인가 아닌가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2월 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긱(gig)이란 영어 단어의 첫 번째 뜻은 크지 않은 규모로, 때론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음악 연주나 코미디 공연입니다. 이어 두 번째 뜻이 일 또는 직장인데, 정규직보다는 임시로, 부정기적으로 하는 계약직 일자리나 소일거리에 가까운 뜻입니다. 우버 기사나 앱 기반 배달원 등 우리나라에선 보통 “플랫폼 노동자”로 번역되는 단어가 영어로는 “gig workers”입니다. (정확히 같은 뜻은 아닙니다만, 서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식 채용보다 부정기적인 업무를 임시로 맡아줄 사람을 구하는 사업장과 그 일을 할 사람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을 통해 구한 일자리니 “플랫폼 노동”이라는 이름도 일리 있는 명명으로 보입니다. 이를 예전에는 공유 경제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공유 경제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쉬 교수는 플랫폼 노동 또는 긱 노동을 가리켜 “이윤의 대부분을 기업이 독차지하고 노동자들에겐 이윤의 부스러기를 나눠주는 가혹한 노동 형태”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볼 것이냐, 개인사업자로 볼 것이냐를 놓고 몇 해에 걸쳐 열띤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량 호출 플랫폼 타다 운전기사가 노동자냐 개인사업자냐를 두고 벌어진 법정 공방도 그렇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지위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려면 고용 보험이나 각종 의료 보험 등 법에 따른 최소한의 혜택을 보장해야 하고, 급여를 지급하면 그에 대한 세금(급여세)도 내야 합니다. 기업으로선 이게 모두 부담이지만, 그렇다고 비용 절감을 위해 함부로 줄이지 못하도록 정부가 법으로 막아놓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노동자가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노동을 통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결국 사회가 유지되고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이죠.
전문 번역: 더 많은 사람들이 ‘긱 노동자’로 분류되는 것이 모두에게 나쁜 이유
최근 콜로라도주 덴버시 노동국이 엄연한 노동자를 독립된 사업자로 취급해 부당 이윤을 취득한 혐의로 플랫폼 사업체 두 곳에 합쳐서 100만 달러 넘는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인상적인 점은 이 정도로 큰 규모의 과태료 처분을 내린 게 연방 규제 당국이 아니라 시 정부라는 점입니다. 물론 덴버는 콜로라도주의 주도이자, 인구 70만 명으로 미국 기준으로 보면 대도시에 속합니다. 시장을 규제하는 연방 규제 당국은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회처럼 주로 독점 등 불공정 경쟁 문제를 감독합니다. 반면에 플랫폼 사업자 등 법망을 피해 부당하게 이윤을 올리는 업체에 대한 단속은 주 정부나 지방정부가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 정부나 지방정부, 시 정부가 기업에 소송을 벌이는 사례는 21세기 들어 잦아지고 있는데, 특히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발생한 공중보건 위기의 책임을 오피오이드 제조 업체에 묻는 등 공중보건과 관련한 법정 공방에서 정부가 의미있는 승리를 거두면서 더 활발해지는 추세입니다. 긱 노동을 규제하는 이유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기업들이 노동자가 가져가야 할 몫까지 빼앗아 가며 부당한 이윤을 거둬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면 공중보건 관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프면 억지로 출근하는 대신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어도 급여를 받지 못할 걱정을 해선 안 됩니다. 이는 노동자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지만, 이 권리가 인정받지 못하면 공중보건 관점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즉, 아프다고 결근했다가 다음번에 일을 받지 못할 걱정을 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억지로 일터로 나갈 테고, 동료들과 거리두기가 지켜질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많은 경우 전염병이 퍼질 위험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초기에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진 곳이 어디였는지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와 개인사업자를 나누는 기준은 사안에 따라 때론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론도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죠. 캘리포니아주에선 우버나 리프트 기사의 지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를 두고 주민투표와 투표 결과에 대한 항소, 소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공중보건 문제는 정부가 개입할 명분이 좀 더 뚜렷합니다. 특히 플랫폼 업체들이 고객인 플랫폼 노동자에게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각서를 받기 때문에 정부가 아니면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습니다.
기존 법만 잘 지켜도
플랫폼 노동은 이미 우리 삶의 수많은 영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습니다. 이동 수단, 배달, 청소, 간병, 장보기 등 긱 노동자가 없으면 당장 덜커덩거릴 분야가 한둘이 아닙니다. 분야마다 노동 양태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앱 등 플랫폼을 통한 인력 충원 업체가 일자리를 찾는 사람을 모아 업체와 연결해 주는 간접 고용 형태를 취하며 직접 고용을 할 경우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은 큰 틀에서 보면 같습니다.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비용을 줄여 올리는 기업의 부당한 이윤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불평등을 심화하는 주범이 됩니다. 혁신의 탈을 쓴 불평등이라는 샌프란시스코 데이비드 추 검사의 지적은 정확히 그 점을 꼬집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연한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둔갑시키기 어렵게 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좋고, 고용보험, 노동자 의료보험 책임을 지지 않거나 급여세를 사실상 탈루하는 업체들에 대한 처벌을 늘리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새로운 법과 규정을 만들기 전에 기존 법만 엄격히 잘 지켜도 많은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방법과 여러 주의 노동법은 이미 협상 지위상 약자라 할 수 있는 고용된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뒀습니다. 노동자를 억지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둔갑시켜 고용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지지 않는 업체는 제대로 된 시장에선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돼야 합니다. 긱 노동,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다만 플랫폼 노동자들이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는 사회 전반의 건강 지수가 나빠지는 거나 다름없습니다.